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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Mar 15. 2021

잘 버티고 견뎌

그게 성장의 길이야. 나도 옆에 있을께

지난주 평일 저녁 9시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이 시각에 전화하실 분이 아닌데 말입니다.


"평가사님. 잘지내시죠?" 이미 기분이 업되셨어요

"네. 이 시간에 어떻게.... 잘 지내시죠?"

"저희 여기서 술한잔 하고 있는데 평가사님 이야기가 나오니까 너도나도 다 잘 안다고 그래서 제가 제일 잘 안다고 전화드린 거에여.잠시만요"

"아..네"

"여보세요. 형님. 저 A에요"

"어. 그래 잘 지내. 야~~ 진짜 오랜만이다. 근데 무슨 형님이야. 이놈의 XX"


몇년전 우리 회사에 있다가 한국감정원으로 이직을 했던 후배녀석입니다.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 녀석이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고 했는데 아주 난리를 쳤습니다. 난 못보낸다. 계약서대로 취업규칙대로 보내더라도 한달 있다가 보내니까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네 마음대로 갈거면 근무지이탈로 신고할 거니까 알아서 하라고 으름장도 놓아보았지만 이미 마음 정한 녀석의 마음이 돌아설리 없었죠.


"형님이 감정원에 공시지가 심사하러 내려오실때 인사드린다는 게 아직도 너무 죄송해서 인사를 못드렸어요. 대신에 바로 위 선배들만 뵈었네요. 잘 지내신다는 이야기는 전해 듣고 있어요."

"됐어. 잘지내면 됐지.뭐가 그렇게 미안하대. 나쁜 놈. 너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나도 듣고 있어. 잘 지내고 이렇게 연락줘서 고마워. 잘 지내고 잘 견뎌내"

"넵"


목소리를 들으니 잘 견뎌내고 잘 지내고 있어 보입니다. 어딜가도 잘 할 후배니까. 벌써 만난지 7년, 헤어진지 5년째이니 더더욱 잘 하고 있겠죠. 이 후배가 어디까지 성장할 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잘 견뎌낸 만큼 견뎌낸 시간보다도 더 활짝 피게 될 것이니까요.





요즘 후배들에게 두개의 영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십을 앞둔 꼰대스런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보다 영상을 보여주는게 더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2014년 SBS에서 방영된 <달콤한나의도시>속 오수진변호사의 영상입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 당시 재미있게 보았던 TV속의 영상으로만 기억하고 있어요. 

<달콤한나의도시> 속 오수진변호사, 2014년
<달콤한나의도시> 속 오수진변호사, 2014년

변호사 시험을 합격하고 막 입사한 변호사는 너무 힘이 듭니다. 밀려오는 업무에 새벽 1시,2시, 아니 아침까지도 일을 해야했거든요. 옛말로 내가 이럴려고 변호사가 되었나 싶었겠지요. 애꿎은 선배는 격려한다고 술한잔 사주는데요. 소주 1병과 폭탄주 12잔을 마시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무실에서 일도 해냅니다. 슈퍼우먼이 따로 없는데여. 그 당시 정말 술을 잘 먹는구나 싶었어요. 잘 버텨보려는 1년차 변호사의 모습이 우리 회사 수습평가사들의 모습과 닮아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수진변호사를 아는 것도 아니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최근의 영상을 보게되었어요. 시간이 훌쩍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변호사로 한 뼘 성장해 있는 모습을요. 

2020년 방송 속 오수진변호사


물론 방송의 힘일 수도 있어요. 편집을 잘 할 수도 있겠죠. 변호사일이 아니고 방송일로 유명세를 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버티고 잘 견디고 있어 보입니다. 


후배들에게 꼰대스런 이야기들을 풀어내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대신에 두 영상만 보여줍니다.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와 정말 술을 엄청나게 잘 마시네요.", "와, 정말 이뻐요"라고 이야기는 엉뚱한 녀석들도 있더군요. "방송이에요. 방송." 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될겁니다. 왜 선배가 이 영상을 보여주었는지를요. 소맥을 멋지게 마시는 일 말고 긴 시간 버텨낸 힘을 알게 되겠지요.


1달전 유튜브방송에 쓴 댓글입니다. 오늘의 나를 응원하면서 적어보았습니다.


비단 후배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 쓰는 글입니다. 지금껏 잘 견뎌내고 버텨왔습니다. 성장의 길은 오십을 앞둔 저에게도 열린 길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한발자욱을 냅니다. 많이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후배들이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울 거고요. 그건 나의 성장의 길이기도 합니다. 내가 힘이 들면 내 선배에게 도움도 요청 할 겁니다. 그럴 선배가 제게는 많이 있어 다행입니다.


월요일 오늘도 버티기 위해 한발자욱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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