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으뜸가는 향기를 홀로 차지하였네

#삼국유사 #선덕왕지기삼사 # 선덕왕과 모란 설화

by helmi

선덕여왕과 모란 설화



선덕여왕이 당태종이 보낸 모란 그림을 보고서 "나비가 없으니 이 꽃은 필히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고, 신하들이 꽃씨를 심어보니 과연 그 꽃 (모란)에서 향기가 나지 않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대표적인 역사 기록은 <삼국유사>의 '선덕왕지기삼사' 善德王知幾三事 (선덕왕이 미리 안 세 가지 일)입니다. 그 외에도 삼국사기(1145), 삼국사절요(1476), 해동잡록(1670) 등의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란은 향이 매우 짙고 아름다운 꽃이라고 합니다.




殘紅落盡如吐芳 봄의 잔홍(殘紅)이 지고 난 다음에 꽃을 피우니
佳名喚爲百花王 아름다운 그 이름은 백화왕이라
競誇天下無雙艶 천하무쌍의 아름다움을 서로 다투어서
獨占人間第一香 이 세상에 으뜸가는 향기를 홀로 차지하였네


당나라 시인 피일휴(皮日休)는 <모란을 읊은 시>에서 獨占人間第一香 (독점인간제일향), 즉 "이 세상에 으뜸가는 향기를 홀로 차지하였네" 라며 모란의 향기를 칭송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이 집권하던 시기 (신라 632~646)에 이미 향 없는 모란의 품종이 존재하기라도 했던 걸까요?




모란과 모란도의 역사


모란의 고향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660년경에 황후 무측천이 모란을 발견하여 황궁으로 이식하였고, 당현종 시대(685 ~ 762)가 되어서야 중국에서 모란이 성행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가 되어서야 당에서 모란의 인공재배를 추진하였을 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모란이 문학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향 없는 모란의 품종 개량은 훨씬 이후의 일이겠지요.


그런데 삼국유사의 기록에 등장하는 당태종은 649년, 선덕여왕은 64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국가 간에 주고받는 선물들은 대개 그 나라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나 귀중품인데,

당태종이 굳이 그 시기에는 황궁에도 들여오지 않았던 모란 꽃씨와 모란도를 보내줄 이유가 있었을까요?



또한 모란이 그림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영태공주의 묘지에서 발견된 701년 이후이며, 8세기 말에 이르러야 모란을 잘 그리는 화가 변란(邊鸞)이 탄생했고, 이후 회화 영역에 모란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중국에서는 모란을 그릴 때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비를 의미하는 ‘접(蝶)’자와 60∼80대의 노인을 뜻하는 ‘질(耋)’자가 중국어로는 같은 발음 [Dié]이므로,

부귀를 뜻하는 모란도에 나비를 그리게 되면 그때까지만 부귀를 누리라는 한정적인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국 화백 왕시우의 모란도



따라서 선덕여왕과 모란 설화는, 역사적 사실로서 신라 선덕여왕대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누가, 언제, 어떠한 목적으로 창작한 이야기일까요?




모란 설화의 비의


선덕여왕의 모란 일화는 우리나라에 모란이 문화적으로 성행했던 시기에, 선대 왕인 선덕여왕의 신통함을 통한 당대 왕권 확립과 같은 특수한 목적으로 창작된, 설화적 공정을 거친 일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됩니다.


이 이야기가 수록된 문헌은 삼국사절요와 해동잡록, 그리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입니다.


삼국사절요와 해동잡록은 수이전의 일문을 보고 기록하였다는 말과 함께 선덕여왕의 일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같은 책을 참고하였다는 이 두 문헌 사이에서도 내용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도 이 일화를 기록하고 있으나, 김부식은 신라 문벌귀족의 후손이자 당대 보수 세력의 유교 역사관을 가졌다는 점, 그리고 일연은 신화와 설화 원형을 수용하고 포교가 목적이었던 점 등 집필자의 신분 및 정치적 특성에 따라 내용상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덕여왕의 모란 일화는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 당태종의 여왕 조롱, 여왕의 반응, 선물의 구성 등 다양한 이본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처음에 설화說話로 창작되었고, 그 이후 다양한 이본으로 구전되다가 문헌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으로 총 세 명의 여왕이 존재합니다.


