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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Nov 27. 2020

[고혹자 인재강호] 영화는 영화일뿐, 따라하지 말자!

(유위강 감독 古惑仔之人在江湖  ,1996)

 1996년 홍콩박스오피스 홍콩영화 순위를 보면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4>가 5,700만 홍콩달러로 수위를 차지하였고, 주성치의 <홍콩007>(대내밀탐영영발)>이 3,600만 HK$로 2위, 그리고 유덕화의 <열화전차>와 서극 감독의 <대삼원>이 그 뒤를 이었다. 5위는 <고혹자2편 맹룡과강>(2,200만), 6위는 <고혹자 1편, 인재강호)(2,100만), 그리고 <고혹자 3편 척수차천>(1900만)이 10위에 랭크되어 있다. 한 해에 시리즈물 3개가 톱 텐을 차지한 것은 정말 홍콩 영화판다운 결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정이건의 <100%필링(百分百感覺)>은 9위에 올라있다는 것이다. 이들 네 편은 모두 왕정과 유위강, 그리고 문준이 이끄는 '최가박당'영화사 작품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고혹자>(Young and Dangerous)시리즈로 정이건은 홍콩에서 가장 홍콩스런 작품으로 박스오피스를 책임져주는 흥행스타로 급부상했다. <고혹자> 시리즈는 다음과 같다.

 

古惑仔之人在江湖(1996)

古惑仔之猛龍過江(1996)

古惑仔之隻手遮天(1996)

97古惑仔之戰無不勝(1997)

98古惑仔之龍爭虎鬪(1998)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007 제임스본드 시리즈처럼 나오기만 하면 이렇게 대박을 터뜨릴까. <고혹자>시리즈는 홍콩에서 꽤 인기 있는 만화가 원작이다. 고혹자는 홍콩에서(광동어로) '부랑아', '건달'의 의미로 쓰인다. 원래는 원작만화가 청소년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영화가 대여섯 편이나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만화보단 영화의 영향력이 더 커져버렸다.

영화는 1970년대 홍콩의 빈민가, 하층인이 모여사는 구역의 불량청소년이 어떻게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나서 홍콩 뒷골목의 건달로 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크라임 스토리이다. 진호남(陳浩南)과 산계(山鷄)는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자릿세를 요구하는 오진우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흑사회 진출을 동경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진호남과 산계는 조폭인 삼련방의 아삐(阿B)밑에서 촉망받는 행동요원으로 성장한다. 


어느 날 마카오의 카지노 운영권을 지키기 위해 파견되었던 이들은 라이벌의 함정에 빠져 조직원이 죽거나 다친다. 게다가 산계는 여자에 빠져 작전(패싸움)에 참가도 못했고, 진호남은 오진우의 흉계에 걸려든다. 약에 취해 산계의 여자와 관계를 맺게 되고 오진우는 이 장면을 비디오에 담아둔다. 이 때문에 흑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이들 아삐 조직은 붕괴된다. 진호남은 축출당하고 산계는 대만으로 밀항한다. 하지만 교활하고 잔인한 오진우는 마침내 보스를 밀어내고 아삐와 가족들을 몰살시킨다. 진호남은 자신을 보호해준 아삐의 복수를 위해 나서지만 수적으로 열세이다. 이때 대만으로 도피했던 산계가 대만에서 조직을 구축하고 조직원을 이끌고 홍콩으로 와서 그를 도와 오진우와 일생일대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물론, 이런 영화는 정이건과 진소춘의 영웅담, 그리고 오진우의 악당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소개하면 될 영화이다. 하지만, 홍콩영화史에 있어 <고혹자>는 꼭 짚고 넘어가야할 영화이다. 홍콩영화가 그 화려한 르네상스의 마지막을 불사른 작품이 바로 <고혹자>시리즈였기 때문이다. 이후 홍콩영화는 어쩔 수 없이 폭력과 겉멋에 경도된 비참한 몰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홍콩영화에 있어 히어로(영웅)의 정통은 고독한 1인자 정의한(正義漢)이다. 외팔이 시리즈의 왕우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이어져오던 이러한 경향은 1985년 <영웅본색>을 대표하는 정사(正邪)의 역할변환으로 일대 변혁을 갖는다. 이른바 흑사회의 우정과 의리가 '사회적 정의'보다 더 팬들의 감성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흑사회 내부의 의리, 조직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고혹자>시리즈이다. 이들의 직업은 조폭이며, 살인자이며, 범죄집단의 보스, 똘마니들 인 것이다. 정이건 같이 멋진 남자가 칼을 휘두르고 멋지게 사람을 죽이니, 어찌 사회 문제가 되지 않으리오. 영화의 악영향, 사회적인 반향은 언제나 영화팬들과 사회학자와의 논란거리였다. <친구>의 대박 이후 <친구>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은 원로감독 정진우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깐. 


<고혹자>는 홍콩 '라지전영'(쓰레기영화)의 총본산이며 원류라고 할 왕정-유위강-문준의 '최가박당'영화사 작품이다. 이들은 각각 제작-감독-시나리오를 맡으면서(혹은 서로 역할을 맞바꾸기도 한다) 홍콩 오락영화의 지존을 지켜나가고 있다. 영화를 보면 촬영감독 출신의 유위강 특유의 현란한 카메라워킹과 눈이 아플 정도의 트릭을 만끽하게 된다. 게다가 원작만화와 영화의 교차편집 등 상투적인 다큐 기법도 집어넣어 한껏 멋 부린 홍콩영화의 전형을 창조해낸다. 영화에서 홍콩 조폭들의 칼부림은 한국조폭과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수십 명이 각종 무기를 들고 설치는 장면은 오락영화의 수위에 대해 우려하게 만든다. (물론, 오락영화가 그러해야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있어선 리얼하며 멋지며 볼만하다고 할 것이지만) 


어쨌든 정이건이 스타로 탄생하게 된 영화이지만 보는 내내, 오버하는 연기자와 균형 잡히지 않은 멋에 씁쓸한 느낌을 떨굴 수 없다. 


참고로 <고혹자> 여섯 번 째 작품 <勝者爲王>은 우리나라에 <동경용호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었다. 이 영화는 원작자와의 모종의 트러블로 <고혹자>라는 타이틀을 달지 못했었다.  <고혹자>는 어떻게든 계속될 모양이다. 그리고 이들 작품 말고도 <고혹자> 이름을 단 영화로 <홍흥13매>, <고혹녀>, <소년고혹자> 등 아류물이 제법 된다. ⓒ박재환 (200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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