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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Feb 14. 2021

시인의 노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김남주시인의 시와 노래를 기억합니다.

설날

차례를 지내러 집에 다녀왔습니다. 책장에 시집 한권이 꽃혀져 있었습니다.


시집은 김남주시인의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이었습니다. 앞에 날짜와 메모가 없는 걸 보니 사회에 나와서 구입을 했었나 봅니다.


2월13일 어제

1994.2.13.은 김남주시인이 세상과 이별한 날입니다. 1946년생, 지금의 저보다 한살 많은 49에 세상과 이별을 했습니다.


시인의 시를, 시인의 노래를 처음 접한  1991년 고등학교 2학년때였습니다. 한글학회내에 한겨레한글나무고등학생모임(이하 "한글나무")이 있었는데요. 그 모임에서 만난 다른 학교 선배들을 통해서였었죠. 시인의 노래가 좋았습니다. 모임의 뒷풀이에는 항시 이 노래를 불렀나 싶습니다. 그해 여름 성균관대학교에 금잔디광장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의 뒷풀이 마지막 노래는 <함께가자 우리이길을>이었습니다. 그저 노래말이 좋았습니다. 이 노래를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게 좋았고요. 노래의 울림이 세상에서 펼쳐질 수 있기를 희망했었습니다.


1994년 8월 일병 계급장을 달고 휴가를 나오게 되었는데요.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되었습니다. 시인의 죽음을 요. 시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하지 못해서 송구했습니다. 시인을 통해서 광주를 더 깊게 알게 되었고 시인을 통해서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칼 나의피>,<조국은하나다>,<아침저녁으로 읽기위해서> 등 시인의 시집을 펼쳐 소리내어 읽어 내려가던 옛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일찍 세상과 이별을 한 시인이 원망스러웠습니다. 10년 가까운 창찰살이가 시인의 몸을 지치게 했나봅니다.


"계급사회에서 있어서 시인은 해방전사와 동의어입니다." -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하면서(1988.12.)


오늘 새벽 김남주시인의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았습니다. 이 다큐도 1999년, 20년전의 작품이네요. 시인의 삶을 여과없이 보여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자유를 지향했던 시인이 계급과 착취가 없는 그곳에서 평안하게 쉬시길 바랩니다.


자유를 지향했던 시인의 시는 안치환의 목소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불려졌습니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때
나는 자유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 라고노래할 수 있으랴
노래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때
나는 자유 자유
피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 라고노래할 수 있으랴
노래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때
나는 자유 자유
피와 땀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다라고노래할 수 있으랴
노래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워--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
속으론 워--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

- 자유, 김남주의 시를 안치환이 노래하다


대학때 친구들과 만나면 꼭 이 노래를 부릅니다. 시인의 호통처럼, "제잇속만 챙기지말자"고 이야기 합니다. 나의 자유가 타인의 안녕을 무시하고 짓밟지 말자고 말입니다. 시인의 노래처럼 "함께가는 길"을 걸어가자고 말입니다.


설날 시인의 유고시집을 집에서 찾아 하나씩 읽어보았습니다. 시인은 가셨지만 시집의 염려처럼, 시인의 우려처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아닙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삶에서 우러나오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쉬십시오.



노래패 꽃다지의 <함께가자 우리이길을>, 시인의 노래를 불러주어 감사합니다.
안치환의 <자유>, 김남주 시인의 시를, 절규를 노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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