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 장화홍련전 #권선징악이 은폐한 #섬뜩한 실화
<장화홍련전>은 1656년 평안도 철산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효종왕대 철산현은 실제로 매년 가뭄이 들다시피 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이 흉사가 억울하게 죽은 귀신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전동흘'이라는 인물이 철산 부사로 파견되어 장화와 홍련 자매의 죽음에 얽힌 사건을 해결하였고, 이를 계기로 사람들은 전동흘을 ‘신명철인’ (神明鐵人)이라 부르고 공덕비를 세워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담이 신원伸冤설화, 환생還生설화 등 그전부터 전해오던 여러 설화적 요소들과 결합하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장화홍련전>입니다.
1818년 박인수가 쓴 <장화홍련전> 한문본이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 (최고본最古本)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야기는 그 이후에도 다양한 변형을 겪으면서 꾸준히 기록되어 이내 대표적인 계모형 가정 소설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장화홍련전>이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한 방각본으로도 출판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컨대, 당대 독자들의 호응을 얻는 데 제법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는 소설의 주된 갈등 구조를 이루고 있는 계모와 전처자식의 첨예한 갈등이 매우 보편적인 사회문제였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계모와 전처자식 사이의 갈등은 17세기 중반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던 사회 현상이었습니다. 장화홍련이나 콩쥐팥쥐 같은 계모형 설화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7세기 이전 조선의 결혼 관습은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이었습니다. 남자가 ‘장가를 가는’ 형태였던 이 풍습은 재혼에도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재혼을 해도 전처 자식들과 계모는 같은 집에 살지 않았으며, 서로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17세기 이전 계모는 ‘어머니’라기보다는 ‘아버지의 부인’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전반적인 조선의 가족제도 변화와 함께 계모의 사회적 지위 역시 바뀌게 됩니다. 17세기 이후 가부장제로 인해 여자가 ‘시집을 가는’ 형태로 변화하면서 계모 역시 전처의 자식들과 한 집에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계모는 ‘아버지의 부인’에서 모셔야 할 ‘어머니’의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낯선 여인을 하루아침 사이에 '어머니'로 공경해야 한다거나 전처의 자식을 ‘딸’로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는 위로부터 강요된 것이었고, 서로를 진정한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경계의 정서가 강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동거는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한편 당대 계모로 영입되는 여성들의 처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대개 과부이거나 신분이 낮은 인물로 매우 궁핍한 생활에 놓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계모가 된다는 것은 재물이라는 실리實利를 택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니 이를 대하는 이웃들의 시선도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회의 부정적인 편견과 변동된 가족제도 아래 계모는 가정 내외로 열악한 지위에 놓이게 됩니다.
17세기 중반의 한 가정사가 여러 허구적 요소들과 결합되어 소설화된 <장화홍련전>은, 17세기 이후 가족제도의 변화가 가져다준 불안정한 가정 분위기와 그로 인한 계모와 전처자식들 사이의 갈등을 현실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장화홍련전>은 선량한 자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부사의 도움으로 악녀인 계모가 패배하는 권선징악의 결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권선징악의 이분법적 사고는 질투를 품은 계모만을 악한 징벌의 대상으로 고착화시킴으로써 많은 것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장화홍련전>인 1818년 박인수의 기록에서는 계모의 모략에 넘어간 무능한 아버지 배좌수도 유배를 가게 됩니다. 하지만 후일 전해지는 소설 <장화홍련전>의 여러 이본에서 배좌수는 용서를 받고, 착한 처를 새로 들여 행복한 일상을 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녀의 아비는 본성이 착하고 어두운 탓으로 흉녀의 간계에 빠져 흑백을 분별치 못하는 것이니 충분히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라겠나이다.”
"흉녀의 죄상은 만만불측하니 능지처참하여 후일을 징계하며, 그 아들 장쇠는 교살할 것이며, 장화 자매의 혼백을 신원하여 비를 세워 표하여 주고, 제 아비는 방송放送하라."
