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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IND WORKS Sep 04. 2024

Reelay Review 07 : 奇跡(I Wish)

고레에다 히로카즈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사운드트랙

Reelay Review 07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I Wish(奇跡)

릴-레이 리뷰 일곱 번째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입니다.

[괴물] 리뷰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또 다른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고 있는 두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형 '코이치'는 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가고시마에서 살고 있고, 동생 '류노스케'는 아빠와 함께 후쿠오카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형 코이치는 화산재가 날리는 동네에서 가족들이 함께 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지만, 류노스케는 상대적으로 낙천적이고 자유롭게 후쿠오카에서 아빠와 새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형제는 각자의 삶에서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어느 날 코이치는 단짝 친구들로부터 새로운 고속열차 노선이 생기면서 두 열차가 교차하는 순간에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코이치는 동생 류노스케와 친구들을 설득해 열차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소원을 빌기 위한 여행을 준비합니다. 이후 원대하지만 귀여운 작당모의 끝에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각자의 소원을 빌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열차의 교차지점에서 소원을 빌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류노스케는 사실 울트라맨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형에게는 가고시마의 화산이 폭발해 후쿠오카에서 네 식구가 다시 함께 살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겠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기차가 교차하는 그 순간, 자신이 이야기했던 소원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가슴속 진심을 말해버립니다.  

"아빠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게 해 주세요."

다른 아이들이 목놓아 소원을 말할 때, 코이치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침묵합니다.

이 여행을 통해 아이들은 비록 기적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되며 '관계'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현재의 삶이 주는 작은 행복과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I Wish Cassette Tape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카세트테이프

I Wish Unofficial Soundtrack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사운드트랙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음악을 작업했던 일본의 밴드 '쿠루리(Quruli)'가 작업했습니다.

사운드트랙은 쿠루리의 유쾌하면서도 감성적인 음악 스타일과 잘 어우러져 영화의 전체적인 감정선과 분위기를 잘 전달하며, 관객이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동을 극대화시켜줍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순수함이 드러날 때 음악은 더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 기차가 교차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작은 기적처럼 다가옵니다. 쿠루리의 음악은 아이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반영하며,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의 상징성과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깊이를 한층 더 부각시킵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메시지와 음악이 어떻게 맞물려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Cassette tape 01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원제는 [기적(奇跡)]입니다. 쿠루리는 해당 사운드트랙의 메인 테마곡인 마지막 트랙 '기적(奇跡)'을 추후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수록했습니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경우 현재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 중 지니, 멜론, 벅스 등에서 서비스되고 있고, 아쉽게도 애플뮤직에서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기적(奇跡)'만 들을 수 있습니다.


Cassette Tape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Track List]


SIDE : A

1. 鹿兒島おはら節 / 가고시마 오하라절

2. プ-ルとたこ燒きと市バス / 수영장과 타코야끼와 시내버스

3. 龍之介と父親 / 류스케와 아버지

4. 學校へ行こう / 학교에 가자

5. 周吉と山本 / 슈키치와 야마모토

6. 中央驛にて / 중앙역에서

7. 花火だ花火だ / 불꽃놀이다! 불꽃놀이다!

8. 鹿兒島にて / 가고시마에서


SIDE : B

1. ぞわぞわ / 간질간질

2. それぞれの日日 / 이런저런 날들

3. 軍資金のテ-マ / 군자금 테마

4. 最終列車 / 마지막 열차

5. コスモス / 코스모스

6. 走れ / 달려

7. 願い 소원

8. 歸路 / 귀로

9. 奇跡 / Kiseki (기적)


J-Card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음반은 일본에서 CD로만 발매되었고, 영화의 분위기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담백하게 작업되어 있습니다. 커버이미지에 인물이 드러나지 않고 코이치가 살고 있는 가고시마의 화산을 배경이미지로 사용하며 타이포그래피 역시 차분한 세로형 배치로 조금은 심심하면서도 정적인 디자인입니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음반의 디자인을 참고해 카세트테이프 버전으로 편집해 봤습니다.

