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은 어쩌다 요괴가 되었나

#사신(蛇神) #제주도 #김녕사굴 #전설

by helmi

사신(蛇神), 뱀 이야기


뱀은 예전부터 부정적인 존재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먹도록 유혹하거나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흉사를 내리는 등 뱀은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를 쌓아 왔습니다.


어쩌다가 뱀은 이렇게 퇴치해야 할 '요괴'가 되어버렸을까요?


지역설화_뱀굴에-사는-큰-뱀을-퇴치한-판관-full-size.jpg 출처: 지역N문화, 뱀을 퇴치하는 판관


이는 뱀의 생태적 특징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파충류인 뱀은 어둡고 축축한 음지에 서식하며 작은 머리와 길고 날름거리는 혀, 그리고 팔다리 없이 길쭉한 몸통으로 지하와 지상을 자유자재로 드나듭니다. 인간이 불쾌감을 느끼는 환경에 살며 이족 보행의 인간과는 다른 외형을 가졌기에 뱀은 일찍이 경계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뱀이 가진 고대의 상징성은 점차 소멸되고,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존재로 각인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뱀도 뱀 신, 즉 사신(蛇神)으로서 인간들에게 숭앙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은 태초의 시간, 숭배해야 할 성스러움의 영역과 경계해야 할 공포의 영역이 분화되지 않은 시기에 뱀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영원불멸의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대표적인 고대 뱀 신화로 그리스의 우로보로스와 중국의 복희와 여와, 그리고 캄보디아의 나가가 있습니다.




1. 우로보로스



고대 그리스의 우로보로스 Ouroboros는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으로 원형을 이룬 채 우주를 휘감고 있는 뱀입니다. 고대인은 허물을 벗는 뱀을 보고 낡은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육체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해와 계절이 바뀌고 죽음과 재생이 교차하는 우주의 원리에 대한 상상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머리와 꼬리, 처음과 마지막이 결합한 이 형상은 무한과 영원불멸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는 순환, 영원, 지혜 등 뱀의 신성한 속성을 강조하는 신화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복희와 여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창조신 복희(伏羲)와 여와(女媧)는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뱀인 인면사신(人面蛇神)으로 묘사됩니다. 이들은 하체가 서로의 몸통을 휘감고 있는 형태로 이것은 남녀의 결합이자 인류의 탄생, 천지창조를 상징합니다.

알을 많이 낳는 뱀의 생식력이 풍요와 생산의 신격이라는 신성한 의미를 부여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나가

나가 Naga는 캄보디아의 신화에 등장하는 뱀 신입니다. 인면사신 혹은 몸 전체가 뱀인 형상으로 그려집니다. 나가는 캄보디아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의 선조격이 되는 신으로, 물과 생명의 신으로 숭배됩니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인도의 브라만 계급의 청년과 나가라자(뱀 왕)의 딸 나가가 결혼을 해서 나라를 세웠고, 나가라자는 딸의 결혼을 축복하며 물에 잠겨있던 땅을 건네주었는데, 이 땅이 바로 지금의 캄보디아라고 합니다. 캄보디아에서는 나가를 왕실과 사원의 수호신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한국의 뱀 설화 - <칠성본풀이> 와 <김녕사굴 전설>

우리나라의 제주도에서도 뱀 신앙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무가 <칠성본풀이>에서는 뱀으로 변한 칠성아기가 임신과 출산의 능력을 바탕으로 풍요와 번성을 가져다주는 수호신으로 좌정하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제주풍토기>에 "섬사람들은 뱀을 보면 부군신령(府君神靈)이라 하여 쌀과 정수와 술을 뿌리면서 빌고 죽이지 않았으며 만일 뱀을 죽이면 재앙이 내려 발꿈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죽는다고 알고 있다"는 기록은 숭배와 두려움의 경계에 있는 듯한 경외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제주도 <김녕사굴 전설>에서 뱀은 인간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사악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뱀의 신성성(神聖性)은 완전히 사라지고 요사스러운 신이함을 가진 공포요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뱀에 대한 인간의 혼재된 관념에 따라 사신(蛇神)의 신격도 신성한 신에서 요사스러운 요괴로 변이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경계 밖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포의 영역을 만들고, 그곳에 있는 존재에 대한 상상력으로 요괴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요괴의 원한과 사악함은 곧 인간의 불안정한 무의식이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녕사굴 전설 속 뱀의 원한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인간의 어떤 무의식이 이렇게 무서운 동굴 속 요괴를 만들었을까요?



이무기, 구미호 등 설화 속 존재들은 현대 대중매체에서 모성, 의리나 사랑 등 다양한 감정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대중 매체의 서사는 이들이 품은 원한에 개연성을 부여하여 수용자들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냅니다.




제주도 김녕사굴 뱀 전설을 모티프로 한 소설 <무녀굴>과 소설을 영화화한 <퇴마;무녀굴>



TV 드라마로 꾸준히 창작되어 온 구미호


이처럼 고전 설화를 해석하는 일은 인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현대의 요괴 이야기는 더 이상 공포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과거의 편견에서 벗어나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창작의 소재일 것입니다.






제주 구좌읍 김녕리 마을 동쪽에 큰 굴이 있는데, 여기에서 큰 뱀이 살았다고 하여 ‘뱀굴[蛇窟]’이라고 한다. 이 뱀에게 매년 처녀 한 사람을 제물로 올려 큰굿을 했다. 만일 굿을 하지 않으면 뱀이 곡식밭을 다 휘저어 버려 대흉년이 들었다.

… 이때 서 판관은 군졸과 함께 달려들어 창검으로 뱀을 찔러 죽였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본 무당이 서판관에게 “빨리 말을 타고 성안으로 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서판관은 말을 타고 성으로 달려갔다. 무사히 성 동문에 이르렀을 때 한 군사가 뒤쪽에서 피비(血雨)가 내린다고 하였다. 서판관은 무심결에 “피비가 어떻게 내릴 수 있느냐”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순간 쓰러져 죽었다. 죽은 뱀의 피가 하늘에 올라 서판관의 뒤를 쫓아온 것이었다.


- 제주도 김녕사굴 전설 中



성안에 도착한 뱀들을 발견한 칠성골 송씨 부인은 그들을 집에 모셔가 귀하게 대접하였고, 한 순간에 부자가 된다. … 칠성아기는 자식들에게 우리가 모두 같이 다니면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니 따로 갈라서자고 한다. 칠성아기는 ‘안칠성’으로 가고, 자식 뱀들은 각각 ‘밧칠성’, ‘동헌할망’, ‘환곡창고’, ‘칠성골 염색할망’, ‘사령방’, ‘과원할망’, ‘이방’ 등으로 찾아가 그곳에서 신(神)이 된다.

- 제주도 칠성본풀이 中







삽화 출처

제목 배경: 황진영외, 웹툰 <퇴마; 무녀굴>

우로보로스 : 위키백과

복희와 여와 : 네이버 지식백과

나가 : 위키백과


추천 자

제주도 뱀 신앙 관련 논문

송화섭, 제주도 뱀신화와 뱀신앙의 문화 계통 연구,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6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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