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가 진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 몇가지(1).

한국형 CES는 허상일까, 아닐까.

2025년 1월, 라스베가스에선 또 CES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특히 '한국'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라스베가스의 CES를 방문하고, 인사이트풀한 혜안을 가지고 오고 싶어하고, 네트워킹해서 글로벌한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한다. 한편, 정책관련자들은 "왜 우리는 CES를 못만드냐. 우리 참가업체가 이리도 많은데 이들만 한국에서 모아도 한국형 CES는 가능하지 않은가?"라고 계속 자문하고 실행해보고자 한다. 정말 그럴까?


탑티어 불법노동자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이지만, 난 2001년도부터 2003년 말까지 라스베가스 전시장의 불법노동자였다.


당시 미국의 살인적인 인건비 -2001년 당시, 미국 라스베가스 전시장의 노동자들의 인건비는 시간당 65불이었다. 그 중 거의 50%는 노조회비이며, 나머지 50%가 노동자에게 입금되는 구조였는데, 여튼 발주하는 쪽 입장에서는 8시간을 고용하면 꼼짝없이 한 노동자당 일당 520불(65불 X 8시간)을 내야하는 구조라고 보면 됨-를 감당할 수 없었던, 혹은 아끼고 싶었던 라스베가스 전시회에 참여했던 그 많은 참가업체, 혹은 부스업체의 입장에서는 고작 30살의 대학원생이긴 하지만, 전시회에 대한 이해가 일정부분 있으며, 영어도 곧잘하는 저렴한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라스베가스에서 난 정확하게 그 니치를 메우는 사람이었다. 추후 이야기 하겠지만, 난 그 니치를 메워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리는 탑티어 불법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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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노동자로서의 에피소드야 라스베가스 슬롯머신만큼 많지만,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불법노동자로서의 내 과거가 아니라 30살 불법노동자 청년이 목도한 당시 강하게 Pivoting중이었던 CES라는 현재 가장 걸출한 전시회의 실제 모습과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왜 CES는 미국에서 가능하고, 우리에겐 버거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CES(Consumer Electronic Show)의 영향력


2025년 CES의 키노트는 엔비디아의 젠슨황이었다. 이 시점에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였지만, 예측가능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엔비디아는 하루만에 -6% 주가하락을 맞았다. 엔비디아 정도 되는 공룡기업의 주가의 6%정도를 하락시키는데 기업 수장의 전시회 키노트가 일조한 셈이다. CES가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젠슨황은 최선을 다했다만)


CES는 현재 전세계 테크의 가장 최근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꿈꾸는 미래를 아주 근접하게 보여주는 세계 최대규모의 Face to Face 행사다. 테크놀로지가 특정분야에 한정되었던 시대와 달리, 이제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테크를 입혀가는 세상이니 심플하게 CES가 다루지 않는 영역은 없다.


모든 Tech-affiliated 기업들은 CES라는 행사의 시기(매년 1월)에 맞춰서 본인들의 새로운 제품과 아이디어를 공개한다. 각각의 산업별로 신제품 출시나 고객피드백을 받는 시기가 이미 정해져 있음에도, 고작 전시회일뿐인 CES는 기업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전략을 수립하고 공개하는 시기마저도 바꿔버렸다. 그리고, 전세계의 SNS와 MEDIA는 매년 1월 라스베가스에서 다들 무슨 말들을 하는지 귀기울여두었다가, 기사화하고 논설화한다.


어쩌면, 1년내내 써먹을 소재들을 모두가 연초에 베가스에서 가득 쌓아두는 셈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말고 CES


2002년의 CES는 어땠을까? 그해 한국은 월드컵준비로 분주했을 시절이지만, 나에게는 CES의 실체를 처음으로 마주한 해로도 기억된다. 2002년 난 미츠비시 부스와 한국 소프트웨어 진흥원 부스를 짓는 불법노동자였다. 어떻게 2부스를 동시에 했냐고? 그건 나중에 비사를 이야기할때를 위해 남겨둔다.


2001년 처음으로 라스베가스 전시장 불법노동자의 삶을 시작했을때에 당시 최대규모의 테크전시회였던 Comdex를 경험하게 되고, 그 이후 CES를 2002년에 경험하게된다. 행사를 준비하던 과정(부스를 짓는 과정, 물류를 입하하는 과정)은 기억이 생생하지만, 오로지 CES 전시장의 콘텐츠만을 언급하자면 딱 3가지만 기억난다.


첫번째는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의 기조연설과 Xbox의 시작.

두번째는 부스들의 디자인이 다르다. 보여지는 모양새가 다르다.

세번째는 무언가 화려해보이는 사람들이 엄청 돌아다닌다(라스베가스라서 그런가..)


{기억이 가물해서 찾아보니, the rock의 젊은 사진이 나오네. 2002 CES Xbox 시연장에 ...헐.}


여튼, 3가지만 기억이 확실한데,


그동안 Comdex(Computer Dealer's Exhibition)라는 PC중심 전시회의 키노트 연사였던 빌 게이츠가 CES(Consumer Electronic Show)의 키노트 연사로 전환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이는 PC가 더 이상 단순한 컴퓨터로서의 역할을 넘어 가정의 중심(왜냐하면, CES는 '소비자 가전 전시회였으니까')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었다고 본다. 그때 흐름은 그랬고, Microsoft는 playstation의 대항마이자, 가족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에서 PC를 활용할 수 있는 Xbox라는 걸출한 아이템을 CES를 통해 런칭했다.


다른 하나는, 여타 다른 기술중심 전시회보다 부스디자인들이 화려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가전과 결합하는 테크의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었고, 마지막으론 부스나 공간뿐만 아니라 사람들마저 화려해보이고, 심지어는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다는 거다. 아마 연예인들같은 셀럽들의 등장도 전시회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그 시절 CES의 융합적 사고였다고 본다. 전시회를 콘서트나 테마파크 처럼 만든 것. 그 CES적 사고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CES는 어떻게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한 전시회가 될 수 있었을까? 내가 라스베가스 전시장의 불법노동자로 일하던 2001년부터 지금 2025년까지 숱하게 많은 전시회들이 흥망성쇠했지만 CES는 무엇때문에 생존해있으며, 우리는 왜 CES를 흉내내기위해 발버둥인가?


결사의 자유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결사의 자유"이다.

항상 많이 들어왔고, 배워온 민주주의 자유권의 일종 아닌가?

이 자유가 CES를 공룡으로 만들어왔고, 우리가 아직도 공룡을 흉내내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결사의 자유.jpg (모여서 말하고, 뜻하고자 하는 자유)


"결사의 자유"

{The right to freedom of association includes the ability to peacefully assemble and collaborate with others for common purposes}



그럼 다음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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