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沛如 감독 大餓 Heavy Craving ,2019
작년(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서 <갈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대만영화 <대아>(大餓/Heavy Craving)가 <나는 살을 빼기로 결심했다>라는 제목으로 개봉된다. 다이어트를 보여주는 좀더 직접적인 제목으로 공개되는 셈이다.
영화는 105킬로그램의 뚱녀가 어떤 이류로 다이어트를 시도하다가 부딪치는 사회적 편견과 자아승리를 다룬 여성영화이다. 물론,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된다. 표준 체중/체형에 대한 관점이나 타인의 시선은 언제나 주관적인 판단이 따르니 말이다.
올해 서른 살의 주인공 쥐앤(차이지아인/蔡嘉茵)은 엄마(커슈친/柯淑勤)가 운영하는 방과후돌봄센터(安親班)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오늘도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만들어 아이들의 점심으로 내놓는다. 아이들은 쥐앤을 ‘공룡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놀리지만 참을만하다. 오랫 동안 들어온 이야기이니. 거리를 걷다 다이어트 광고나 피트니스센터 전단지를 받게 되면 “전,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다. 이웃집 아저씨가 늑대같이 갑자기 “너, 친구 없지? 내가 연애하는 법 가르쳐 줄게”라며 달려들 때 놀라서 밀쳐버린다. 분명 성추행을 당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뭐래? 누가 너 같은 애를...”이란다. 동네 꼬맹이들이 계란을 던지며 ‘돼지’라고 놀리는 일도 다반사다. 돌봄센터 팜플랫에 아이들 식단 사진을 넣으면서 조리사 사진도 넣기로 했는데 엄마가 빼버린다. “조리사가 이런 몸매면 학부모가 보기에...”란다. 그런 이유로 살을 빼기로 한 것은 아니다. 매일같이 물건을 실어 나르는 택배총각(장야오런/張耀仁)의 응원에 힘입어 다이어트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힘들고, 편견에 가득하고, 자신감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에페이루(謝沛如) 감독은 “다이어트와 여성의 몸 문제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사회는 다른 사람의 몸매에 대해 묻기를 좋아한다. 명절 때, 모임 때 너무 쉽게 말을 한다. 친근감의 표현이겠지만 실제 듣는 사람입장에서는 상처가 된다.”면서 “제목의 뜻은 생리적으로 배고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영화를 보면 제목이 단순한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라, 경계에 선 사람, 또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위태로운 길에 나선 사람의 고독과 그 과정에서 애타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갈망을 느끼게 된다. 영화 <나는 살을 빼기로 했다>는 여자주인공이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의 모습과 그 이후 달라진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는 과체중 여성의 자아실현이라는 고상한 주제와 함께 쉽게 판단내릴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를 내던진다. 성(性) 정체성 문제이다. 그것도 아주 어린 꼬마애가 당면한 문제이다.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빌리의 어릴 적 동네 친구 중에 여자 옷 입기를 좋아하는 애가 나온다. 그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세계적인 발레리노가 된 친구의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러 온다. 관객들은 그 애가 나중에 어떻게 성장했는지 충분히 알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초등학생 남자 애가 여자 옷을 몰래 입는 모습과 그것을 우연히 보게 되는 여자주인공의 우정의 교류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여자주인공은 눈 감아 주더니, 나중엔 숨길 필요 없다고 격려까지 한다. 아이의 부모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노발대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마 영화에서는 내적인 자아와 외적 형상의 차이에서 오는 부조화에 대해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고 있고, 그런 차이의 문제보다는 내적 순수성에 아름다움의 기준을 가져야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픈 모양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외부의 표출(여자 옷을 입든, 뚱뚱해지든) 과정에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감독은 자신의 다름을 경시하지도, 타인의 다름을 무시하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고한 듯하다.
오래 전 대만에서는 해외 화장품 브랜드 업체가 광고카피로 사용한 유명한 문장이 있다. “세상에 추녀는 없다. 단지 게으른 여자가 있을 뿐”(世上沒有醜女人 只有懶女人). 자신의 아름다움을 꾸민다는 것은 단지 얼굴화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몸매도, 다이어트도, 지성도 모두 포함되는 세상이 되었다.
주인공의 어머니로 나오는 배우는 가숙근(柯淑勤)이란 배우이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대만영화 <아호, 나의 어머니>에서 삶에 찌든 엄마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날씬한 몸매로 요가를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1967년생이란 게 놀랍다.
영화에서 엄마는 다이어트에 지친 딸에게 “너, 노력해봤니?”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 말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사회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 자신을 바뀌는 게 낫다.”라는 대사일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체중의 과다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박재환 (20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