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D + 680일, D + 55일)
자식이 부모의 전부라는 말.
자식을 낳기 전엔, 능력이 부족해 처자식만 간신히 건사하는 사람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방어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딸을 키우는 지금, 이건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돈이 많아져 부자가 되어도, 명예가 생겨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아도, 내 자식이 불행하다면 과연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되는 대로 키우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자꾸 한 두 가지씩 욕심이 난다. 병원에 갔다가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영어학원을 보곤 인터넷에 검색해 본다. 첫 째가 만 두 살도 되지 않았는데 이 영어학원은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가격은 얼만지, 일주일에 몇 번이나 수업을 하는지 훑어본다. 그전에는 먼저 하고 싶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돈 드는 사교육은 굳이 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겪었던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딸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그와 반대로 내가 이루려던 목표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졌다. 그냥 놔버린 것은 아니지만 우선순위가 밀려났다. 새벽에 둘째 수유를 하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니 책을 읽고, 재테크 공부 하는 건 아직 꿈도 꿀 수 없다. 일주일에 한 편을 목표로 했던 육아일기를 써내는 것도 버거울 때가 많다.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들지만 육아가 더 중요하기에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이다.
연년생 육아를 하며 개인적 목표를 이룰 시간을 원하다니 내가 많이 바라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가 필요할 뿐이니 죽자고 시간을 만들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면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역량을 쏟아부으면 한 가지 목표는 얻을 수 있겠지만 내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기 쉽다. 더군다나 다른 목표와 달리 사람 사이의 관계는 내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삐그덕 거리기 일쑤다. 개인시간을 위해 여유를 짜낸다면 예민한 내 모습에 아내와의 관계가 나빠질 게 분명하다.
이런 생각에 요즘은 자꾸 목표를 낮추게 된다. 위대해 보였던 목표가 소박해지고, 어느새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워지면 인생의 희망을 자식에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능력이 부족해 처자식만 간신히 건사하는 사람처럼. 잠시 상상해 보니 끔찍한 기분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흔들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