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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린 May 24. 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 리뷰
청춘이 이랬지. 3편, 펜싱

<스물다섯, 스물하나 리뷰>

<그 애의 세계, 쉽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그 애의 세계로 간 나희도. 더 이상 혼자 뒤에서 보는 것이 아닌, 대면하는 순간이 온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오랜만에 재회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녀의 들뜸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유림이 희도 앞으로 들어오는 순간, 청량하고 희망찬 OST가 시작되면서 슬로모션이 걸린다. 행복해 보이는 희도와 달리, 유림은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이다. 코치는 유림에게 희도와 연습경기를 하라고 한다.

“이름도 모르는 애랑 무슨 경기를 해요?” 냉랭하게 말하는 유림. 이에 순수하게 “희도야! 나희도.”라고 받아치는 마냥 밝은 희도의 모습은 왠지 두 사람의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내가 동경했던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껴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애를 향한 희도의 마음은 끝까지 빛날지 궁금해진다.

희도에게 독설하는 유림

“나 니 팬이거든. 니 경기 하나도 안 빼고 다 봤어. 너처럼 되고 싶어서.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수줍게) 순수하게 자신의 팬심을 고백한 나희도.

“등신 같은 소리로 들려. 내가 너 같은 애들을 한두 명 보는 줄 알아? 반학기도 못 버티고 다 나가. 실력차를 못 견뎌서. 그런데도 양찬미(코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너 같은 걸 받아. 왜 그런 것 같아? 한 명씩 늘 때마다 떨어지는 학교의 예산이 달라져서 그래. 그냥 넌 1인분의 예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충격에 빠진 듯한)

“있지. 할 수 있다고 믿고, 될 수 있다고 믿는 거. 아까 내가 궁금해서 이름도 모르는 애라고 했겠어? 이 좁은 바닥에서 내가 니 이름을 모를 정도면, 그게 니 성적표야. 그 성적표에 그런 믿음은 믿음 자체가 잘못이지”

유림은 왜 이리도 차가운 것일까. 무엇이 유림을 이렇게 부정적으로 만드는 건지 알고 싶어 진다.

“오히려 멀리서 지켜볼 때가 더 가까웠던 것 같아. 그 애를 동경했던 내 마음이 조금 가여웠어.” 이 말만으로도 희도의 팬심이 가엾게 느껴진다. 이들의 앞날이 어떠할지는 직접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피어난 꿈. 그 꿈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희도의 꿈은 녹록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희도. 굴복이란 것을 모르는 소녀이기에 어떻게 나아갈지 기대만으로 흥미롭다.   

펜싱천재 나희도, 펜싱국가대표 고유림 연습경기

<펜싱. 그녀들. 그리고 앙 가르드(자세). 프레(준비). 알레(시작)!>

연습경기를 하는 그녀들. 곧 이들의 첫 접전이 시작된다. 천천히 장비를 세팅한다. 날카롭게 서로를 직시하는 두 사람. 헬멧으로 그 눈빛을 감추며 나희도 먼저 기선제압 기합을 크게 넣는다. 이들의 숨 막히는 경기는 시작된다.

“앙 가르드, 프레, 알레.” 양찬미의 구호에 펜싱의 날이 서로를 쫓아 날렵하게 찌른다. 이에 맞춰, 강렬한 음악이 흐르고, 스포츠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고유림의 선점으로 본격적인 경기가 흐른다.

