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노동청을 찾아보게 된 사연
뉴질랜드 도착 후 구직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키위잡에 성공적으로 취업했다.
운이 좋았던 건 사실이나 그리 쉽게 거머쥔 결과는 아니었는데!
우리나라랑 달리 뉴질랜드는 '트라이얼'이라는 제도이자 문화가 있다.
한국에서 알바 채용은 서류와 면접으로 끝인 경우가 많은데, 뉴질랜드에서는 면접까지 본 뒤에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까지 트라이얼을 하고 채용을 결정하는 게 보통이다.
첫 직장(kebabs on queen)에 취직하기 전, 또 다른 케밥집에서 트라이얼을 한 경험이 있다.
burger를 '버르게르'라고 발음하시는 사장님이 있는 찐 현지인의 케밥집이었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위치도 좋고, 음식도 맛있어 보이고... 적어도 사장님의 첫인상은 괜찮았다.
아마 사장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기 때문에 그분도 마찬가지로 괜찮아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감 있게 CV를 건네니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첫만남부터 복선은 이미 깔려있었다.
'우리 가게는 아무나 대충 채용하고 금방 그만두는 가게가 아니다. 한 번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 불도 뜨겁고 엄청 바빠서 쉽지 않을 거다. 할 수 있겠냐?'
여기서 할 수 없다고 대답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주억이자 바로 다음날 트라이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여름에 입기엔 살짝 두꺼운 재질의 빨간 티셔츠를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가게를 찾아갔다.
문이 닫혀있었다.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십 여분 기다렸을까, 도착한 여자 사장은 나를 보고 잠시 의아해했지만 트라이얼을 하러 왔다고 하니 들여보내 줬다. 들어가서 또 십몇 분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여자 사장은 자기네 케밥샵이 얼마나 재료에 신경을 쓰는지, 손님들이 어떤 말을 해주고 어떤 부분에 만족하는지, 아무나 일할 수 없고 또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등 남자 사장(내 CV를 받았던 사장)과 정말 똑같은 소리를 했다.
한국에서도 아르바이트한 짬이 좀 있던 나로선, 외국인들이야 느릿느릿 굼벵이처럼 대충 일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이 시간에 나와야 하며, 나오자마자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아침잠이 많아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나,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일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또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대충 불길함을 흘려보냈다.
다른 사람과 섞여서 일해보신 분들은 다 아실 만한 얘기다. 사람이 좋으면 일이 힘들어도 버틸만하다.
이른 기상, 무거운 채소와 고기, 칼과 불을 쓰는 위험한 환경 그리고 들이닥치는 손님들.
처음에는 좀 힘들어도 못할 일도 아니다.
자기는 맨날 천날 몇 년을 해왔을 그 칼질을 딱 한 번만 보여주고
얼추 천천히 따라 하니 그렇게 느리게 하면 절대 못 끝낸다며 첫 시도부터 면박.
이후에도 양배추, 토마토, 양파 등 채소를 주구장창 썰다가 손을 베었다.
여자 사장은 손을 벤 뒤로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친절함조차 깡그리 벗어던졌다.
한참 뒤에 출근한 남사장은 일을 못하면 눈을 부라리며 말없이 압박했고
여자 사장은 남사장이 대놓고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했다.
사장 부부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친절했다.
외모만 보고 한국인이라 생각했던 직원들은 사실 몽골인이었고, 한국말과 비슷한 몽골어를 쓰며 대화했다.
얼핏 들으면 정말 한국말이랑 비슷하게 느껴졌다.
남미 출신 남자애가 나를 일대일로 케어하며 일을 가르쳐줬다.
나름대로 친절하고 못하는 것도 이해해주는 듯했으나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묻는 등 초면에 참 다양한 질문을 했다.
하여튼 몇 시간 동안 여자 사장의 히스테리와 엄청난 손님을 받아내며 생각했다.
'얘네 사람 구할 생각이 없구나.'
정신없는 첫 번째 트라이얼이 끝나자 손에는 따끈한 케밥 하나가 들려있었다.
내일 두 번째 트라이얼 때 보자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보내는 남사장의 얼굴을 보자니
노동력이 착취당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무려 7시간.
융통성 있는 한국인으로서 경험 삼아 3-4시간 정도는 무급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7시간은 좀 심하지.
내가 썬 양배추로 장사하고, 내가 닦은 테이블로 손님 받고, 내가 서툴게 썬 빵도 어쨌든 이익으로 환산됐을 거 아닌가. 남의 장사 망치고 뻔뻔하게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7시간이나 일 했는데 고작 케밥 하나?
집에 와서 지친 몸으로 다시 생각해봐도 도저히 그런 환경에선 일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내일 갈 생각도 없겠다 트라이얼을 못 가겠다고 얘기할 겸
트라이얼 피를 받고자 전화를 걸었다.
뉴질랜드 노동법 상 트라이얼도 시급을 쳐서 줘야 한다.
'안녕, 나 아까 트라이얼 했던 Roxie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어서 일하기 힘들 것 같아. 내일 트라이얼도 못 가고~'
'그래, 오늘 수고했어. 괜찮아~'
'그래서 말인데 오늘 일한 트라이얼 피는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내 계좌를 알려주면 될까? 아니면 받으러 갈까?'
트라이얼 피 얘기를 꺼내자 남사장이 목소리를 높이며 분노에 떨었다.
네가 오늘 한 게 뭐가 있냐며 노발대발하며 절대 못 준다고 단언했다.
길게 말할 생각도 없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줄 거라는 기대도 사실 없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구글에 뉴질랜드 노동청 사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법의 힘이 강한 뉴질랜드에서는 이런 사소한 일도 왠지 처벌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이트로 간단하게 신고하는 form도 있었다.
-어디서 사건이 발생했는가? Istanbul Shawarma, Auckalnd CBD...
-언제 사건이 발생했는가? 2019.01.??
-외형이 어떻게 생겼는가? 1) 백인 2) 흑인 3) 아시아인 4) 중동인...
등등 form을 채우고 마지막 추가로 하고 싶은 말도 적었다.
'이 사람이 7시간이나 트라이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았다.'
부실하게 작성된 form을 보자 뉴질랜드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뭐라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신고 결과는 모른다!
누구에게 연락 온 적도 없으며, 그 가게도 계속 장사를 했다.
어디 서에서 연락이라도 받았을지 아니면 유야무야 없던 일처럼 넘어갔을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렇게 내 첫 트라이얼은 끝났다.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좋다 생각한 그 장점은 큰 단점이 되어, 지나갈 때마다 내게 불쾌감을 주었다.
하필이면 내 친구가 사는 집 바로 앞에 저 가게가 있어서 피할 수도 없었다.
아직도 잘 살고 있나요 버르게르 아저씨.
오클랜드에 또 방문하게 된다면 그땐 들러볼게요.
사람을 갈아서 그런지 케밥 하나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