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스친 남자는 반드시 죽는다.

#판소리 사설 #<변강쇠가> #옹녀 #유랑인생 # 비극

by helmi


<변강쇠가>는 전해지는 판소리 12마당의 사설 중에서도 적나라한 성 묘사와 노골적인 음담이 전반에 깔려 있는 외설적인 작품입니다. 변강쇠타령, 가루지기타령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작품은 성姓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표면적인 내용 이면의 조선 후기 하층민의 열악한 현실과 설움을 되새겨본다면 이 작품의 창작 목적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안도 월경촌에 살던 옹녀는 어려서부터 이상한 일들을 겪습니다. 그녀의 남편들이 갑자기 횡사하더니, 그녀와 교류한 남자들은 모두 죽고 맙니다. 마을의 장성한 남자들이 족족 죽어나가자 웅녀는 마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 첫날밤 잠자리에 복상사로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매독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지랄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 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의 큰 도둑으로 포도청에 떨어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 비상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염증이 나고 송장 치기 신물 난다.

황해도하고 평안도하고 양 도가 공론허기를, "이 여자를 두었다가는 사내라고 생긴 놈 씨알맹이 하나 없이 뒈져벌리 것이고, 그 좋은 사내 맛 한 번 못보고 그냥 제물에 살짝 늙어버릴 것이여, 그러니 이 여자를 내쫓을백이 수가 없다" 허고 양 도가 합세해가지고 이 여인을 내몰아노니, 저 여인 하릴없이 쫓겨나오는디...


떠돌이 신세가 된 옹녀는 개성으로 넘어가는 골목에서 변강쇠라는 사내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혼인을 하고 안정된 가정을 이루려 노력하는 옹녀와 달리 남편 변강쇠는 일은 하지 않고 매일 놀기만 합니다. 어느 날 보다 못한 옹녀는 강쇠에게 땔감으로 쓸 나무라도 해오라고 시키고, 게으른 변강쇠는 그만 산중에 서 있는 장승을 뽑아옵니다.


그날 이후 변강쇠는 장승은 건드리면 안된다는 금기를 깬 대가로 온몸이 장승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끔찍한 죽음 (장승동티)을 맞이합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변강쇠는 옹녀에게 절개를 요구하고, 자신이 죽은 이후 그녀와 닿는 모든 남자들은 즉시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저주를 남깁니다.


“내가 지금 죽은 후에 사나이라 명색(名色)하고, 십세전 아이라도 자네 몸에 손대거나 집 근처에 얼씬하면, 즉각 급살(急殺)할 것이니 부디부디 그리하소.”

불끈 일어 우뚝 서며 건장한 두다리는, 유엽전(柳葉箭)을 쏘려는지 비정비팔(非正非八) 빗디디고,
바위 같은 두 주먹은 시왕전(十王前)에 문지기인지 눈위에 높이 들고,
경쇳덩이 같은 눈은 홍문연(鴻門宴) 번쾌(樊쾌)인지 찢어지게 부릅뜨고,
상투 풀어 산발(散髮)하고, 혀 빼어 길게 물고,
짚동같이 부은 몸에 피고름이 낭자하고 주장군(朱將軍)은 그저 뻣뻣,
목구멍에 숨소리 딸깍, 코구멍에 찬바람 왜,
생문방(生門方) 안을 하고 장승 죽음 하였구나.


장승처럼 꿈쩍도 안하는 남편의 시체를 혼자서 처리할 수 없었던 옹녀는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사내들에게 부탁하려 합니다.


맨 처음 지나가던 중이 강쇠의 시체를 묻은 뒤 옹녀와 같이 살려고 하다가, 시체에서 나오는 독기인 초상살(初喪煞)을 맞고 죽어버립니다.


이어서 유랑광대패인 초라니와 풍각장이들이 나타나서 강쇠의 시체를 묻으려다가 역시 초상살을 맞고 차례로 죽어 넘어지고 맙니다.



강쇠 여편네가 매장포(埋葬布), 백지(白紙) 등물(等物) 수습(收拾)하여, 가지고서 뒤쫓아 들어가니 허망하구나.