여왕 통치에 대한 당대 인식으로 '여인이 왕이 되었다'는 부정적인 의견과 '짝 없는 여인'이라는 조롱이 대내외적으로 상당했다고 합니다.


특히 신라의 마지막 여왕인 51대 진성여왕은 887년 여왕에 즉위할 당시 선덕여왕이 그 명분이 되었습니다. 한편 진성여왕은 도적의 반란 등 불안정한 정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897년에 효공왕에게 왕위를 양도하였습니다.


지智와 덕德을 겸비한 선대 선덕여왕의 신성한 능력을 빌리는 것은 당대 여왕 옹호 세력이 위태로운 왕권을 바로잡는데 필요한 정치적 전략이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특수한 정치적 목적으로 창작된 이야기가 구전되다가 후대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과 모란 설화에 숨겨진 진짜 주인공은 누구였을까요?
향기 없는 꽃은 무엇을 가리키는 비유였을까요?



모란의 타당성과 상징성은 후대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이는 여왕의 총명함에 대한 예찬을 목적으로 누군가가 창작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기울어가는 왕권을 바로잡기 위한 정치적 노력일 수도 있고, 쓸쓸한 역사의 이면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가 남긴 기록을 추적하고 그 빈 틈을 채워 가는 일, 이것이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제27대 덕만(德曼)[만(曼)을 만(萬)이라고도 한다.]의 시호는 선덕여대왕(善德女大王)으로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진평왕(眞平王)이다. 정관(貞觀) 6년 임진(서기 632)에 왕위를 올라 1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는데, 앞일을 미리 안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당 태종이 붉은색ㆍ자주색ㆍ흰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왔는데, 왕이 그 그림을 보고 말하였다. “이 꽃은 정녕 향기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씨를 뜰에 심도록 명하였다. 그 꽃이 피었다 지기를 기다렸는데, 과연 그 말과 같이 향기가 없었다.

(중략) 당시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물었다. “모란꽃이 그러할지 어떻게 미리 아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꽃은 그렸지만 나비는 없었소. 그래서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소. 이것은 당나라 황제가 내가 남편이 없는 것을 비웃은 것이오."

(중략) 세 가지 색깔의 꽃을 보낸 것은 아마도 신라에 세 여왕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것일까? 선덕(善德)ㆍ진덕(眞德)ㆍ진성(眞聖)이 이들이다. 당나라 황제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 일연 『삼국유사』 권1 기이1 선덕왕지기삼사 中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가져온 모란꽃 그림과 그 꽃씨를 덕만에게 보이니, 덕만이 말하기를 ‘이 꽃이 비록 지극히 아릅답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고 했다. 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꽃을 그렸으나 별과 나비가 없는 까닭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에게 국색(國色)이 있으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 꽃은 무척 아름다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향기가 없는 꽃임에 틀림없습니다’고 했다. 그것을 심었더니 과연 말한 바와 같았으니 덕만의 미리 알아보는 식견이 이와 같았다.

- 김부식『삼국사기』제5권 신라본기 5 선덕왕 中



김부식의 기록과 일연의 기록에는 선덕왕의 덕만공주 시절과 여왕 시절이라는 시대적 배경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 삼국유사에는 당태종의 여왕 조롱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그것이 생략되어 있다. 이는 신라 문벌귀족 출신인 김부식의 왕권 보수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세 여왕을 예언한 당태종의 능력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당태종을 능가하는 여왕의 선견지명 불력을 통한 여왕의 신령함(선덕왕의 둘째와 셋째 일화로, 영묘사靈廟寺에서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적군의 매복을 알아낸 일과, 불경에 등장하는 도리천忉利天에 자신을 장사 지내라고 예언한 것)을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기본 자료

김부식,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연, 삼국유사 (네이버 지식백과)


삽화 출처

픽사베이

왕시우, 모란도, https://blog.naver.com/bomnal0407/22039243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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