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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Dec 02. 2020

[추남자] 최고의 커플 매니저 왕정 감독

왕정 감독 追男仔 Boys Are Easy,1993


* 2004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 * 나처럼 홍콩영화를 마구잡이로 보면 영화미학에 대한 관점이 조금 바뀌게 된다. 그리고 정도가 심해지면 '영화는 예술이다'라는 명제에 코웃음을 치게도 된다. 홍콩영화 가운데 왕가위 영화나 관금붕 영화 등에서는 그런대로 예술입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홍콩 감독들의 작품을 보노라면 영화는 예술이기 이전에 대중의 여가시간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감동'의 기능을 제공한다. 예술영화가 감동적이고 오락영화는 재밌다라는 도식적 오해에서 벗어난다면 말이다. 홍콩영화 감독들 중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바로 왕정(王晶) 감독이다. 왕정 감독은 영화평론가들로부터 '홍콩쓰레기영화의 대마왕'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하지만 왕정 영화 - 왕정이 제작을 맡았던, 각본을 썼던, 직접 감독을 하였던, 아니면 그가 직접 배우로 출연했던 간에 -는 홍콩에서 적어도 왕가위 감독보다는 항상 높은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다. 때로는 대박급 영화도 매년 몇 편씩 쏟아낸다. 왕가위 감독이 톱스타들을 캐스팅하여 세월아 네월아 영화를 찍을 동안 왕정 감독은 똑같은 톱스타들을 기용하여 후다닥 얼렁뚱땅 한 편을 완성시켜버린다.

 이런 왕정 감독을 두고 '쓰레기 양산자'라는 악담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장 홍콩적인 영화를 만들어내는 영화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왕정영화 자체가 홍콩문화라는 사회학적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왕정은 누가 뭐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자기가 찍고 싶은 영화를 다 찍어낸다. 왕정에게는 패기와 호기와 인기와 재기가 있는 셈이다. 


  왕정 감독이 [지존무상], [도신], [도협], [녹정기] 등 도박영화, 코미디 영화 , 사극 등 가리지 않고 물오른 흥행 파워를 보여주던 1993년에 만든 [추남자]라는 영화는 이런 왕정 감독의 실력과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양가휘, 임청하, 장학우, 장만옥, 구숙정 등 톱스타들이 즐비하게 출연한 [추남자]는 왁자지껄 시끌벅적 우당탕탕 하는 전형적인 왕정영화이다. 남녀 커플이 온갖 소동을 벌이더니 마지막엔 '워 아이 니' 하고 해피해지는 그런 영화이다.

 오요한은 아내와 사별하고 세 딸(임청하-구숙정-장만옥)과 한 아들(임지령)을 곱게 곱게 키운다. 하지만 과년한 세 딸이 결혼할 생각을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암에 걸려서 보름밖에 못 산다고 거짓말하면서 세 딸이 빨리 자기 짝을 찾아오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세 딸은 ‘단기 애인’을 벼락치기로 마련한다. 와일드한 임청하가 구한 남자는 카바레 제비족 양가휘였고, 의사 구숙정은 말쑥한 샐러리맨 정이건을, 옥상에서 비둘기 키우는 재미로 살아가는 착한 장만옥은 조폭 무대포 똘마니 장학우를 애인이라고 소개한다. 이 어울리지 않은 세 쌍의 커플이 사상최대의 폭소극을 이끈다.

 이 영화에서 톱스타들의 코믹연기는 주성치급이다. 특히 양가휘의 제비족 연기는 이 영화를 거의 컬트 급으로 만든다. 넉살맞은 제비족에서 후반 이소룡으로 변한 양가휘의 연기를 보노라면 주성치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 양가휘가 볼링장에서 임청하와 슬로우 비디오로 포옹하는 장면에서는 거의 뒤집어질 정도이다. 장학우의 오버하는 코믹연기에서도 장학우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 쌍의 커플이 제짝 찾기 플레이를 한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코믹 멜로물일 것이다. 그런데 왕정 감독은 이런 담백한 영화에 홍콩영화의 한 축이 되는 조폭 소재를 믹싱한다. 떼거지 칼잡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싸움질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런 폭력적 혼돈과 무아지경의 코미디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짝을 만나게 되니 어찌 왕정 스타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홀애비 오요한의 재산을 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여우 오군여의 정신없는 연기도 재밌다. 이 영화는 정이건과 임지령의 데뷔 초기 출연작품이기도 하다. 풋풋한 그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박재환 영화리뷰 200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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