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물교혼異物交婚은 인간人間과 인간이 아닌 이물異物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관계 양상를 다루는 이야기인 이물교혼담異物交婚談은 예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왔으며, 현대 대중 매체에서 가장 활발하게 변용되고 있는 모티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서 이물교혼 모티프는 주로 남녀관계에 초점을 맞춘 계승으로, 다양한 이물의 환상성을 통한 로맨스 판타지 서사로 재탄생됩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과 달리, 주인공들은 비일상적 만남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성취합니다.
이들의 사랑은 사회적 인식, 경제적 격차 같은 현실적 장애를 초월하여 일상성에 균열을 내고, 현실의 대안적 세계를 상상하게 합니다.
현대 대중 매체에서 이물은 주로 이상적인 이성으로 등장합니다. 유명 배우가 연기하는 이물은 빼어난 외모에 엄청난 재력과 초월적인 능력을 소유한 환상적 존재로 형상화되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악의 세력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으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물교혼과 현대 멜로드라마의 결합은 현실에 부재하는 이상적 이성 혹은 영원한 사랑에 대한 결핍을 충족시키고, 대안적 상상력을 통해 불안정한 현실의 탈출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물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는가
이물교혼의 이물異物은 고대 설화에서부터 동물, 신, 식물, 귀신 등 다양한 개념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단군신화의 곰, 나무꾼과 선녀의 선녀, 최치원 설화의 금돼지, 도화녀와 비형랑의 진지왕 혼령 등이 있습니다.
현대에서 이물과 인간의 사랑은 아주 로맨틱하게 완성되지만, 옛날 이야기에는 이들이 헤어지거나 이물이 퇴치당하는 방식의 비극적 결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곰나루 전설이나 금돼지와 최치원 설화, 그리고 도깨비와 과부 설화는 인간이 이물의 정체를 확인한 후 그것을 퇴치하거나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곰나루 전설: 곰나루 근처 큰 굴에 살던 암곰에게 납치되어 함께 살게 된 사내는 어느 날 암곰이 사냥을 나간 틈을 타 탈출했다. 뒤늦게 알아차린 곰은 두 새끼를 데리고 쫓아가 돌아오라고 울부짖었으나 외면당했고, 곰은 새끼들과 함께 강물에 빠져 죽었다. 이후 사람들은 그 강을 곰나루[熊津]라고 불렀다.
금돼지와 최치원: 신라 시대 문창고을에 부임해 오는 원님의 부인들이 무엇인가에 납치되어 사라지는 변괴가 일어났다.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한 최충은 부인의 치마폭에 명주실을 달아 놓았다. 실을 따라가 보니 금돼지가 부인들을 납치해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최충의 부인은 금돼지에게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고, 금돼지는 사슴가죽을 씹어 뒤통수에 붙이면 죽는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지니고 있던 사슴가죽으로 된 바늘 쌈지를 금돼지에게 붙여 죽였다. 이렇게 구출되어 온 부인이 후일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최치원이다.
도깨비와 과부: 도깨비가 혼자 사는 과부를 불쌍히 여겨, 나무나 짐을 들어주며 과부를 도와주었다. 또 도깨비는 과부에게 금덩이며 은덩이를 마구 가져다주었는데, 그 돈으로 부자가 된 과부는 이제 도깨비를 떼어버릴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도깨비가 무서워하는 것을 수소문하여, 말의 피 세 말을 구해다가 집 곳곳에 뿌렸다. 저녁이 되어 도깨비가 과부를 만나러 집에 들어가려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도깨비는 세상에서 제일 못 믿을 게 여자라고 외치며 도망을 쳤다.
이러한 이야기는 이물의 신이함이나 비범한 능력보다 그것과 인간의 차이점을 강조하여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물이 패배하는 결말을 통해 인간과 이물의 경계를 강조하며 존재론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비극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물교혼의 남녀관계
이물교혼에서 남녀관계의 상징성은, 인간 정신구조의 원형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알레고리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여성적 심상이며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남성적 심상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사회화 과정에서 적절히 발달되어 포용과 균형을 이루어야 개인이 바람직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남녀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엄격하게 고착화되었던 시대에서 억압된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이성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무의식이 투영된 것이 바로 이물異物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의 내면에서 적절히 포용되지 못한 아니마는 착하고 손재주가 뛰어났으나 남편의 의심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여우 부인(길쌈 잘하는 여우 부인 설화), 김현과 세 오빠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희생하는 호랑이 처녀(김현감호)등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물교혼담에서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비극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녀와 야수'는 밝고 당찬 소녀 벨과 저주받은 왕자 야수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우정과 사랑을 완성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세계에 살던 남녀가 만나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호 이해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이성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배려를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는 인간의 동물적 성향과 사회성이 통합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남녀가 만나 서로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무의식을 길들여서 본능과 이성의 균형을 통한 양가적 통합을 달성하게 된 것입니다.
타자와 공동체, 그 암울한 경계
꼬리를 감추고 애써 살아가는 여우,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놓고 사람의 다리를 얻은 인어, 불멸과 초월적 능력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외계인. 이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고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어 합니다.
본모습을 감춰야만 살 수 있는 이물과 인간의 관계성은 '다름'을 존중받지 못한 채 동화되거나 소멸되는 '타자와 공동체의 문제'를 상기시킵니다.
이물교혼 모티프는 현대에서 여러 장르로 다양하게 재창작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혹은 가상 인간과 인간의 감정 교류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도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화 <알리타 배틀엔젤>,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물교혼 판타지가 보여주는 경계 너머 타자에 대한 상상력입니다.
타자의 출현으로 발생한 일상의 균열은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선의 허점을 고발합니다.
인간다움은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요?
인간이 정의하는 인간성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외형에 의사소통 능력과 뛰어난 지능을 탑재한 인공지능, 그/그녀도 인간일까요?
인간성은 후천척으로 학습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그녀는 무엇을 배워야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 <HER>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한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이물교혼 판타지가 보여주는 전복된 현실과 그로 인해 드러난 공동체의 균열과 모순을 직시하며 진정한 인간다움과 그 가치에 대해 재고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타자와 인간의 경계 및 관계성에 대해서 고찰하는 것은, 미래사회에서 기계와 인간, 환경과 인간의 공존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이물교혼담은 오랜 기간 쌓아왔던 우리 공동체의 경계를 허물고, 공동체 너머의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르다면, 결국 모두가 같은 것 아닐까요?
경계 밖 타자를 포용하는 새로운 시선.
신화적 사유의 생명력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표지 이미지: 영화 HER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