원귀가 된 장화홍련이 원하는 것은 “흉녀”라 부르는 계모의 참형이며,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부사 역시 계모와 그의 아들 장쇠를 처형하는 것으로 판결을 다할 뿐입니다.
그런데 계모에게 이 비극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장화와 홍련 자매는 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깊은 슬픔에 잠겨 계모를 어머니로 받아들이거나, 자식으로서 효를 다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배좌수 역시 계모를 들인 후에도 가정의 화합에는 관심이 없고 딸과 함께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하릴없이 눈물지을 뿐입니다.
기존의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새 구성원에 대한 예를 갖추고 진정한 가족으로 맞이할 의무와 책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계모에게 “흉녀”라 부르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하고, 이들의 외면에 모독감을 느낀 계모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인 ‘가정 불화’에 대하여 배좌수는 물론이거니와 장화홍련마저 결백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가정 불화’라는 죄목 아래 배좌수의 가족 구성원들 중 그 누구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어 보입니다.
좌수는 그로 말미암아 어찌할 바를 모르니 매양 딸과 더불어 죽은 장씨 부인을 생각하며, 잠시라도 두 딸을 못 보면 삼추같이 여기고, 돌아오면 먼저 딸의 침실로 들어가 손을 잡고 눈믈을 흘리며, "너희 자매들이 깊이 규중에 있으면서, 어미 그리워함을 늙은 아비도 매양 슬퍼한다." 하며 가련히 여기는 것이었다. 허씨는 그럴수록 시기하는 마음이 대발하여 장화와 홍련을 모해하고자 꾀를 생각하였다.
(중략)
하루는 좌수가 내당으로 들어와 딸의 방에 앉으며 두 딸을 살펴보니, 딸 자매가 서로 손을 잡고 슬픔을 머금고 눈물로 옷깃을 적시기에, 좌수가 이것을 보고 매우 측은히 여겨 탄식하며, '이는 반드시 죽은 어미를 생각하고 슬퍼함이로다.' 하고, 역시 눈물을 흘렸다.
(중략)
소첩의 친정은 대대로 거족이오나 근래에 문중이 쇠잔하여 가세가 탕진하던 차, 좌수가 간청하므로 그 후처가 되었습니다. 전실의 두 딸이 있었는데 그 행동거지가 심히 아름다웠나이다. 그리하여 내 자식같이 양육하여 이십에 이르니 제 행사가 점점 불측하여 백 가지 말에 한 말도 듣지 않고 성실치 못한 일이 많아 원망이 심하였습니다. 하루는 저희 형제의 비밀한 말을 우연히 엿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소첩이 매양 염려하던 바와 같이 불미한 일이므로 마음에 놀랍고 분하지만, 아비더러 이르면 반드시 모해하는 줄로 알 것이니 부득이 영감을 속이고 쥐를 잡아 피를 묻혀 장화의 이불 밑에 넣고 낙태하였다 하였습니다.
17세기 전후 가족제도의 변화 안에서 계모는 그저 한 가정 안에 머물고 있는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계모에 대한 선입견과 부도덕한 윤리적 판단이 소설의 악녀로 형상화된 것입니다.
<장화홍련전>은 계모의 죽음과 처벌을 갈등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러한 결말은 문제의 근원을 짚어내지 못한 피상적 대안일 뿐입니다.
물론 소설에서 계모가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인 것은 맞지만 그보다 주목해야할 것은 악녀와 원귀의 등장과 관련된 '가족'의 문제입니다.
저들이 서로를 향한 경계를 허물고 조금이라도 소통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 잔혹한 괴담의 결말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은 현재까지도 다양한 장르로 재창작되며 우리에게 새 가족을 맞이하는 것에 대한 신중함, 올바른 가정 위기 극복 방안과 진정한 가족 윤리에 대한 성찰 등 중요한 삶의 가치를 환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