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으로 지속되는 새 시대의 가능성

#고소설 #영웅이 되지 못한 #악동 도사 #전우치전

by helmi


무릇 생선은 대가리부터 썩는 법.
왕과 대신들이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돌보지 않아, 이 도사 전우치가 친히 백성들 심부름을 하고자 왔소!

- 영화 <전우치> 中



<전우(운)치 전>작자 미상조선 후기 소설로, 한글 필사본과 한문 필사본, 목판본 및 활자본 등 여러 형태의 이본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조선 중종 대에 실존했던 인물 전우치田禹治에 대한 다양한 한문 기록들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고 추정됩니다.


1847년 <전운치전> 경판 37장본 이 현재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이본으로 남아있지만, 이 소설이 언제 어디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작품의 제목도 전운치전, 전우치전, 전울치전, 전윷치전, 일치전 등 다양하게 전하고 있으며, 작품의 내용도 계열에 따라 영웅의 행적이나 도술 판타지의 비중이 크게 다르기도 하며, 고려나 조선 등 우리나라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있고, 중국까지 무대가 확장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는 <전우(운)치 전>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유명 소설인 만큼 여러 이본 안에서 편집자와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개작이 이루어졌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본들 사이에서도 가장 빈도수가 높은 '전우치田禹治'와 '전운치全雲致' 중 어느 명명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명확하지 않으나, 전우치가 더 대표성을 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전우치전>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상업적 이윤을 낼 수 있는 *방각본 (필사본으로 전하여 오던 것을 상업적 거래 및 출판을 목적으로 판각(版刻)하여 출판한 고전 소설)으로 출판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으며, 근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꾸준히 독자들 곁을 지켰다는 것에 그 의의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영화 <전우치> (2009)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한 구미호와 정을 통하던 중 우연히 여우구슬을 삼켜 도술을 깨치게 된 한 사내.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도술로 무능한 지배층을 희롱하며 세상과 좌충우돌 놀아나던 유쾌한 도사. 그런 그의 묘연한 마지막 행방까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우치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깊은 여운과 울림을 주었을 것입니다.


+ 심지어 <전우치전>은 처음 영어로 번역되자마자 세계 판타지 문학의 고전 반열에 올랐습니다. 미국 유명 출판사 빈티지가 2019년에 출간한 '고전 판타지 모음집(The Big Book of Classic Fantasy)'에 <전우치전> 영역본이 수록되었습니다. 번역을 맡은 미국 미주리 주립대 강민수 교수는 <전운치전> 경판 37장본을 번역 텍스트로 삼았다고 합니다. 강 교수는 "미국 편집자들은 전우치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림을 그려서 그 속으로 도망가는 요술을 가장 재미있어했다"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박해현 문화전문기자, 2019.08.14.)





전우치의 최후가 주는 의미



나는 이제 영결(永訣)하나니, 여등(汝等)은 무양(無恙)히 있어 나의 조선(祖先) 향화(香火)를 받들라.
하고 선영(先塋)에 하직한 후에 화담을 모셔 구름을 타고 영주산으로 향하니, 그 후사(後事)는 알지 못하니라.



- <전운치전> 경판 37장본 中

*영결: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영원히 헤어짐 *여등: 너희 *무양히: 몸에 병이나 탈 없이 *조선 향화: 조상의 제사 *선영: 조상의 무덤 *후사: 그 뒷일



한편 세상을 종횡무진하던 전우치는 서화담(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위인으로 유명한 유학자 서경덕)을 만난 뒤, 그명령에 따라 조용히 모친상을 마친 후 구미호를 없애고 구름을 타고 영주산으로 향했으며,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고 전합니다.


보수적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남다른 자유분방함으로 세상을 농간하던 전우치는 유학자 서화담에게 이끌려 돌연 수련의 길로 들어섭니다.


홀연히 사라진 전우치의 최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전우치는 남들과 다른 빼어난 능력과 실행력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졌지만, 봉건왕조 체계에서 그는 처형당해야 마땅한 죄인으로 배척당합니다. 또한 도술 경쟁에서 서화담에게 패배하고 교화당하는 미숙한 인물로 형상화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전우치의 도술은 사회적 차원보다는 개인적 감정 해소 및 욕망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지배 권력에서 아무런 변화도 이루지 못한 채 숨어버린 전우치가 보여주는 한계는, 그가 선과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이 아닌 한갓 도사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전우치가 사회를 개혁할 만한 능력을 충분히 지녔음에도 아무런 변화도 이루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결말은 지배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살아가던 작가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던 시대의 한계일 것입니다.



출처: 게임 <바람의 나라> 전우치의 마을




하지만 전우치의 은거가 곧 민중의 좌절과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오히려 전우치가 어딘가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며, 전우치와 같이 체제를 위협할 비범한 인물이 재등장할 수 있다는 저항의 지속성과, 그리고 언제든 이 모순된 사회를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하는 전복의 가능성과 기대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은둔으로 지속되는 새 시대의 가능성"



여기서 우리는 <전우치전>의 결말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영웅의 성장통


그림4.png 스파이더맨이 된 피터는 돈벌이와 복수에 그 능력을 사용하려 하지만 그로 인해 삼촌이 희생 당한다.


우연찮게 큰 힘을 얻게 된 평범한 인간은 한 번쯤 개인적 욕망과 현실의 질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전우치가 깨닫지 못한 점은 바로 본인의 능력 발휘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지금 우리는 전우치가 부리던 도술이 첨단 과학과 거대 자본으로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일까요, 아니면 영웅의 부재가 당연한 시대일까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폭력과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 무기 개발자가 만든 히어로 수트, 미국의 군수 산업-백인-미국 주도 세계 평화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영웅 서사.


현대 대중매체는 여전히 다양한 판타지 영웅 서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팍스 아메리카나처럼 특정 공동체에 편중된 가치를 정당화하는 군수軍需와 자본資本의 영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초월적 능력을 대신할 영웅의 자격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날의 영웅은 무슨 가치를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해야 할까요?


런 때일수록 우리는 영웅이 감당할 힘과 수호할 가치,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