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 Last christmas> (2019)는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후 방황하는 가수 지망생 '케이트'와 알면 알수록 괴짜인 '톰'이 보내는 크리스마스 시즌 이야기다. 누구보다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산타'가 운영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용품 가게에서 '엘프'로 근무하는 케이트는 엄마의 연락과 언니의 조언도 무시하고 친구 집과 거리를 방황하며 반복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늘을 신기한 듯 올려다보는 남자 톰을 만나 꽉 막힌 일상 속 숨은 진주 같은 순간들을 경험한다. 케이트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톰은 자신에게 너무 의지해선 안된다며 상처만 남기고 사라진다. 케이트는 결국 그를 찾아 나서고 톰이 작년 크리스마스에 교통사고를 당해 자신에게 심장을 기증하고 사망한 기증자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를 대표로 하는 크리스마스 로맨스 영화에는 기본적으로 "크리스마스니까!"라는 마법의 주문이 걸려 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사랑 고백을, 사과와 용서를, 못다 한 진심을 전한다. 그리고 대부분 상대에게 원하는 대답을, 행복한 결말을 얻는다. 왜냐하면,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경쾌하게 울려 퍼지고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 우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캐럴 특유의 친근한 포근함에 잠시 동안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도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영화라 할 수 있다. 수술 후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운명의 상대를 만나 자신을 사랑할 용기를 얻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케이트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사랑이 자신의 심장의 원래 주인이었다는 기발한 설정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자신을 사랑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크리스마스식 사랑 공식을 진짜 '심장, Heart'을 소재로 하여, '생生의 감각'의 상실과 회복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심장이 없지만 마음만은 단단한' 톰이, '심장은 있지만 마음이 공허한' 케이트에게 반짝이는 위로와 삶의 용기를 주는 장면은 충분히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연출이다.
그 외에도 영화는 이민자와 동성애, 그리고 노숙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 문제를 편견 없는 시선에서 마치 한 잔의 칵테일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게 혼합한다.
완벽한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신데렐라의 낭만 동화라기보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와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결핍된 개인의 성장 서사에 가까운 이야기다.
핸드폰도 직업도 없는 톰이 케이트에게 화려한 선물이나 거창한 교훈 대신 "Look up! (위를 봐요)"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도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의 백마 탄 왕자님 클리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이처럼 케이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톰을 통해 스스로 삶의 가치를 깨닫고 독립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톰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을 도우며 그가 사라진 자리를 나눔과 사랑의 온기로 채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기왕 가상의 인물 톰을 설정했다면, 톰과 케이트가 함께하는 순간들을 조금 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판타지로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내국인 일자리 문제 같은 현실의 사회적 사건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 집중한 나머지, 비현실적이어도 괜찮은 부분까지도 지나치게 현실감이 반영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톰이 케이트의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극적 반전이라기보다 정말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허상인 것 치고는 행동과 대사도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Look up!"
영업 종료된 스케이트장을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거나, 공원의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 등의 데이트는 허구의 인물과 하기에 굉장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행동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벤치는 톰의 정체와 관련된 복선이긴 하다.
오히려 톰의 정체를 의심하거나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대사나 연출의 면에서 화려한 판타지적 요소를 첨가했다면 나중에 밝혀진 그의 정체도 훨씬 개연적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연출에서 개연성을 찾다 보니 스토리에서 개연성을 잃은 느낌이다.
사실 이 정도로 현실적인 연출에서 굳이 톰을 가상의 인물로 설정한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물론 톰이 케이트의 일부(심장)인 것은, '결국 나를 일으키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영화의 큰 주제를 위해서는 필연적인 설정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엘프 케이트와 착한 괴짜 톰의 유쾌한 만남은 이 모든 것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하다.
케이트는 톰과 함께가 아니더라도 당당하게 꿈을 추구하고 타인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심장을 제거하고 다른 이의 심장을 이식받은 뒤 불안과 혼란을 겪던 케이트는 이제 그것을 소중히 아껴주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심장으로 이웃들과 함께할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그리고 작은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한 계절 더 성장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마지막에 케이트가 부르는 세계적인 크리스마스 명곡 "Last christmas"는 이 모든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달한다.
그런데 가사에 나오는 Heart가 진짜 심장일 줄이야!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 But the very next day you gave it away
This year to save me from tears I 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선물한 발칙하고 깜찍한 상상력으로 올해 크리스마스는 저마다 작지만 따뜻한 심장을 품은, 살아있기에 더욱 감사하고 소중한 내 사람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겨울에는 우리의 작은 심장에서, 혹은 그것처럼 사소한 일상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가 살아있는 한, 누가 뭐래도 이 따뜻한 심장하나는 내 거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