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의 폭력
우리의 아이만 어른이 되지 못했다.
영화 <박화영>이 보여주는 '청소년 관람 불가'한 청소년의 세계
야, 박화영.
니가 엄마라며.
엄마면 씨발,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냐?
- 영화 <박화영> 中
성매매 내몰린 가출 청소년들…성매수자만 100여명 (2020.09.17. 연합뉴스)
10대 가출 여성의 생존 전략 ‘피해자 되기’ (2017.06.13.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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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가출 청소년 '원조교제 빌미'로 금품 갈취해 (2011. 09.21. 뉴스1)
엄마: 돈 줬으니 이제 연락하지 말자. 담임: 너 그냥 학교 나오지 마라. 경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리 가라. 이름: 박화영. 나이: 18. 직업: 고등학생. 가족: 없는데 있음. 친구: 있는데 없음.
우리 아빠 엄마는 찢어지게 가난해서 불행했고, 그래서 나도 불행합니다. 가족에게 귀찮다고 버려졌고,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문제아라며 포기했고, 사회는 가출 청소년이나 비행 청소년이라고 부르며 범죄자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나를 지나친 무수히 많은 당신들은 어제도 오늘도 지금도 이렇게 보고만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전부 나의 책임인가요?
영화 <박화영>은 가출 청소년들의 현실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십 대들의 시선에서 어른들은 초점 없이 흐릿하다. 아이들이 내뱉는 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카메라는 관객들을 냉정하게 다그친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 영화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든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외면했던 당신의 양심이 느끼는 죄책감이다.
아이들이 담배를 필 때, 혼내기에 앞서 이들이 왜 담배를 물게 되었는지 관심 갖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이들을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다. 생물학적 친모가 아니라 그냥 "엄마라고 불러도 되는 존재"를 찾는 것이다.
주인공 박화영은 가출 청소년들의 "엄마"가 된다. 그것이 가난과 소외를 통해 18살 소녀가 깨달은 생존 전략이다.
화영은 친엄마가 보내주는 돈으로 가출 청소년들을 먹이고 재운다. 이 관계에서 미약하게나마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화영은 이들의 "엄마"가 되고자 한다. 가출한 아이들은 무엇이든 제공하는 "엄마" 화영을 멋대로 소모하고 갈취한다.
화영은 "엄마"라서 친구 대신 욕도 먹고 맞기도 하고 성폭행도 당한다. 그리고 살인죄도 뒤집어쓴다. 그래도 화영은 "엄마"로 불리기를 기다리며 계속 같은 자리에 있다.
야, 박화영. 니가 엄마래매. 씨발, 맞아 아니야? '엄마' 화영은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을 죽인 죄를 모두 떠안기로 한다.
'엄마' 화영과 주변 친구들의 기형적인 관계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의 형상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어른'은 만만한 물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차가운 거리에서 이들이 겪은 '어른'의 세상은 이토록 거칠고 위험하고 죄악스러운 것이었다.
극도로 사실적인 이 영화의 결말에서 반전이나 희망 따위는 없다. 끔찍하게 제자리인 현실이 주는 충격만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얼굴들이 화영의 반지하 방을 찾아오고, 화영은 오늘도 맛있게 라면을 끓이고 잔뜩 쌓인 담배 꽁초를 치운다. 그리고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어 버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발을 쓰고 있던 화영은 답답한 듯 가발을 벗어던지고 호쾌하게 웃는다. 이는 화영의 의지만으로는 절대 변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을 의미한다.
영화는 유통기한 없는 소외와 외면의 굴레에 처한 화영의 현실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많은 숙제를 남긴다.
현실의 화영이들에 대하여. 화영이들이 남긴 담뱃갑과 라면 봉지들에 대하여.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것들을 건네 준 우리들에 대하여.
돈이 생기면 화영이들은 일단 편의점에 가서 라면과 담배를 산다. 오늘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내일을 찾으러 추운 거리를 방황한다.
거리로 나온 아이들은 각자의 생존 법칙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미래 같은 게 아니라, 그저 불행한 현실을 채워줄 약간의 돈일 뿐이다.
이를 위해 누군가는 약자를 갈취하고, 누군가는 강자에게 아부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성性을 이용한다.
아이들이 상품화되는 세상은 자본주의의 소독 불가한 썩은 상처다. 아이들을 구매하는 진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사회가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고, 지독한 악취로 진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만든 폭력적 위계질서의 세상. 아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내며 남들보다 강해지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아픔만 더욱 깊어진다.
상처가 잘 아물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보호와 관찰이 필요하다. 고통받는 아이들을 발견했다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오래 지켜봐 주어야 한다.
신속한 조치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진단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천천히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추후 상처가 덧나고 후유증이 발생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도움은 이들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에 대한 성찰이다.
왜 학교에서는 선생과 부모의 암묵적 합의 하에 학생들의 인생을 획일하게 교정하려 하는가?
공부할 때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어른들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쉽게 외면하고 포기하는가?
이렇게 무력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십 대들은 폭력적이고 위협적으로 묘사된다. 미디어는 "무서운 십 대"를 창조하여 이들을 길들일 수 없는 건방진 반항아로 취급하고 있다. 이렇게 창조된 판타지는 "십 대 공포 신화"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으며, 매체는 그것을 끊임없이 재현하고 있다.
아이들은 손 쓸 수 없이 망가져버린 존재들이 아니다. 망가져버린 건 이러한 사회적 편견에 가려진 관심과 사랑이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성장하는 청소년은 '어른 흉내나 내는' 일탈의 주체로, 신고의 대상으로 억압당해 왔다. 학생다움을 요구받는 획일화된 사회에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세상은 제한되어 있다. 이들이 원하는 삶의 방향과 다양한 가능성을 함께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의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이가 덜 자란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 계속 자라나는 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명심해야 한다.
난 지금 그냥
네가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
그게 알고 싶거든
- 드라마 <인간수업> 中
박화영은 엄마가 아니라, 친구랑 있으면 행복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면 무섭고 그러다가 농담 한 마디에 웃는, 그냥 그런 열여덟 살이다.
영화 <박화영>에 대한 단상
퉁퉁 붇은 차가운 라면발을 입에 넣을 때 밀려드는 서러움. 다행히 혼자라서 거친 손등으로 문질러 보는 뜨거운 눈가.
수없이 꼬여있는 라면발
꼬여버린 내 인생
무심코 채워버린
첫 단추
운명의 매듭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려
되돌아가
다시 채울 수도 없구나
- 이문조 <라면을 먹으며> 中
참고 자료
영화 <박화영> (2018) 감독: 이 환, 출연: 김가희, 강민아, 이재균 외
선정적인 장면과 욕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문의 대사 인용에서 욕설이 포함된 점 양해 바랍니다.
추천 드라마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 (2020)
청소년 성매매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청소년 성매매의 중심가에 신비주의의 "삼촌"이라 불리는 고등학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설정의 드라마입니다. 영화 <박화영>과 달리 아이들을 도우려는 선생님과 경찰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아이들의 위험한 연대로 사건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은 작품입니다.
사진 출처 : 넷플릭스 <박화영>, <인간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