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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Mar 08. 2019

1983년 <철학에세이>를 만나다

철학은 나침반이다.


30년 전의 책을 꺼내 들었다. 이 책은 재작년 고3 같은 반 친구인 상규를 만났을 때 알게 되었는데, 내가 그에게 선물한 책이라 한다. 책머리 쪽에 꼭꼭 눌러쓴 필체를 보니 내가 그 녀석에게 주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 글자는 종로에서 노래공연을 하던 노래패들의 뒷면에 걸려있던 플랭카드속의 문구였고 나는 그 글귀를 여러 권의 책머리에 새겨두곤 했으니  말이다.



1992년 선물로 준 책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친구도 고맙고, 책도 고맙고 그렇게 해서 다시 나의 수중으로 모셔온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금방 다시 읽고 애초의 선물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아직도 못 지키고 있다. 올해 봄날이 되면 다시 이 책을 주인장에게 돌려주어야겠다.


나는 이 책을 고등학교 2학년인 1991년에 만났다. 외부 모임에서 만난 대학생 선배의 손에서부터 나에게 왔다. 그 당시 이 책은 금기였고 그 금기의 책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혹여나 학교 선생님들에게 걸리면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았고 행여 불심검문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경찰들에게 찍혀서 학교를 갈 수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철학이 철학자만의 책,  윤리 교과서에만 박제되어 나와 무관한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과학적 세계관, 사물의 운동법칙,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 그리고 역사에 대한 전망과 인간의 실천의지를 구체적인 언어로 만났다. 그것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 충격은 대학생활 내내 그리고 지금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도 견지하고 있는 세계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첫째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철학이 진정 그것을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우리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진 것으로 되었다는 점입니다. 철학이 철학을 전문으로 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암호 같은 것으로 되어버린 점은 마땅히 극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단절된  철학에서 커다란 사회적 의의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철학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그 내용이 어렵게 설명되고 있다는 점, 둘째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철학의 사회적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활에  관련되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쉽게 설명하는 철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철학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제시되는 철학 중의 많은 것들은 우리가 접하는 것들을 해석하고 설명하려 하지, 그것들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원리를 직접적으로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접입니다. 만일 철학이 설명으로 그쳐버리는 것이라면 이것 또한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철학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결국 생각하기 위한 생각에 그쳐 버릴 뿐일 테니까요.
셋째는, 물론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것과 관련되는 것입니다만 철학적 내용이나 지식이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몸에 달고 다니는 장식품에 불과한 것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철학은 과시적 사치품이 아니라, 당연히 생활의 곡쟁이가 되고, 삽이 되고, 또한 나침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덟 마당으로 이루어진 이 조그마한 책자는 이상과 같은 문제점들로부터 출발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 내용을 구성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생활에 관련되는 문제를 보다 쉽게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 구체적 생활에 보탬이 되게 하고자 하는 의욕이 크게 작용해 왔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의 문장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림은 오랜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책의 내용과 나의 생각을 연결시켜주었다.

1. 철학은 나침반이다.


철학은 나침반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정북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 진실을 알게 해 주고 인간의 삶과 역사가 정중앙으로 갈 수 있도록 이정표를 만들어 주는 나침반을 우리는 철학이라고 부른다. 진실을 가리는 철학, 언어유희로만 있는 철학은 철학자들만의 그것이자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이지 삶을 이어가는, 살을 지탱해 나가는 이들의  그것은 아니다. 그림처럼 언제든 손바닥에 올려놓은 나침반,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철학이다.  


2. 철학은 전체와 부분의 상호 침투 과정이다.

우리는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라고 하면서 전체 속에서의 부분, 부분 속에서의 전체의 관계 즉 상호 연결성, 상호 관련성에 대해서 사려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배워왔습니다. 자신의 시야와 자신의 경험만을 최우선시하여 그것만으로 세상을 해석할 경우는 오류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의 경험과 시각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측면의 시각과 토론하며 진실에 도달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혼동스러운  이 시대에서 진실에 한걸음 더 접근하여 제대로 된 가치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철학은 관계와 관계를 잇는 나침반이다.