꾸준히 일본 음반을 들여다보고 편집하는 방식의 작업을 하다 보니 일본 그래픽 디자인에서 자주 사용되는 서체나 레이아웃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재미있고, CD포맷의 음반을 어떤 식으로 변주하여 카세트테이프에 녹여낼지 고민하는 과정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J카드 뒷면에는 사운드트랙 정보와 함께 코이치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렸던 화산폭발 그림을 삽입했습니다. 기존 앨범에서는 그림이 벽에 걸려있는 스틸을 사용했지만 카세트테이프에는 그림원본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Cassette tape 02

코이치와 류노스케의 아빠는 '하이데카(ハイデッカー)'라는 이름의 인디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이 밴드나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등장하지는 않지만, 류노스케가 형에 비해 조금 더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지닌 데에는 아빠의 영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황 상 아빠는 음악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막노동 같은 일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퇴근이나 공연이 늦어지면 류노스케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텐데도, 그것을 외로움이나 결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자유롭다는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태도가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류노스케와 아빠의 대화 중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습니다.

류노스케는 아빠에게 '행정상 재평가'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물어봅니다.

-

"쓸모가 없으니까 없애자 뭐 그런 거지."

"엄마도 아빠한테 똑같은 말 했잖아."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도 때론 필요하지. 모두 의미 있는 것만 있어봐 숨 막혀서 못 살지."

"쓸모없는 것만 있으면 안 되잖아."


어린 아들과 철부지 아빠가 나누는 이 짧은 대화에서 핵심은 '낭만'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쓸모없는 일이란 결국 낭만을 찾아가는 길이고, 그것은 아빠가 이혼을 하면서까지 음악을 놓지 않는 이유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류노스케의 대사에서는 낭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쓸모 있는 일 또한 해야만 하고 이 쓸모 있는 일이란 '자신을 부양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류노스케는 여행에서 오랜만에 만난 형 코이치에게 아빠의 밴드'하이데카'의 앨범을 선물하며 인디음악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습니다.

"음...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음악"

코이치의 대답에는 아빠에 대한 걱정이 묻어있습니다. 인디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네 식구가 다시 함께 사는 일과 멀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동생에게 내색은 안 하지만 코이치는 이미 이 대답을 하면서 자신의 소원을 철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배우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아빠가 소속된 밴드'하이데카(ハイデッカー)'의 앨범 커버는 극 중 류노스케의 친구로 등장하는 현 천년돌 '하시모토 칸나'가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이데카 음반 커버 작업

영화에서는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잠깐 등장하는 커버이미지이지만 영화에서 느껴지는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표현하기에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고, 오다기리 죠가 연기하는 '하이데카(ハイデッカー)'라는 밴드가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음악을 담당한 쿠루리(Quruli) 역시 밴드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연결지점이 있다고 생각해 하이데카의 앨범 커버를 재현하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사운드트랙의 또 다른 커버 이미지로서 활용해봤습니다.



객관적 쓸모와 주관적 쓸모에 대해


류노스케와 아빠의 대화장면을 보고 '쓸모없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모두가 ‘그런 쓸모없는 짓을 왜 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폭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이 개인의 가치를 높여주는 일이라고 판단되고 그것이 어떤 대의를 위한 일이나 모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난 순수한 행동일 수도 있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용적이지 않거나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 보면 이 '객관적 쓸모'와 '주관적 쓸모'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창의성을 요하면서도 동시에 다수의 만족을 목표로 접근해야 하는 작업이고, 개인의 취향을 욕심껏 대입하게 되면 외면을 받거나 좋은 디자인으로 평가받기 힘든 것 같습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거나 개인 프로젝트를 통해 그 욕구를 해소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쓸모없는 일은 결국 낭만이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낭만이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를 뜻합니다. 특히 디자인이나 예술의 영역에서 이 낭만이 결여된다면 창의적인 결과물이나 개성이 표출되기 힘들어질 것이고 조금 더 생각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위해서는 개인의 쓸모없는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객관적 쓸모만큼 주관적 쓸모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작업도 주관적 쓸모에 해당하는 일이고, 개인의 쓸모없는 짓 정도로 비춰질 수 있지만, 낭만을 잃지 않겠다는 포부로 포장하며 이 콘텐츠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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