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는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의 탄생과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로 우리 민족과 문화의 기원을 나타내는 한국의 보편 신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곰이었던 웅녀와 결합하여 단군이 탄생하는 부분은 인류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독특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꼬박 스물 하고도 하루(三七日)를 버텨낸 웅녀는 현대에도 고난과 인내의 비유로 종종 사용됩니다. 곰이자 인간이라는 웅녀의 이중 정체성은 시, 소설, 희곡 등의 창작 모티프가 되어 지금까지 다양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웅녀를 보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요?
그는 '왜' 곰에서 굳이 인간이 되기를 바랐고, '왜' 아기를 갖고 싶어했으며, '왜' 단군을 낳은 이후로 행방이 묘연할까요?
이 수많은 의문에 대한 설명은 <단군신화>가 '건국'신화라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화는 본래 인류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기원을 탐구하고자 만들어낸 집단적 상징체계입니다. 고대의 인간도 우리처럼 우주에 대한 궁금증과 상상력으로 가득했기에 자신이 속한 집단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으며, 그것이 향유되던 당대의 특정 가치관에 종속된 인물형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신화는 전승 방식의 측면에서 문헌 신화와 구비 신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에는 건국신화, 후자에는 무속신화 및 민간신화가 있습니다.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 고려시대 문헌에 실려 전해지고 있는 건국신화입니다.
원시 공동체에서 부족 국가로의 이행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뉘면서 지배집단은 통치를 정당화할 전략이 필요해졌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신성한 건국주를 내세워 자신들의 신성한 혈통을 강조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맥락에서 건국신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단군 신화>는 환인 - 환웅 - 단군으로 이어지는 부계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통치의 근거가 되는 천신(天神)의 신성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을 지닌 여성이 필요했고, 그렇게 웅녀라는 캐릭터가 탄생합니다. 곰은 먼저 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여성으로 화(化)한 다음엔 아이를 갖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천부지모 (天父地母)의 신이한 혈통을 지닌 아이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아이는 나중에 (고)조선을 세우는 위대한 건국주 '단군'으로 거듭납니다.
인간 중심의 건국 신화에서 곰과 호랑이는 인간을 동경하는 열등한 짐승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웅녀는 동굴 금기와 출산의 고통을 모두 인내하는 고도의 정신력을 보여주지만, 역사는 몇 줄의 간략한 기록으로 그 희생의 무게를 축소시킵니다.
한편 동북아시아 전반에 분포하고 있는 곰 신화 및 전설을 따라가보면 <단군신화>에 생략된 웅녀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곰을 산의 신 및 주인으로 여기며 곰을 지혜로운 신령한 짐승으로 부른다. 또한 시베리아의 나나이 족은 곰이 누가 자신을 해치고 상처를 입혔는지 다 알고 있으며 그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곰을 숭배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시베리아 퉁구스족은 곰이 사람의 마음을 읽으며 투시 능력이 있고, 사람 말을 알아듣고 계획도 미리 알고 있으며 거만한 사람에게 벌을 준다고 믿고 있다.
시베리아의 곰 숭배 사상뿐만 아니라 중국 동북의 어윈커 족 기원 설화에서 곰 여인은 최초의 인간을 탄생시킨 시조신으로 묘사됩니다. 이를 통해 <단군신화>의 웅熊녀는 본래 고유한 신화를 가진 여신이나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경외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웅녀의 신격은 인간과 짐승, 남성과 여성, 지배와 피지배 계층의 수직적 권력관계가 성립된 초기 국가의 가치관에 맞게 재편된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정립되지 않은 시대에 창작된 신화나 전설은 전승 과정에서 향유 집단의 사상에 따라 숱하게 수정되고 변용되었습니다. 중세에 문헌으로 기록되는 과정에서는 당대 집권층의 요구나 작가의 취향에 따라 재해석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단군신화>의 경우 최초로 문자화 되어 수록된 문헌은 일연의 <삼국유사>인데, 그간 일연의 순수 창작물이라는 견해가 있을 정도로 그 신빙성이 매우 의심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도 언급이 되고 있으므로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고려 후기 지식인이었던 일연이 본인의 사상적 배경을 기반으로 기존의 신화를 재구성, 재창작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내용의 <단군신화>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지점에서부터 건국신화는 창작의 원형으로서 그 가치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단군신화>를 역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현대의 가치관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이 시대의 고전을 향유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닐까요?
신화는 언제나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한다.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고전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당대에는 그러한 사고 방식이 곧 세상에 대한 이해이자 진리였기에 후대에도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고전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지금 시대의 곰은 그때와 같은 소원을 빌었을까요?
만약 웅녀에게 자유연애라는 선택지가 주어졌다면, 그는 또 환웅과 결혼할까요?
그리고 동굴 밖을 뛰쳐나간 호랑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주류가 아닌 타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옛이야기의 생명력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이 창작한 이야기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는 곧 타자가 된다.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타자들은 공동체에 편입되기 위해 최대한 '인간'다운 평범함을 추구한다. 과연 이것은 이들의 욕망일까, 공동체의 욕망일까.
…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먹고 금기한 지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여자가 된 곰(熊女)은 혼인할 사람이 없었는데 매번 단수(檀樹)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에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 일연『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 왕검조선 中
… 이에 환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고 귀신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정상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오니, 그를 일러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 하였다. (단웅천왕은)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케 하여 남자 아이를 낳았으니, 이름을 단군(檀君)이라 하였다.
- 이승휴『제왕운기』 하, 「동국군왕개국연대」 전조선기 中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이 둘은 내용상 여러가지 차이를 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웅녀가 등장하는 단군의 이야기는 일연의 기록에 기인한다. 고려 후기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단군을 중심으로 한 한국사에 대해 상당히 폭넓게 공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추천 자료
건국신화에 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추천 논문)
조현설, 웅녀․유화 신화의 행방과 사회적 차별의 체계, 한국 구비문학회, 구비문학연구 9, 1999.
장영란, 한국 신화 속의 여성의 주체의식과 모성 신화의 전복적기제, 한국여성철학회, 한국여성철학 8, 2007.
웅녀를 모티프로 재창작한 현대 예술
동화: <반야의 비밀>, <웅녀의 시간여행>
극 : <처의 감각>, <쑥 먹고 마늘 먹고>, <하늘의 연인, 웅녀>
만화 : <웅녀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웹툰 : <바로잡는 순애보>
참고 자료
일연, 삼국유사 (우리역사넷)
이승휴, 제왕운기 (우리역사넷)
조윤경, 동북아시아 곰 신화 곰 전설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동북아시아문화연구28,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1.
삽화 출처
인천광역시 블로그 '인천이야기'
네이버 웹툰 '바로잡는 순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