중놈이 벌써 이 꼴 되었구나.

깜짝 놀라 발구르며,

"애고 이것 웬일인가. 송장 하나 치려다가 송장 하나 또 생겼네."

(중략)

여인이 깜짝 놀라 손바닥을 딱딱 치며,

"또 죽었네, 또 죽었네. 방정맞은 저 초라니 자발없이 덤벙이다 허망히도 돌아간다. 고단한 내 한 몸이 세 송장을 어찌 할꼬.“


마지막으로 마종(馬從) 출신 뎁득이가 갈퀴와 떡메를 사용하여 변강쇠의 송장을 넘어뜨리고, 각설이패와 함께 시체들을 운반하려 합니다.


그런데 시체를 지고 가던 사람들이 땅에 붙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옹좌수가 굿판을 벌이자, 변강쇠의 시체를 지고 있던 뎁득이를 제외하고는 땅에 붙었던 사람들이 모두 땅에서 떨어집니다.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는 변강쇠의 시체 때문에 애를 먹던 뎁득이는 절벽에 가서 등에 붙은 송장 조각을 모조리 갈아 없앤 뒤 옹녀의 곁을 훌쩍 떠납니다.


뎁득이 분을 내어 사면을 둘러보니

곳곳 큰 소나무 나란히 두주 서서 한 가운데 빈틈으로 사람 하나 가겠거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울고울 달음박질하여 소나무 틈으로 쑥 나가니

짊어진 송장짐이 우두둑 삼동 나서 위 아래 두 도막은 땅에 절퍽 떨어지고, 가운데 한 도막은 북통같이 등에 붙어 암만해도 뗄 수 없다.

요간폭포괘장천(遙看瀑布掛長天) 좋은 절벽 찾아가서 등을 갈기로 드는데, 그렇게 훨씬 갈아 버린 후에 여인에게 하직하여,

"풍류남자 가려서 백년해로하게 하오. 나는 고향 돌아가서 동아부자(同我婦子) 지낼 테오."

떨뜨리고 돌아가니 개과천선(改過遷善) 이 아닌가.




비극적 유랑 인생의 오락적 형상화


<변강쇠가>는 안정된 생활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지아비의 초상조차 제대로 치를 수 없는 유랑민의 비참한 생활상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남자를 만나서 가족을 이루고 정착하는 평범한 삶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옹녀의 모습은 유랑민들의 좌절된 이상과 절망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탄생했는지 모를 이 노래는 아마 옹녀처럼 생활의 터전을 잃고 떠돌다다니는 유랑 광대들이 청중들 앞에서 자신들의 삶을 희화화하여 노래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이야기 전개에 따라 변강쇠, 중, 초라니, 풍각쟁이 등이 차례로 파멸하는 것은 한평생을 길거리에서 떠돌다가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유랑민들의 비참한 삶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살아있는 자들의 노력에도 꿈쩍 않는 변강쇠의 시체는 그들의 죽음에 대한 억울함과 원통함 등을 표출하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를 한갓 유희거리로 향유한 청중들도 결국 이러한 하층민들의 비극에 무심한 방관자가 아닐까요?

<변강쇠가>의 마지막은 지금까지 이 노래를 듣고 즐긴 청중들을 향한 경계로 끝이 납니다.


이 사설 들었으면 징계가 될 듯하니 좌상에 모인 손님 노인은 백년 향수(百年享壽), 소년은 청춘 불로 수부다남자(壽富多男子)에 성세 태평하옵소서. 덩지 덩지.

- 성두본 <변강쇠가> 中


옹녀는 과연 타고난 팔자 때문인지 젊어서부터 괴이한 사건을 겪고 마을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자신의 고된 운명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떠안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진 비극을 방관하고 기피하는 사회적 편견 속에서 꼼짝없이 '불행'의 원흉으로 낙인찍힌 것입니다.


저들의 불행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해학적 표현에 가리어진 유랑민의 한 서린 눈물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


표지 이미지: <변강쇠가>를 재창작한 국립극단의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 (2019~)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될 정도로 매 해마다 관객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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