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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린 Jul 23. 2023

문을 밀어봐야 안다

<몽테뉴의 죽음 안내서>

모든 길을 헤매다가 이제야 다다랐습니다. 제가 몰입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를요.


"문이 닫혔는지 알아보려면 먼저 문을 밀어봐야 한다"



두려움의 가장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실패인가요. 아니면 후회인가요. 이 둘이 아니라면, 자신에 대한 실망인가요.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한 후 책임지고 갈 뿐입니다. 그 선택이 실패의 결과를 낳아도, 후회로 번져놓아도, 좌절과 실망감이 휩싸아도 그저 책임을 다합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온전히 몰입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탐구하는 모든 순간이 가장 중요했으며, 그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에세'라는 장르까지 만들었어요. 오늘날은 '에세이'라고 부릅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싶던 몽테뉴는 '죽음'까지도 실행해 볼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간디 같은 실험가였던 몽테뉴는 뭐든지 한 번은 시도해봐야 한다고 믿었다. 몽테뉴는 말했다."

"죽음은 우리가 타고난 조건이다. 우리의 일부다. 죽음에서 도망치는 건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다."

"문이 닫혔는지 알아보려면 먼저 문을 밀어봐야 한다. 죽음만큼 문이 굳게 닫힌 곳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문을 반드시 밀어보아야 한다. 시도해 보기 전에 죽음을 무시하지 말라고, 몽테뉴는 말한다."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동의가 되시나요?




저는 문을 밀어본다는 것, 다시 말해 실행은 2가지의 선물을 준다고 느낍니다. 첫 번째 선물은 실패와 성공 여부를 정해주는 것과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는 티켓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나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무엇을 견딜 수 있고 견딜 수 없는 지를 알려주는 계단입니다. 티켓을 가지고 묵묵히 올라가는 계단 끝에는 '죽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몽테뉴는 이 죽음의 문턱을 외면하지 말고, 삶을 살아가며 동시에 느끼고 죽음과 친구가 되라고 말합니다. 더 정확히는 친구가 되진 못하더라도, 죽음의 날카로운 이빨은 뽑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의미는 죽음을 적으로,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세계로 바라보지 말라고 하네요. 


죽음을 미워하지 말라는 얘기는, 죽음을 시도해 보라는 얘기는 자살기도를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몽테뉴는 어떻게 죽음을 연습하고, 초연할 수 있었을까요?




몽테뉴는 수없이 오가던 길을 100% 안전하다고 여기며 말을 타고 가던 날에, 다른 사람이 타고 있는 말과 부딪쳤습니다. 그는 머리부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몽테뉴는 회상합니다.

말에서 떨어진 몽테뉴는 멍들고 피 흘리는 몸으로 바닥에 누워있다.
"마치 통나무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감각도 없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확신했다. 그때 몸이 살짝 움직이는 게 보였고 사람들은 몽테뉴를 일으켜줬다. 그는 즉시 피를 한 양동이만큼 토해냈다.

몽테뉴는 말했다. "그때는 내 삶이 내 입술 끝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당시 눈을 감고 자연스럽게 기꺼이 자신을 놓아주었습니다. 몽테뉴는 이것이 자신의 죽음이었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죽음이 될 수도 있던 상황을 '끝없는 달콤함'이라 여겼고, '매우 행복한 죽음'이 되었을 거라 느꼈다네요. 하지만 이내 몽테뉴는 상처 났던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며 동시에 잃었던 고통의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이 말을 덧붙이며.

"맹렬한 충격과 함께 번개가 내 영혼에 내리친 것 같았고 다른 세계에 있다가 돌아온 것 같았다."


그는 죽음 자체를 볼 순 없지만 죽음의 가장자리를 잠시 일별하고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살펴볼 순 있다고 합니다. 몸이 아프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닌, 우린 살아있기 때문에 죽는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살펴보고 온다는 사실은 새로우면서도 직접 느끼기에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상을 통해 죽음을 그저 막연한 존재로 보지 않을 수 있음을 배웁니다.




이 글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의 저서 서평입니다. 책에서는 죽음이 인생의 '실패'라고 표현됩니다. 대부분이 그렇다 여기기에, 죽음을 회피하고 슬퍼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죽음은 인생의 '완성'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나를 탐구하는 계단을 통해 가다가 걸리고, 티켓을 층마다 발급받으며 올라가는 중에는 완성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삶의 과정일 뿐이며, 완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만이 삶의 끝이자 완성이며, 새로운 시작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나'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한 몽테뉴를 보며 강렬하게 이끌렸습니다.


'나마저도 지우는 순간'삶의 몰입을 담을 것이며, 몰입하는 사람의 철학과 사유를 담아낼 것입니다. 이를 통해 몰입하는 '저'를 바라보겠습니다.

 


몽테뉴는 천천히 죽음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죽음은 마치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재앙이 아닌 아름답고 불가피한 것"이다. 낙엽은 어떻게 떨어져야 할지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른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때가 되면 자연이 전부 다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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