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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노무사 Oct 13. 2020

여성 직장인의 임신은 죄가 아니다

임신한 여성 직장인은 결국, 죄인이 된다!



아침에는 직장으로 출근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출근하는 여성 직장인의 하루는 전쟁 같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면 크게 3가지를 해야 하는데, 자신의 출근 준비와 식사 준비, 그리고 아이 씻기고 옷 입히고 밥 먹여서 어린이집 등에 데리고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이를 어린이집 등에 맡기는 일이라도 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퇴근 후 집으로 다시 출근한다. 저녁에도 최소 3가지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아이 데려오기, 씻기고 밥 먹이고 숙제 봐주기, 청소와 아침에 밀린 설거지를 포함하여 저녁 설거지까지 한 번에 하기 등.      



송광사 공양간 앞



그러다가 첫째 아이와 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도 모자라 둘째 임신이라도 하는 날에는 임신한 몸으로 출근 전과 퇴근 후 위와 같은 일을 해야 하고, 출근 후에는 임신한 것이 죄라도 되는 양 회사에서 눈치를 봐야 한다. 


임신하면 쉬운 근로로 전환시켜 달라고 요청할 권리가 있지만, 이런 걸 요청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역시 그림의 떡이다. 제도가 아무리 좋다한들 회사와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서 쓰지도 못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가 배가 점점 불러와서 행동이 느려지기 시작하면 일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표정과 분위기로 눈치를 더 심하게 주기 시작한다. 심지어 임신한 여자는 여자도 아니라는 등의 성희롱까지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후 만삭이 가까워지면서 출산예정일 44일 전부터 사용할 수 있는 출산전후휴가를 사용하겠다고 하면 이때부터 회사의 압박 면담이 시작된다.      



베를린 장벽의 흔적



우리 회사는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쓴 전례가 없으니 당장 그만둬라, 출산휴가는 보내줄 수 있으나 육아휴직은 안된다, 출산휴가·육아휴직 직후 날짜로 사직서를 내고 출산휴가에 들어가라 등이다.     


게다가 위와 같이 회사가 입장을 분명히 하면 그나마 어떻게든 대응이라도 할텐데, 출산예정일다가오는데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시간만 끄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럴 때 서면 대응(이메일, 내용증명과 배달증명)을 하여 겨우 명확한 입장을 끌어내면서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일단은 복귀하겠다고 확인해놓게 된다. 물론 회사는 출산휴가 확인서와 육아휴직 확인서를 쓰는 과정에서도 원활하게 협조하지 않는다. 회사에 맞서서 서면 대응을 했으니 이미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복귀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 다. 어린이집 등의 대기 순번이 한참 후 순위라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겨우 어린이집 등이 확정이 되면 그제야 일단 한숨을 돌린다.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옴뷔의 작은 카페에서



여성 직장인들의 고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회사에 복귀했을 때 자신이 하던 업무를 다른 근로자가 이미 하고 있기에 다른 업무를 해야 하는데, 하던 업무와 유사한 업무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땅치 않다. 법에서는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로 복귀시키기만 하면 되니, 다른 업무를 주어도 무방한 것이다. 


물론 사무직을 생산직으로 보내는 등 근로계약서상의 업무와 명백히 배치되는 업무를 부여하는 경우에는 부당한 배치로 법 위반이지만, 보통 복귀 후 불리한 처우로 볼 수 있을지 여부가 불분명한 자리로 보내지고, 그런 자리마저 없다고 일단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아이 한 명당 1년까지 사용 가능한 육아휴직을 1~3개월 정도만 사용하고 복귀하는 경우 다반사다. 업무상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알아서 처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과정을 거쳐 승진 등에 있어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고 자신의 경력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성 직장인은 매우 드물다. 임신, 출산, 육아기에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제도들을 모두 활용할 수도 없지만, 그중 일부라도 사용한 경우에는 이미 회사 눈 밖에 나서 근근이 회사에서 버티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승진까지는 꿈도 못 꾸는 것이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결국 임신, 출산, 육아기 여성 직장인들은 이 시기 각각의 국면을 헤쳐 나오지 못하여 퇴사하게 되고, 이렇게 경력단절이 된 후 다시 노동시장에 복귀하기까지는 평균 8년 정도 걸리며, 그마저도 원래 하던 수준의 일이 아니라 질 낮은 일자리여서 한 번 경력단절이 된 후에 다시 자신의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직장 다니는 여성들이 임신한 것은 죄인가?

당연히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저출산?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결혼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열악한 직장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아이를 낳았기에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좀 달라는데 마치 죄인처럼 취급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천하에 몹쓸 인력이 된 것이다.     






지금 극단적인 사례를 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게 우리나라 중소기업 다수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9%이니 우리나라 기업 전체의 현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기업 근로자와 공무원은 아예 열외로 치자. 이들도 눈치 안 보고 사는 건 아니지만, 민간 중소기업 여성 직장인들의 상황과는 천지 차이니까.     



영국 런던 타워브릿지



다시 물어본다.

여성 직장인의 임신은 죄인가?

당연히 죄는 아니지만, 이들의 직장에서는 죄인처럼 취급한다.     


그러니까 정부는 저출산의 해법을 삶의 질 향상이라는 큰 그림에서만 찾지 말고, 현장의 상황으로 직접적으로 들어가 임신, 출산, 육아기 여성 직장인들을 밀착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월정사의 저녁풍경



어느 겨울날, 지하철 남영역 앞에서 회사와 3차례 협상 끝에 출산휴가 90일, 육아휴직 1년을 사용하기로 합의서를 쓰고, 육아휴직 끝난 다음날로 사직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만삭의 20대 직장맘의 손을 놓기 어려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싸안고(만삭이라 내 두 팔이 그녀의 몸 둘레를 다 감싸지 못했다) 서로를 격려했던 그 날,

넘어질까 봐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던 그녀의 뒷모습을 눈물 가득 고인 채로 지켜봤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법이 있어도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 현실을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



성철스님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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