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세환 Feb 05. 2022

엄마에게 책선물

설날연휴가 금방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안계신 첫 설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옆에 "현고학생부군"으로 계셨습니다. 아이들도 할아버지의 부재를 알고 있습니다. 가끔 할아버지가 보고싶어. 좋은 곳에 계실꺼지라며 묻고는 하거든요. 느닷없이 이야기 하는 통에 엄마가 울먹이기도 하시고요.


설날,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가면 책장에 꽂혀있는 옛책들을 봅니다. 결혼전에 사놓았던 책들인데요. 대부분 2000년대 전들의 책입니다. 작년 설에는 태백산맥을 읽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었습니다. '아 이런 장면이 있었구나싶고 책 안쪽의 적바림들을 만나면 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번 설날엔 지금은 절판된 이진경교수의 <상식속의 철학, 상식밖의 철학>을 만났어요. 


아이들과 차례음식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네가 산 책이니?" 하며 엄마가 아버지가 산 책을 꺼내오시는데요.

"아뇨. 아버지가 사셨을 꺼에요. 진짜 오래됐죠?"

"아..그랬구나 "

하시며 책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3권의 책, 엄마는 홀로 계신 동안 이 책을 다 읽으셨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사 놓으신 책, 엄마가 다 읽은 책


산 지 20년,30년이 넘은 책인데요. 아버지가 남겨놓고 가진 몇 안되는 책이었습니다. 책 중간에 아버지가 읽다말고 접어놓고 가신 것까지 애뜻하신 것 같았습니다. 이 책 다 읽었다고. 책을 샀으면 끝까지 읽어야지. 아버지도 이 책은 끝까지 안 읽은 것 같다고도 하시네요


아! 엄마도 책을 읽는구나. 엄마는 책을 안 읽는 줄 알았습니다. 책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늘 바쁘게만 살았던 엄마였으니까요. 

돋보기를 쓰시고 한장한장 넘기며 책 속 이야기에 공감했을 엄마의 모습이 어떤 지 궁금합니다.


엄마에게 책 선물을 자주 해야겠습니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책이 어떤 것들이 있는 지 골라봐야겠습니다. 첫 책은 이미 정해두었습니다. 주문도 해 놓았고요.  


아마 월요일에는 전화가 오겠죠?

"택배가 왔는데. 이건 뭐냐?"

"선물이야 엄마. 엄마 좋아하는 영웅이와 영탁이도 나와. 다 보시고 얘기 좀 들려줘요. 난 아직 안 읽었어"


오늘 아침은 설날에 뵙지 못한 아버지를 뵈러 갑니다. 엄마도 아내도 아이들도 잘 있다고 말씀드리고요. 엄마가 아버지가 책을 대충대충 봤다고 흉보았단 말씀도 드릴렵니다. 조금있다뵐께요.

매거진의 이전글 60점이 최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