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설화 #어머니를 위해 #자식 묻다 #돌종 얻은 #효자 #손순매아

by helmi

특이한 효자, 손순 이야기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또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럽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기록되어 전해진 손순매아 孫順埋兒, 즉 손순孫順이 자식을 묻어 효를 실천했다는 내용의 설화는 오늘날 가치관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입니다.



옛사람들은 이 이야기에서 어떤 것을 깨닫고 느꼈을까요?



일연이 『삼국유사』에 기록한 손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손순(孫順)[고본에는 손순(孫舜)으로 나온다.]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鶴山)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팔이로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運烏)이다.


손순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언제나 어머니가 드실 것을 빼앗아 먹었다. 이를 민망히 여긴 손순이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아이는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니께서 드실 것을 빼앗아 먹기 때문에 어머니는 굶주림이 심하시오. 그러니 아이를 묻어버리고 어머니를 배부르게 해드려야겠소!”


이리하여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산은 모량리 서북쪽에 있다.] 북쪽 들에 가서 땅을 파다가 매우 기이한 돌종을 얻었다.


부부는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나무에 잠깐 매달아 놓고 두드려보았더니 은은한 소리가 듣기에 퍽 좋았다.


아내가 말하였다.


“이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마도 이 아이의 복인 듯합니다. 아이를 묻지 않는 게 좋겠어요.”


남편도 그렇게 여겨 아이와 석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을 들보에 매달아 두드렸는데 대궐에까지 종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흥덕왕(興德王)이 듣더니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서쪽 교외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리는데 맑은 소리가 멀리 들리니 보통 종과는 다르다. 빨리 가서 조사해 오라!”


관리가 그 집을 찾아가서 조사하여 상세히 왕에게 아뢰자, 왕이 말하였다.


옛날 곽거(郭巨)가 아들을 땅에 묻자 하늘에서 금솥을 내렸다더니, 이번에는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 하자 땅 속에서 석종이 솟아 나왔다. 전세의 효와 후세의 효를 천지가 함께 본 것이로다!”


그리고 집 한 채를 내려주고 매년 벼 50섬을 주어 극진한 효성을 기렸다. 손순은 옛 집을 희사하여 절로 삼고, 홍효사(弘孝寺)라 부르고 석종을 모셔 두었다.


진성왕(眞聖王) 때에 포악한 후백제의 도적들이 이 마을에 쳐들어왔을 때,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아 있다. 그 종을 얻은 땅을 완호평(完乎坪)이라 했는데 잘못 전해져 지금은 지량평(枝良坪)이라 한다.



- 일연『삼국유사』 권5 효선편(孝善篇) 손순매아조



경상북도 기념물 제115호 경주손순유허 (慶州孫順遺墟)
경북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 623번지.
이 곳에 조선말기 학자인 허전(許傳)이 효자 손순(孫順)을 찬술한 비문을 새긴 유허비(遺墟碑)가 있었다고 전한다.





일연 스님은 어떤 연유로 이 설화를 기록했을까요?


원문에 보면 古本作 <孫舜> [고본에는 손순孫舜으로 나온다] 고 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는 곧 일연이 다른 기록에서 해당 설화를 가져와 삼국유사에 옮겨 적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대략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러한 자식 희생적 효 실천이 당대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거나,


둘째로는 당대 지식인층 일연이 윤리적 질서 유지 및 강조를 위해 일부러 예전의 기록에서 효와 관련된 일화를 가져와 옮겨 적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손순이 홍효사(弘孝寺)를 지었다는 결말은 승려 일연의 불교적 영험 및 불교 귀의歸依를 통한 포교布敎 목적이 적극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손순매아 설화는 고려시대 <삼국유사> 외에도 조선시대 <명심보감>이나 <동국통감> 등 후대까지 여러 문헌에 지속적으로 전승되었습니다.



이는 곧 자식살해 모티프 효행 설화가 여러 세대를 거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극단적 효행의 의미


현대의 관점에서 가장 특이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야기 속 손순의 극단적인 효행입니다.


