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Kyoto를 다녀와서.
교토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 시기에 방문하면 훨씬 더 감각이 오르는 도시이다.
2025년 1월 오사카와 교토사이에 있는 아바라키현에 위치한 릿슈메이칸 대학교 니시모토 케이코 교수님의 초청으로 교토와 오사카의 다양한 MICE베뉴들을 방문하고, 릿슈메이칸 MBA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방문 중에 여러가지를 느꼈는데, 잊어버리기 전에, 혹은 감동이 옅어지기 전에 우선 적어두기 위해 글을 쓴다.
나름대로 꽤 많은 전시컨벤션센터를 봐왔지만, 굉장히 압도적인 경험이라 우선 기록해둔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후 1956년에 UN에 가입한다. 전쟁 이후 국가의 재건에 앞선 일본은 전쟁을 통해 손상된 일본의 이미지를 복구하고 국제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1950년대와 60년대는 전후 일본을 체계적으로 복구하면서 경제부흥의 시기를 맞기도 했고, 1965년에는 도쿄에서 올림픽을 개최하여 일본의 경제적, 문화적인 부흥을 세계에 알리는 "이벤트"를 만들기도 한다.
그 시대.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기를 원했고, 평화외교의 기능과 함께 지역경제도 새롭게 부흥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플랫폼인 "국제회의장" 건립을 고민했다. 정확하게 그 타이밍에 만들어진 국제회의시설이 바로 ICC(International Conference Center)Kyoto이다. 그러니까, ICC Kyoto는 지역자치단체의 니즈에 의해 만들어진 시설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국가적 니즈에 부합하여 만들어진 시설인 셈이다.
당시 일본이라는 국가의 국제적 위상강화, 경제 성장, 외교적 필요성에 맞게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건립의 목적은 당시 최고의 일본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ICC kyoto는 사치오 오타니(大谷 幸夫)라는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다.
사치오 오타니는 일본 건축의 아버지이자 1987년 일본 최초 프리츠커 수상자인 단게 겐조(丹下 健三)의 사무실에서 일한 문하생이다. 단게 겐조는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에게 영향을 받아 일본 특유의 Metabolism이라는 건축양식을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에 알았지만, 김수근 건축가 역시 단게 겐조 사무실 출신이다. 김수근은 단게 겐조의 건축물을 이상으로 삼았던 건축가였다고 한다.
일본의 전후 재건시기에 일본에서는 자국의 슈퍼스타 건축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치오 오타니는 단게 겐조처럼 완전히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꽤 핫한 인물이었음은 틀림없는데 이번 ICC kyoto방문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어쩌면 케이팝 엔터테인먼트회사의 프로듀서처럼 잘 숨겨져있던 원석을 찾아내는 능력이 엄청 좋았던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치오 오타니의 건물인 ICC Kyoto를 보면서, 작년 여름 방문했던 시티오브런던의 바비칸 센터가 생각이 났는데 강렬한 선과 시멘트를 통해 20세기적인 건물디자인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당시 바비칸 센터를 벤치마킹 결과물인 것일까라는 의문으로 찾아봤더니 바비칸 센터는 건설회사 주도로 만들어진 주거 및 상업공간으로 1982년 완공된 빌딩컴플렉스. 그렇다면 ICC Kyoto가 16년이나 앞선 디자인이었다.
ICC Kyoto의 총괄디렉터분의 설명에 의하면, 사치오 오타니가 교토국제회의장을 설계할 당시에는 벤치마킹할 수 있는 컨벤션센터 자체가 전세계에 많지 않아서, 뉴욕 유엔본부의 국제회의시설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의 국제회의시설을 주로 연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압도적으로 훌륭한 컨벤션관련시설이 만들어지게 된 것 같다. (찾아보니, 뉴욕 유엔본부의 국제회의시설도 르 코르뷔지에가 영향을 미친 공간이라고 하니, 돌고 돌아 교토에도 그 느낌을 느낄 수 있다.)
ICC Kyoto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감동받은 디자인은 건물과 함께 작은 연회가 열릴 수 있는 일본식 정원이기도 했다. 일본식 정원답게 아기자기하면서도 완벽하게 정리되어있었고, 백조도 3마리가 있는데, 그 정원의 정교하게 고민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백조의 날개를 일부 잘라서 나르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건 조금 무서워....)
정원은 VIP행사를 위해 공간을 대여해줌은 물론, 교토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일하게 Fireworks가 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벚꽃과 단풍이 만연할때는 압도적이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공간.
