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사운드트랙
Reelay Review 06
괴물(怪物)
릴-레이 리뷰 여섯 번째 영화는 작년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怪物)]입니다.
영화 괴물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각본으로 알려진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맡았고, 음악은 지난번 [토니 타키타니]에 이어 이제는 고인이 된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오래전부터 좋아했습니다. 영화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느 가족] 이후 오랜만에 오리지널 일본영화로 돌아온 신작이라 기대가 많이 되었고, 개봉 전부터 일본어로 된 예고편만 수십 번 돌려봤을 정도로 기다렸던 작품이었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협업 역시 관전 포인트였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19년부터 매년 [전주국제영화제(JIFF)]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방문해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 또는 재개봉 영화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운이 좋게도 2022년에는 영화[브로커]오픈토크, 2023년에는 [괴물] GV(Guest Visit /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출연 배우들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는 예년보다 치열한 쟁탈전 끝에 [괴물] 프리미어 상영 및 무대인사 티켓과 GV 티켓을 쟁취했고 영화를 가장 먼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프리미어 상영의 경우 무대인사와 함께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야외상영으로 진행되었고, GV는 일반 상영관에서 상영 후 진행되었습니다. 야외상영은 주변 소음이나 여러 방해 요소가 있을 거라 판단해 실내 상영 티켓을 하나 더 준비한 것이었는데, 예상과 다른 현장 분위기에 적지 않게 감동했습니다.
야외상영 당일, 입장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쏟아진 것은 아니었고, 지금 비가 내리고 있구나를 의식 가능할 정도의 부슬비였습니다. 4000석 정도의 인원을 가득 채운 야외 광장의 규모와 비 내리는 부산의 밤공기 때문인지 야외상영은 우려와 달리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영화 [괴물]은 주인공 '미나토'와 '요리'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사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영화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을 미나토의 엄마'사오리'의 관점, 담임선생님 '호리‘의 관점으로 구분해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과 오해어린 시선을 보여주고, 어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주인공 미나토와 요리의 관점에서 보여줍니다. 관객은 영화의 중심 사건을 바라보는 각 주인공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과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괴물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Monster Cassette Tape
Monster Unofficial Motion Picture Soundtrack
영화를 보기 전과 후로 영화의 삽입된 음악을 찾아 듣곤 합니다. 사운드트랙이 이미 발매되어 있거나 선공개되는 영화의 경우는 관람 전 예습 하듯 영화의 장면을 상상하며 음악을 익힙니다. 이렇게 영화를 보면 영화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올 때 좀 더 깊은 몰입이 가능합니다. 반면 사운드트랙이나 삽입곡 리스트가 공개되지 않은 신작 영화의 경우에는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크레딧에 올라간 삽입곡 리스트를 메모해 챙겨 듣습니다.
이렇게 음악을 매개로 영화를 상상하고 복기하는 것은 영화의 여운을 조금 더 오랫동안 가지고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어줍니다.
영화 [괴물] 개봉 전,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화 음악 작업으로서 유작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의 사운드 트랙이라는 안타까우면서도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사운드트랙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운드트랙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영화를 위해 작곡된 오리지널 스코어 두 곡과 기존 앨범에 실린 곡들 중 일부가 영화에 쓰였다는 기사만을 접한 뒤 영화를 상상하며 가상의 사운드트랙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들었습니다.
https://music.apple.com/kr/playlist/monster-tape/pl.u-KVXBBrVuvr2lLN?l=en
이후 이 가상의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곡들 중 세 곡이 공식 사운트트랙 앨범에 포함되어 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세 곡은 사카모토의 마지막 정규 앨범 [12]의 수록곡인 20220207, 20220302, 그리고 몇 년 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던 유희열의 표절 의심 곡 Aqua였습니다. 이 외에 Monster 1, Monster 2가 오리지널 트랙으로 작업되었고, [Out of Noise] 앨범에 수록된 Hwit, Hibari가 추가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괴물]의 사운드트랙은 [토니 타키타니]와 마찬가지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레이블 Commmons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음반의 경우 CD와 바이닐 형태로만 발매가 되었는데, 카세트테이프 버전 음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업해 봤습니다.
