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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린 Jul 19. 2023

당신마저도 지운 순간이 있었나요?

<몰입 그리고 세상과 나>

모든 길을 헤매다가 이제야 다다랐습니다. 제가 몰입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를요.


그런 순간 있으셨나요?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을요.


좀 더 깊이 보자면, 나란 사람이 어느 공간에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게 더 깊어질수록 나란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기도 하죠.


좀 더 많이 깊이 들어가 볼까요? 그 순간에 경도되며 나라는 사람이 느껴지지 않고 지워집니다.


다시 질문드립니다. 당신은 이런 순간이 있으셨나요? 그 시간은 어떤 순간인가요?


저는 스스로를 지우는 순간까지 가는 길이 2가지 있습니다.


음악에 갇혀 나오지 못할 때, 책에 들어가 나오기 싫을 때.


하나씩 꺼내서 전해드려 볼게요.




음악에 갇히다.


'갇히다'라는 표현은 어감이 부정적이죠. 맞습니다. 저는 음악이 업무이기에 빠지는 순간을 넘어서면 갇히게 됩니다. 갇히는 느낌은 마치 '빛이 하나도 없는 아스팔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과 같죠. 정답이 없는 듯 있는 그 미묘한 지점을 찾아가는 게 음악인의 길이라 저는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돌아보는 순간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해요. 강한 빛줄기 아닌, 터널 끝에 살짝 보이는 빛줄기가 아닌 정말 별 같은  하나입니다. 그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나요?

'틀렸어. 다시 돌아가.'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빛이 단호하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기분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정확히는 처음엔 못 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이런 순간이 반복되니 저는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번도 아니야. 다시 돌아가'이 말에 '그럴 것 같더라. 리셋할게' 쿨하게 받고 녹음해 둔 파일을 전부 지웁니다. 마치 걸어온 아스팔트 길을 전부 하얀 페인트로 덮는 작업과 같아요.


이 시간에는 나의 몸이 의자에 있는지, 나의 손이 펜을 들고 있는지, 패드인지 종이인지 단 하나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기분 느껴보셨나요? 꼭 펜이 아니어도 됩니다. 당신이 이런 기분을 느껴보았길 바라요.





책에서 나오기 싫다.


'나오기 싫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이지만, 이 문장에선 책에게 긍정적이라는 의미겠죠? 책은 저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한 번 깊게 들어가면 나오기 싫은 존재죠. 나와 책의 시간과 침묵을 반대로, 내면의 시끄러움과 뇌의 풀가동을 오롯이 느끼는 순간이 너무 좋습니다. 마치 영화를 볼 때 이런 장면이 있죠. 음악이 순간 멈추고, 주인공들이 마주치고, 지나가는 차들이 나오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차의 시끄러운 경적 소리, 도로의 번잡한 시끄러움. 책을 볼 때 저의 외면과 내면은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책에 빠지는 순간은 진심으로 나 스스로를 지웁니다. 내가 책에 들어가 저자의 인터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그 기분에 따라 저의 감정과 생각도 낙폭차가 심해집니다. 왜일까요? 책의 모든 내용이 저를 사로잡진 못합니다. 하지만, 읽는 중의 유연해지는 이성 또한 즐기게 되죠.


그러다가 흥미를 크게 자극하는 부분이 다가올 때 유연함은 던져버리고 등을 의자에서 떼며, 볼펜으로 저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이 낙폭차가 클수록 저는 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작다는 것은 그만큼 유연해지지도, 흥분되지도 않는 애매한 온도라는 의미겠죠? 항상 타이머를 15분에 맞춰두고 읽기 시작합니다. 15분 뒤가 방해꾼이 등장할 타이밍입니다. 그 순간 저의 행동은 항상 동일해요. 15분을 추가로 맞춘 뒤 방해꾼을 보냅니다.


왜 저는 책에서 나오기 싫을까요? 이 순간이 저에게 가장 소중한 순간이기에 그렇습니다.

왜 소중한지 아시나요? 당신은 책을 왜 읽으시나요? 저에게 책은 나에게 몰입하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아 하나 더 있네요. 글쓰기도 추가할게요. 책을 읽고 글로 기록하는 것을 당연시 여겨왔기에, 저에겐 하나의 행동입니다.


이 행동은 '나에게 몰입하는 유일한 시간'이 돼요. 책의 저자가 나를 깊이 볼 수 있게 해 줘요. 나의 심리 기저 끝까지 볼 수 있게 도와줘요. 저자의 이야기 속인데, 내가 헤매던 길을 그려갑니다. 그리고 저는 답을 찾습니다. 나에 대한 오답을요. 나에게는 정답만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에 대한 정답만 찾으려 합니다. 세상이 당신의 정답만을 인정하고 바라기 때문이죠. 당신의 오답은 점점 더 숨으려 해요. 세상으로부터 아닌, 당신으로부터. 그게 흐르고 흘러 당신도 당신의 오답을 제대로 찾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미 깊이 숨겼으니까요.


그때부턴 뭔가 잘못됨을 인지할 수도 없어지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뱅뱅 돌기만 하다 제 풀에 지쳤을 때 내면이 신호를 보냅니다. 뇌가 보내는 신호를 받아서죠.

 '네가 진짜 바라는 걸 찾아..!' 

그때부터 '나는 누구일까? 나란 어떤 사람일까?'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저는 이 신호가 오기 전에 책과 글쓰기에서 헤맴을 멈출 수 있었어요. 나의 오답을 찾아주었습니다. 정답만을 쫓던 제가 오답에서 멈춰야 다시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 이 당연함을 당연하게 외면했어요.


당신도 자신의 오답을 마주하고 계신가요?


나마저도 지우는 순간의 단 하나는 다음에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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