삼국유사에서 중국 곽거(郭巨) 설화를 언급하고 있듯이 이러한 자식 살해 모티프는 중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의 효행담 및 민담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유형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손순매아 설화는 다양한 변이형이 발견됩니다. 변이형들에서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아이를 버리는 과정에서 획득한 대상이 돌종 대신 금은보화라는 점에서만 차이를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아이를 땅에 묻는 끔찍한 풍습이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했던 것일까요?


(실제로 사회 풍습에 영향을 받은 설화의 전승 맥락에 주목하여 자식 살해 모티프를 희생제의 풍습과 관련하여 추정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는 합니다.)



게다가 이는 조선시대 유교 사상에서 강조하는 효 문화와도 사뭇 다른 형태를 가집니다.



조선시대의 도덕 교과서『삼강행실도』같은 유교 경전에 등장하는 효孝란, 낳고 길러주신 부모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자기희생적 효행이 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위해 손순 본인이 직접 지극정성을 다하는 효행담이 바로 이런 유교적 효행에 부합하는 내용이지요.



삼강행실도 효자편 - 누백포호(累伯捕虎;누백이 호랑이를 잡다)

최누백은 고려 때 수원의 관리 최상저의 아들이다. 최누백이 15살 때 아버지가 사냥하다가 호랑이에게 해를 당해 죽었다.

최누백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아버지를 해친 호랑이를 잡으러 도끼를 메고 호랑이의 자취를 따라갔다.

호랑이는 이미 아버지를 다 먹고 배가 불러 누워 있는데 바로 앞에 달려들어 “네가 내 아버지를 해쳤으니 내 너를 먹으리라!” 하고 꾸짖으니, 범이 꼬리를 내리고 엎드렸다. 최누백이 도끼로 내리쳐 호랑이의 배를 갈라 아버지의 뼈와 살을 꺼내어 그릇에 담고, 호랑이의 살점은 항아리에 넣어 시냇물 속에 묻었다.

이후 아버지를 홍법산 서쪽에 장사 지내고는 여묘살이를 하였다.



도끼로 호랑이를 제압하는 누백, 김홍도, 1745. / 삼강행실도 효자편, <누백포호>, 목각판화, 1434.



그렇다면 손순매아에 등장하는 자식희생적 효행은 어떻게 유교 사상이 성행하던 조선 시대에 문헌과 구비 전승으로 활발히 계승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손순의 효행담의 자식 살해보다 효행 설화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전승이 조선시대 유교 이념의 실천과 활용으로 이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본에서는 손순이 자식을 묻으려고 땅을 파다가 금은보화를 발견하고 부자가 되는 결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종교적 상징과 관련된 석종 대신 금은보화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손순처럼 극진한 효를 실천하면 가난한 사람도 그 보상으로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민중 교화 목적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식 살해 같은 극단적 설정은, 지극한 효심 같은 바람직한 가치를 제시하고 불안정한 민심을 길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오랜 기간 활용되어 온 관습적 표현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어머니를 위해 자식까지 희생하려는 지극한 효심이 하늘과 국왕을 감동시켜 결국 효를 실천하면서 가난까지 해소하게 되는 손순의 극적인 이야기는, 여러모로 힘들었을 당대 민중에게 한 줄기의 희망과 삶의 교훈을 심어주는 아주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었을 겁니다.



손순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을 가난의 고통 인륜 의무를 항시 짊어져야 했던 하층민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손순매아 설화가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것입니다.





효행 설화의 현대적 의의


하지만 예로부터 가장 큰 불효는 자식이 부모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자기희생이나 자식희생은 과연 진정한 도덕으로서 효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극심한 가난 속에서 효도란 도대체 무슨 의미이며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옛이야기는 현대의 관점에서 상당한 윤리적 오류와 논쟁거리를 상기시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후대에도 해결되지 못한 인생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해석을 제시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손순매아 설화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효孝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부모의 품 안에서 자라서 때가 되면 본인도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생사를 다투는 어려운 상황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자 부모의 자식으로서 어떠한 선택이 가장 바람직한 도리일까요?



이렇듯 효행 설화는 오늘날에도 일상에서 가장 귀중한 삶의 문제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식은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렵소."






기본 자료

손순이 자식을 땅에 묻으려 하다. [孫順埋兒]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일연, 신태영)


사진출처

경주문화관광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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