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듣고 있습니다.
형이 1993년 <다시부르기1>에서 첫 곡으로 불러주었습니다.
저는 그해 대학에 입학하고 겨울 1993년 12월 21일 입대했습니다. 광석이형이 불러준 이등병이 감사하게도 제 이야기이네요.
대학에 입학한 아버지의 아들은 고삐 풀린 망나니처럼 당신의 질서를 거역합니다. 아버지는 대학가면 절대 하지 말라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데모하지 마라, 신세조진다." 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절대 하지 말라는 데모란 데모는 모두 다 나가고 걸핏하면 집에 들어오질 않으니 속에 천불이 나셨을 겁니다. 지하철 30분이면 올 집에 들어오질 않았으니까요. 학교만 갔다하면 2,3일은 기본, 어쩔땐 일주일, 보름을 안 들어가고 속만 상하게 했었죠.
그해 추석날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서류 한장을 툭 던집니다.
"이거 써라"
"이게 뭔데요?"
"19살 조기입영신청서. 정신 못 차리니 1학년 마치고 군대다녀와서 공부해야지!"
"......."
아! 아버지에게 이런 비장의 카드가 있을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당시 선배들은 대부분 2학년, 늦으면 3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고, 1학년 마치자마자 군에 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군대에 가게됩니다.
12월 21일 군에 가는 날, 아버지는 큰 절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뭐 생이별도 아니고 조금 있으면 보는데 큰 절하고 떠냐냐는 말씀이셨습니다. 꾸벅 인사만 하고 대문 밖을 나섭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아버지
는 사실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강해보이지만 한없이 약한 게 아버지였고 약해 보이지만 강하고 결단있는 어머님이셨습니다.
춘천가는 기차안에서 들었던 이등병의 편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큰절도 하지 못하고 나선 입영길이 아쉬었습니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입영을 하고, 휴가 나올적마다 광석이형의 카세트 테잎을 사서 군대에서 들었습니다. 제대하면 학전소극장이나 대학교 대동제에 김광석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6년 1월 돌아오지 않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의 제대를 50일 남겨놓고 말입니다.
군생활동안 힘이 되어 주었고 부푼 기대감을 잔쯕 안겨주었던 광석이형을 떠 올려보니 더더욱 아쉽습니다.
형의 바램처럼 친구들은 자주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생일이면 <축전>도 보내주었고요. 지금 돌이켜보니 저의 군 생활은 행복했었습니다.
제대한 사수도 편지를 보내주었네여.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었네요. 가장 큰 힘은 형, 김광석이었습니다.
추억을 돋게하는 노래입니다. 그 당시의 친구들이 생각나고, 군대 동기들이 떠오릅니다.
오늘 대구에 살고있는 제 동기놈에게 전화 한번 해봐야 겠습니다. 잘 살고 있는지 해서요.
오늘 당시 중대장님에게 전화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 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