고유림이 득점하고 있음에도, 나희도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그동안 분석해왔던 그 애의 펜싱에 주저 없이 대응한다. 점점 경기는 치열해지고, 기꺼이 나희도는 1세트를 따낸다. 나희도는 망설임이 없는 인물이다. 나희도의 펜싱도 동일한 것 같다. 고유림의 멘털을 흔들어 놓는 순간이 온다. 고유림은 펜싱 신동 나희도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5년 전, 마주했던 나희도에게서 펜싱 경기 이래로, 난생처음 공포감을 느꼈던 유림이다. 또다시, 어린 시절의 공포감에 흔들리는 유림. 그 틈을 절대 놓칠 리 없이 희도는 우승을 거머쥔다. 고유림의 라이벌. 희도의 꿈이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시대가 자신의 꿈을 빼앗았다고 들었던 희도. 이번엔, 시대가 자신의 꿈을 돕는다는 말을 들었다. IMF로 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중도 포기한 두 선수가 있어서, 희도가 추가합격으로 선발되었다. 희도는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승할 자신은 충분하다. 찬미에게 특별 훈련을 시켜달라고 직접 찾아간다. 그리하여, 전직 펜싱의 전설 양찬미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이 장면은 몽타주로 그려지는데, 한 편의 순정만화책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시간은 잠시 현재로 온다. 민채는 희도의 다이어리에서 뜻밖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당연한 듯한 엄마의 금메달이었다. 엄마는 노력 없이 타고난 천재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보지 못한 엄마 나희도는 끝없이 자기 점검을 해나가는 노력파 선수였다.

“엄마의 일기장 모든 페이지 밑엔 그날그날 연습에 관한 기록과, 반성들로 채워져 있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충격받은 건 엄마의 로맨스가 아니다. 엄마의 노력이다. 엄마만 아는 엄마의 노력들. 엄마의 화려함 말고, 노력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희도, 국가대표 선발전 경기

국가대표 선발전, 당일이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점검을 마쳤던 나희도는 오늘 나희도만의 펜싱을 보여줄 생각뿐이다.  

“나희도. 네가 여기까지 온건 운이었다. 근데 여기를 나갈 때는 니 노력의 결과를 보게 될 거다.” 양찬미도 그녀만의 노력을 안다. 그 노력이 어느 정도로 값지고 훌륭했는지를. 나희도는 말한다.  

“쌤. 저 오늘 한 번도 안 져요.” 

확신을 넘어서서 결과를 이미 보고 온 듯한 희도의 강력한 말은 단어 한마디에 실린 힘이 느껴졌다. 덩달아, 나도 나의 미래가 이미 정해졌다고 믿을 수 있는 용기가 따라왔다.

“나는 오늘 국가대표가 된다.” 이 말을 끝으로 희도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가 시작된다. 희도는 오늘 단 한 번도 지지 않는다. 포효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기세는 그 누구보다 드세다.

“저 선수는 너를 흥분시키려고 최선을 다할 거다. 절대로 흥분하지 마라.”

결승전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온 나희도. 그녀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 코 앞에 다가와있다.

“파악은 끝났다. 자 이제 내 펜싱을 보여줄게.” 그녀의 모든 노력의 결과는 직접 보며, 함께 긴장해주기를 바라본다.

그녀들의 펜싱

‘단 하루도 빠짐없이.난 이 말을 참 좋아하지만, 가장 어려워하기도 한다. 에디슨도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기록에 남겼다고 한다. 누구나 이 말은 쉽게 느껴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는 루틴을 우선순위로 여기는 사람으로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루틴을 지켜나가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다. 희도가 처음부터 끌렸던 것은, 희도의 이런 모습이 예상돼서였던 것 같다.  

스스로 통제할 줄 아는 그녀의 정신력을 굉장히 갖고 싶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펜싱이다. 펜싱을 대하는 그녀들의 자세이다. 펜싱을 향한 그녀들의 몰입이다. 오로지 우승만을 거머쥐기 위해 악착같이 치고 나가는 멋진 여자들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섬세함을 놓치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 같다. 펜싱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 펜싱을 좋아하던 사람들 가릴 것 없이 작품을 보는 순간만큼은 모두 펜싱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연출과 음악이 압권이었다. 생략된 것이 너무 많다. 이진이 오롯이 혼자 져야 했던 짐. 희도로 인해 그 무게를 이겨낸 이진. 희도와 유림. 각 조연들의 이야기 등. 그럼에도 이렇게 길어졌다. 그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청춘을 엿보고 있노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다.

찬란하고 빛나고 재밌는 모든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싶지만, 이 글은 오로지 직접 그 감동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 이기에, 각자에게 각기 다양한 의미로 보석 같은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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