Cassette Tape
카세트테이프는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곡 수가 적어 SIDE A/B로 나누지 않고 한쪽 면에 전체 곡의 정보를 기입했습니다. 컬러는 포스터 타이틀에 사용된 붉은색을 적용해 디자인의 일관성을 부여했습니다.
[Track List]
1. 20220207
2. Monster 1
3. Hwit
4. Monster 2
5. 20220302
6. Hibari
7. Aqua
J-Card
J카드 커버 디자인 및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은 [괴물] 사운드트랙 CD음반을 기준으로 했고, 기존 CD음반은 친환경 디지팩(종이패키지)으로 제작되었으나 카세트테이프는 일반적인 플라스틱 케이스 규격으로 작업했습니다.
기존 음반 메인 커버에는 흐릿하게 아웃포커싱된 터널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두 주인공의 얼굴이 크롭 되어 눈이 강조된 사진만 사용되었으나 카세트테이프 커버의 경우 비율을 조정하며 J카드를 완전히 펼쳤을 때 프레임 바깥으로 이미지가 확장될 수 있도록 편집했고, J카드 뒷면에는 커버 이미지의 감정이 영화의 여운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주인공들이 고개를 돌려 반대로 선명하게 인포커싱된 터널을 응시하고 있는 뒷모습 사진을 동일한 톤으로 보정해 사용했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뒤 흙 범벅이 되어 "우린 다시 태어난 걸까?"라고 묻는 요리에게 "우린 그대로야."라고 대답하는 미나토의 대사는 "다시 태어날 필요 없어. 세상이 우리를 괴물이라고 한다면 괴물로 살아갈래."라는 다짐처럼 들렸습니다.
영화 속엔 단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대한 부정을 하는 인간의 군상이 존재할 뿐, 진짜 괴물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저마다의 편협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기 바빴던 관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해봅니다.
영화 엔딩장면에서 흐르는 'Aqua'와 두 주인공 소년의 자유로운 몸짓은 히로카즈 감독의 과거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교차되는 기차를 보며 소원을 비는 아이들의 외침을 보며 북받쳐 오르던 감정선과 유사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서는 공통적으로 눈물이 나올만한 장면이 아닌데도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극한의 순수함이 어른들의 마음을 움켜쥡니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결코 슬픈 장면도, 농도 짙은 감동을 강요하는 장면도 아닌 덤덤하고 담백한 연출에 녹아든 그 순수함이 부러워 고이는 눈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22년 12월 류이치 사카모토가 고인이 되기 전, [Ryuichi Sakamoto : Playing The Piano 2022]라는 타이틀로 마지막 연주를 녹화한 스트리밍 형태의 콘서트를 진행했고, 일본 현지에서 발급받은 링크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해당 콘서트는 2023년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라는 다큐멘터리 형태의 콘서트 영화로 개봉했고, 연주곡 리스트에는 이전에 소개했던 [토니 타키타니]의 테마곡 'Solitude', 이번 [괴물]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Aqua'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마지막 콘서트의 연주곡들이자 영화 [오퍼스]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발매되었으니 한 번 감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music.apple.com/kr/album/opus/1760680492?l=en-GB
최근 들어 영화를 보고 누군가와 깊게 감정을 공유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추천하는 것도 정말 이 사람이 영화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아닌 오직 대화중 침묵을 깨는 소재정도에서 그치는 현상이 잦아진 것 같고, 하나의 영화를 두고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거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아마도 마틴 스콜세지가 말했던 '시네마'로서의 기능을 다하는 영화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스트리밍 플랫폼에 익숙해지고, 극장 개봉용 영화가 줄어들면서 영화를 '영화처럼' 감상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정을 충분히 삼키고 소화된 감정의 조각들을 나누어 가지고 싶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간의 감정들을 가볍게 뱉어내기에 바빠 옆사람의 몰입까지 깨뜨리곤 합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소비하는 것에 급급해 좋은 영화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행태가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하나의 작품이나 작업물에 온전히 집중해 영감을 얻거나 생각의 폭을 확장시키는 연습을 해야 흩어지는 가치들을 모아 개인의 고유한 사유활동으로 바꿔낼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매년 영화제를 찾고, 극장에서 영화를 챙겨보고, 생각을 공유하는 행동도 어쩌면 그런 연습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공기가 상쾌합니다. 아직 이르지만 가을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월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벌써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