헌데, 실은 내가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이자 존경해마지 않는 부분은 여기에 있다. 선수를 알아보는 선수의 힘과 그것을 리스펙트하는 후손의 힘. 어쩌면, 지금처럼 스피디하고, 업데이트의 문화가 지배적인 세상에서 일본의 발목을 붙잡는 부분일 수도 있으나, 그 힘은 굉장이 묵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ICC교토 관계자에 의하면, 1966년부터 여기에 쓰여진 디자인의 언어가 있는데, 이 언어를 만들어낸 사람은 사치오 오타니라는 건축가이고, 그 언어에 문자를 입힌 사람과 색깔을 입힌 사람이 여럿 존재한다고 한다.
건립시점부터 지금까지 ICC교토에서 사용되는 모든가구는 한 사람에 의해 디자인되고 만들어져왔고, 그 가구가 아직도 지속적인 수리등을 통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사무 켄무치(1912~1971), 인더스트리얼 가구 디자이너,그가 이사무 노구치와 함께 만든 라운지체어는 뉴욕 MOMA미술관에 영구보존되어있는 가구라고 한다.
이사무 켄무치는 대외적으로 이사무 노구치만큼 유명하진 않은 것 같지만, 둘은 뗄 수 없는 동료관계이기도 하고, 이사무 켄무치 역시 일본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은 분명하다. ICC교토의 모든 가구는 이사무 켄무치에 의해 디자인되고, 만들어졌고 이는 사치오 오타니의 계획이었다고 한다.
ICC교토의 건립시점부터 현재까지 이사무 켄무치의 가구들은 실제 사용할 수 있게 여전히 잘 보존되어있고,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나도 실컷 앉아보고 왔다. 심지어는 편하더라. 1966년의 당대 최고 일본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이 건물과, 의자등의 가구로 보존되어있고 그게 의미부여가 되어서 Legacy가 되고 있는 컨벤션 센터라니, 감개가 무량이다.
게다가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바닥 카펫은 교토의 이끼를 표현한 카펫이고 이 역시 1966년부터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청소도 하고, 중간에 교체도 하지 않았을까? 분명 그랬을거 같은데.....
사치오 오타니가 섭외한 또 하나의 루키이자 슈퍼스타는 건물 전체의 조명을 맡아준 사람이다. 이시이 모토코 (1938~현역으로 일하고 있다!) 조명 디자이너. 당시 핀란드와 독일에서 조명 디자인 사무실을 만들어 일하고 있던 28살의 여성 조명 디자이너를 픽업해서 건물 전체의 조명을 맡긴다. 파격적이지 않은가?
그럼 이시이 모토코는 누구일까?
도쿄의 랜드마크 도쿄타워의 디자인 총괄(1989년)이다.
지금까지도 딸(딸도 조명 디자이너라고 한다)과 함께 현역 조명 디자이너로서 활동중이기도 하다.
고작 28살 나이의 여성 조명 디자이너를 파격적으로 연결해서 의뢰를 맡긴 곳이 ICC교토이다. 당시 일본 중앙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랜드마크에 사치오 오타니라는 건축가와, 이사무 켄무치라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이시이 모토코라는 젊은 여성 조명디자이너까지. 당시 일본 디자인의 총체가 엮인 공간이 ICC교토라는 곳이다.
다녀본 컨벤션센터들 중에서 정말 몇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디자인과 공간의 힘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게 장점으로만 작용할까? 는 추후 다시 이야기해 볼만한 소재이기도 하다만.
근래 학교에 와서 산업전반을 둘러다보니 레가시라는 말을 자주 한다. 유산이라는 영단어의 한국어 용어이긴 하다. 마이스 산업 등으로 인해 지역에 레가시를 남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산업적 레가시, 문화적 레가시, 커뮤니티적 레가시.
어쩌면, 레가시라는 용어가 순전히 Text에만 엮이는 언어이기도 해서, 현장에서 현상으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용어이기도 하다.
도대체 뭐가 레가시란 말인가?
ICC교토는 실은 굉장히 어려운 컨퍼런스 센터이기도 하다. 교토의 중심지와는 조금 멀리 떨어져있고, 주변에 유일한 프린스호텔은 300룸정도 규모로 큰 행사 수용은 쉽지 않다. 공간은 너무나도 기가 막히게 지어놓은 바람에 편하게 마구 사용하기엔 장벽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렇다면 효용가치가 없는 컨퍼런스 센터일까?
일국의 컨퍼런스 센터에 이렇게 총력을 다해 짓고, 그걸 50년이 될때까지 온전히 유지해내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지역의 Pride가 되고, 모두가 잘 유지해야겠다는 의지를 불어일으키는 곳. 이런 무형의 무엇이 계속 지역에 존재해 주는 것. 이런 것이 제일 중요한 레가시이지 않을까?
정말 훌륭한 유산은 이렇게 모두를 통해 유지되는 무엇이 아니었던가?
우리에겐 이런 공간이 뭐가 있었던가.효율만이 "무조건" 최우선과제가 되는 것이 정말 최선인건 맞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