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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Feb 27. 2021

올 여름은 망했습니다

장사 안 된 정월대보름

이번 여름이 안 더웠으면 좋겠습니다. 체중도 넘친 데다가 가뜩이나 땀이 많은데요. 날씨까지 더우면 정말 대략난감입니다. 한겨울에도 조금만 움직이면 잔뜩 땀을 흘리는데요. 그래서 어제는 제게 정말 중요한 하루였습니다. 


더위를 팔아보려고 출근길에 사람들 이름을 불러보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침마다 인사나누는 여러 단톡방에서 사람들 이름을 불러보았는데요. 정말 하나 같이 대답들을 안하는겁니다. 다들 사연들은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인사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어떤분은 수영장을 가셨다고 못보았다고 하시는데요. 다들 제 더위를 안사갈려고 작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많은 분들이 <더위팔기>를 잘 모르십니다. 정월대보름 아침에 하는 이 행사를요.


국민학교시절에는 이런 장난을 많이 했여요.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하지 않고 되려 역습을 하는 것입니다. "네가 내 더위 사가라"라고요. 공정한 게임입니다. 게임의 룰을 알면 말이죠. 


그런데 룰을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특히 80년대생, 90년대생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룰을 모르니 더위를 팔수가 없더라고요.


사무실에서 제일 먼저 출근한 90년대생 A에게도 더위를 팔려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A,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평가사님"

"A"

"네, 평가사님"

"대답한겁니다."

"네, 무슨일이신데요"

"올 여름 제 더위 사가신거요. 이름을 부르고 대답을 하면 제 더위를 사가신거라고요"

"네?....그런게 어디있어여?

"아....오늘이 정월대보름이잖아요. 오늘 아침에 하는 올해의 더위를 파는 건데요"

"이사님. 그런게 어딨어요"

"아놔, 아 모르는구나. 모르는 분에게 팔수도 없고. 네이버에 검색해보세여, 더위팔기라고"

"아..네.. 정말 있네요. 완전 신기해요"



이 친구 A, 더위팔기의 게임의 룰을 알게 된 순간부터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이제는 불러도 대답을 안하는 겁니다.


"A"

"....."

"아놔, 그거 아니니까, 대답을 해요"

"네, 평가사님"


아. 이게 신기한 일이구나. 신기한 것은 모르겠고 내 더위는 누구한테 팔지 걱정입니다. 그러다 옴빵 뒤집어써서 불기운 가득한 여름을 맞이할 것 같은데요. 저녁 늦게까지도 더위를 한분밖에 팔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엔 매번 좋은 글을 써주시는 선생님에게 팔아보려고 했는데요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신 고수분의 철벽방어에 막혀버렸습니다. 걱정입니다. 올 여름은 망했습니다. 가뜩이나 땀 삐질삐질인데요. 그나마 더위를 유일하게 팔 수 있는 정월대보름에 한분밖에 팔 지를 못해서요. 망했습니다. 망했어요.




참, 정월대보름 아침에 먹는 귀밝이술도 모르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A, 오늘 아침에 소주한잔 했죠?"

"누가, 아침부터 술을 먹어요?"

"아니야, 오늘은 공식적으로 아침에 술 먹어도 되는 날이야"

"네???? 평가사님 그런게 어딨어요"

"내가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네이버에 찾아보세요. 오늘 아침에 술한잔 먹으랬더니 한병을 먹는 분들도 많아서 예전에는 음주단속도 하고 교통사고도 많이 나고 그랬어?"

"정말요? 잠시만요"

"아..진짜 신기해요"


신기한 일이 아닌데.. 암튼 올 여름은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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