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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Jan 22. 2024

소박한 기억

2024년 1월 22일

1

눈이 내렸다. 눈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고마운 일이다.


2

모든 글은 기억이다.

어쩌다보니 자꾸 일기 비슷한 글만 쓰게 된다. 첫사랑에 대해 쓸 수도 있고, 좋아하는 과자에 대해 쓸 수도 있고, 아니면 허무맹랑한 소설 같은 것도 쓸 수 있는데. 자꾸 유사한 감정의 언저리만 서성인다. 아쉽다. 억지로 다른 걸 써볼까 잠깐 생각했다. 자유롭게 쓰고 싶으니까. 그렇지만 의도된 자유라니? 그게 더 우스꽝스럽다. 자유를 꾸미는 일도 자유라고 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브런치를 훑다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내 인생은 왜이리 시시할까? 가난, 결혼, 이혼, 퇴사, 세계 여행, 외국인과의 열애, 일류 회사에서의 업무, 특이한 직업 경험 등등... 없다. 아무 것도 없다. 그럴 듯한 이야기로 풀어낼 사연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시시한 인생 대회가 열리면 1등을 할까?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시시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나는 이도저도 아닌 위치를 정말 잘 잡는다. 거의 본능이다.

나라는 사람이 시시하다는 말은 아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나를 좋아하고,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실은 엄청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 인생은 지루하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이색적인 경험도 없다. 남몰래 키우는 특이한 취향이나 사람들을 깜짝 놀래켜줄 놀라운 비밀도 없다(작은 비밀은 있다). 그저 깊은 산속의 이름 없는 호수처럼 잔잔할 따름이다. 그런 삶이 좋아서 그렇게 산다. 나는 헤밍웨이처럼 전쟁통 속에서 진실을 건져낼 자신이 없다. 그보단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상한 이름의 한의원이나, 지하철에서 어쩌다 들은 문맥을 알 수 없는 대화 속에서 나만의 진실을 길러올리고 싶다. 이상한가요? 그럴지도.

어쨌든 내겐 기억이 있다. 별 것도 아닌 기억, 딱히 자랑할 것이 못되는 기억들. 그런 소박한 기억의 힘으로 쓴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실은 그런 게 좋다. 비록 소박할지라도, 돌아보면 결국 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 기억만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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