우리들은 단독으로만 살아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세상은 나만 우리만 인간들의 일들만으로 넘치게 되었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 생태계의 위계와 질서 속에 살고 있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책에서 언급하다시피 생태계의 한 부분이 파괴되었을 때, 그 파괴의 정도가 임계점을 넘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는 우리 인간의 지위까지도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1980년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에 전 지구적 연대활동을 즉각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최근 독서모임에서 본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도 전 지구적 연대활동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관계와 상호의존성에 기인합니다


4. 경찰이 도둑을 잡고 가는 것은?


30년이 지났지만 위 그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당시의 충격이 너무나도 커서입니다


a그림은 누가 보더라도 도둑이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b그림은 어떠한 그림일까요? 언뜻 보면 도둑이 경찰을 잡아끌고 가는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가짜 경찰이 사복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입니다. 두 그림은 기본적으로는 같은 것이지만 외관상으로는 거꾸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본질은 같은데 현상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과 현상의 개념을 그리고 양자가 상대적 독립 하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a, b 모두 도둑을 잡는 경찰입니다.


현상과 본질, 상대적 독립이란 것을 알게 된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이 모든 사물과 세계에 대해서 제일 먼저 해 아하는 건 바로 의심입니다. 내가 의심하고 있는 것 자체도 의심하라 바로 그것까지도요.


5. 양적 변화와 질적 변화


한올의 실을 베틀에 앉히고 가로와 세로로 짜고 하여 우리 선조들은 천을 만들었습니다. 실이 한올 두올 계속 겹쳐지는 무수한 과정을 통해 실이 천으로 새로운 질적인 상태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흔히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과정도 이와 동일합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 질적인 상태가 바뀌는 임계점의 최대한도까지는 물은 절대 그 성격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 임계점을 치고 올라가는 그 순간에 물은 수증기로, 액체는 기체로 질적인 도약을 합니다.


공부도, 학습도, 사회의 발전도 이 임계점을 뛰어넘을 때까지 밀어 넣는 절대 양의 양적인 노력이 질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위 철학 에세이의 그림이 알려주는 것도 삶과 죽음의 질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 가도 합니다.


6. 부정의 부정의 법칙


부정이라는 단어는 "아니다"의 뜻이지만 철학에서의 부정의 의미는 하나의 질이 다른 하나의 질로 변화하는 것 질적 변화를 말합니다


밀알이 밀로 변화하는 과정의 근본 원인은 밀알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 즉 "밀알이면서 동시에 밀알이 아닐 가능성이라는 두 대립물의 통일"입니다. 이 통일된 두 대립물의 상호 투쟁을 통해 승리한 "밀알이 아닐 가능성"으로의 전화, 즉 밀이 되는 것을 부정이라고 부릅니다


즉 이런 질적 변화의 과징을 부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위 그림과 같이 "부정의 부정"의 과징을 통해 보다 많은 밀알이, 보다 나은 상태로의 변화가 이뤼지게됩니다. 부정의 부정은 사물의 발전 과징을 말합니다.

따라서 처음의 밀과 나중의 밀은 같은 밀이지만 결코 같지 않은 전혀 다른 밀입니다


7. 나는 돌지 않았다


저 그림 속 짧은 세 글자 "돌았군!"

30년 만에 다시 봐도 저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말투, 앞뒤 다 잘라먹고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왜 그러는지 관심도 없는듯한, 더 심한 말을 애써 참으면서 정제되어 뱉은듯한 말에 기분이 상합니다.

우공이산, 어리석은 이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 믿습니다. 굳이 세상까지 확장하지 않더라도 하나하나씩 자신만의 발자국을 내딛는 실천이 온전한 나를 밀어냅니다


남들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매일매일 우직하게 내딛는 실천  하나하나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나로 질적 변화시키는 부정의  과정입니다. 내일의 나로 발전시키는 부정의 부정입니다.


더욱이 나와 결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라면 그 변화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그 폭도 넓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이 책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매일매일 하고 있는 스몰스텝과도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림과 함께 30년 만의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 당시의 생생한 감동이 지금도 이어집니다. 다시 한번 이 기억을 되살려준 상규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3월의 따뜻한 봄날에 새책을 사서 상규에게 주어야겠습니다. 새책은 지은이도 없이 <동녘출판사 편집부>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 아닌 이 책의 실제 필자 조성오 변호사의 책입니다.




#철학에세이 #성장판 #임세환 #스몰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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