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죽음을 위로하는 노래 #끝은 새로운 시작 #허웅애기 #본풀이
경험하지 못한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은 아주 오래전부터 저승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은 현실 경험에 기반하여 경험하지 못한 초월적 공간을 창조하였고, 따라서 저승은 이승의 세상사에 대한 불만과 욕망이 투영된 이상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옛 선인들은 그곳에 존재하는 비범한 인물들이 망자를 인도하여 이승의 일을 심판하고 저승을 관장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저승을 다스리는 신神이나 차사差使 등 다양한 저승의 존재들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노래들이 탄생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바리공주와 강림차사의 내력담을 담은 *본풀이 (무속 신의 근본 내력을 구비서사시의 형태로 풀어내는 굿의 절차)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승의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허웅애기’의 이야기에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이승과 이별하게 된 여인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허웅애기의 내력담은 오래전 제주도 지역의 무속의례에서 <허웅애기본풀이>로 구연되었으며 지금은 굿판에서 불리는 대신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허웅애기본풀이> 저승과 이승으로 분리된 두 세계를 오가는 특별한 인간을 통해 삶에 대한 운명론적 화두를 던지며 저승에 대한 관념을 재정립하고 있습니다.
<허웅애기본풀이>가 한때 굿판에서 연행되었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가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고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달래주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과연 허웅애기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전하고 있는 걸까요?
허웅애기는 남편과 아이들을 낳고 오손도손 살고 있던 젊고 다정한 어머니였습니다.
허웅애기의 살림 솜씨가 어찌나 좋았던지, 저승에까지 그 소문이 퍼져나갔답니다.
그래서 저승의 왕은 기필코 허웅아기를 데려다가 저승의 살림을 보살피도록 하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답니다.
하루는 그렇게 허웅애기가 저승에 불려 가게 되었습니다.
“너의 뛰어난 재주는 익히 들었다. 이제부터 저승의 살림살이를 보살피거라!”
그런데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게 된 허웅애기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허웅애기가 눈물로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저승의 살림살이가 쉽게 좋아질 리가 없었지요.
보다못한 염라대왕은 허웅애기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걱정돼서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승에 남겨진 아이들을 두고 홀로 저승에서 지낼 수가 없습니다.”
허웅애기의 사연을 들은 염라대왕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러느냐. 그러면 밤에는 이승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날이 밝으면 다시 저승으로 와서 이곳의 살림살이를 하거라.”
(그러면 이밤저밤 밤중 야삼경에 칠판에 침을 뱉어 놓아 그 침이 마르기 전에 그 애기들한테 가서 모든 치다꺼리 다 해주고 올 수가 있겠느냐)
그렇게 허웅애기는 밤이면 이승에 와서 애기들 머리를 빗기고 곱게 따주고, 아침이 되면 다시 저승으로 가고 하였답니다.
어머니가 떠난 후 꼬질꼬질하던 아이들이 어느날 말끔해진 것을 이상히 여긴 이웃집 할멈이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가야, 머리 정리를 누가 해주던?”
“우리 어머니가 해줍디다.”
“뭐? 너네 어멈이? 죽은 어멈이?”
“우리 어머니는 밤이면 와서 우리 머리를 빗기고 따줍디다!”
그 말을 들은 할멈은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오면 자기에게 알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발과 아이들의 발을 실로 엮어 놓고서 깊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과연 그날 밤도 어김없이 저승의 허웅애기가 와서 아이들을 씻기고 머리를 빗어 주고 하였습니다.
“아이고! 허웅애기! 네가 정말 왔구나. 이제 다시는 가지 마라. 다시는 가지 마라.”
“저는 안 갈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돌아가야 합니다.”
“아니야 이 불쌍한 아이들을 보더라도 절대 가지 마라.”
“그렇다면 제가 안 갈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네 방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으면 내가 울타리 너머로 가시덤불을 둘러놓으마. 그리하면 염라대왕도 저승사자도 아무도 못 들어온단다.”
한편 저승에서는 이승에 간 허웅애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에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런, 허웅애기가 나와의 약속을 어겼구나! 강림차사는 당장 이승으로 가서 허웅애기를 잡아오너라!”
염라대왕의 명을 받든 강림차사는 허웅애기를 잡으러 이승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할멈이 둘러놓은 뾰족한 가시덤불 때문에 저승사자는 허웅애기가 있는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신 집 밖에서 허웅애기의 혼만 쏘옥 빼어내서 저승으로 데리고 갔답니다.
“허웅애기 네가 감히 약속을 어기다니!
여봐라,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저승과 이승 간의 모든 왕래를 철저히 금지한다!
그리고 저승의 소문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돌과 나무가 더 이상 사람과 대화할 수 없도록 하거라!”
그전에는 허웅애기처럼 젊은 사람이 죽으면 밤에는 이승에 갈 수가 있었는데, 이 일이 있고 난 뒤에는 한 번 저승에 가면 이승에 절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지금까지 <허웅애기본풀이>는 무가, 설화, 민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약 18편이 조사 되었습니다. 여러 이본에서 강조되는 결말은 대략 두 가지입니다.
허웅애기 때문에 이승과 저승이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과 허웅애기로 인해 저승의 소문이 이승에 날까 봐 귀신 및 생인(生人)의 소통을 금지시키고 돌이나 나무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결말입니다.
이러한 결말은 <허웅애기본풀이>가 이승과 저승이 갈라지기 이전 사람이 귀신과 말을 하고 돌도 나무도 말을 할 수 있었던 신화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허웅애기의 실수로 인해 저승과 이승이 구분되고 짐승과 사물들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기원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허웅애기의 이야기는 이승과 저승을 오갈 수 있다는 발상을 통해 이승과 저승이 단절되지 않은 세계라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또한 허웅애기의 강인한 모정은 염라대왕도 감동시켰지만, 그 어떠한 사랑도 결국 저승의 규율과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허웅애기본풀이>는 허웅애기처럼 젊었을 적에 맞이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불리던 서사무가 (소설이나 설화와 같이 고유한 등장인물이 있고, 그 인물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줄거리를 갖추고 있는 무가)입니다.
허웅애기가 특별한 존재로 쓰이기 위해 저승으로 불려갔다는 설정은, 요절한 망자와 남겨진 유족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납득시키기 위함일 것입니다.
허웅애기는 뛰어난 재주를 지녔지만 이승에서의 지난 삶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승의 금기를 위반한 결과는 냉정했습니다.
망자가 미련을 가지고 이승에 머무는 것은 유족의 남은 삶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원망이나 슬픔 같은 당장의 감정에 휘둘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또 다른 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저승과 이승을 오갈 수 없게 된 허웅애기의 이야기는 망자로 하여금 이승에 대한 미련을 거두고 저승을 향한 여정을 준비하도록 하는 본보기가 됩니다. 이로써 저승과 이승을 명확히 구분하고, 유족에게 액厄이나 사邪가 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허웅애기본풀이>는 저승으로 떠나는 망자와 이승에 남은 유족이 서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돕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허웅애기는 이승에서의 뛰어난 능력으로 저승에서 새로운 존재론적 전환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결말을 통해 죽음은 운명의 좌절이 아닌 새로운 길의 시작이라는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생이별의 아픔을 극복한 자는 다른 이들의 설움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슬픔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작별해야 했던 허웅애기는 저승에서 그곳의 살림살이를 보살피며, 그곳에 막 도착한 망자들이 버리지 못한 지난 후회와 미련들도 토닥토닥 정리해 주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