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회식이 잡혔다. 인사이동이 있어 부장님과 차장님이 다 바뀐 상황. 그전에는 웬만하면 회식을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미리 어머니께 연락해서 오늘 하루만 육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익숙지 않은 운전으로 초행길인 우리 집에 도착했고 오후 4시쯤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아 안심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회식문화가 참 별로다. 꼰대가 많았고, 3차는 기본, 잔 돌리기까지. 그나마 요즘은 좀 바뀌어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고 1차만 하고 마무리하는 등 점점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꼰대는 많다.
회식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자리를 바꿔가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과장님이 갑자기 내게 지적을 시작한다. 1파트와 2파트는 분위기가 괜찮은데 내가 속한 3파트는 영 분위기가 별로라고 말이다. 연차가 어느 정도 됐으니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분위기를 주도하라는 이야기는 결국 술자리를 만들라는 말이다. 파트끼리 자리를 만들어 회식을 하고 부장님도 모시고 저녁을 먹고 하라는 말인데 참 듣고 있기 답답했다. 거기다 한마디로 끝나는 게 아니라 1절, 2절, 3절까지. 과장님은 계속 내게 지적질을 했고 맞은편의 다른 직원들은 일어나 자리를 피하기 시작한다.
물론 과장님이 한창 일하던 시대에는 잘 어울리고 업무협조를 얻어내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직원들끼리 어울려 술을 퍼먹는다 해도 업무성과는 미비할뿐더러 다들 그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육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막말로 그만큼 돈을 더 줄 것도 아니면서 남의 시간을 뺐는 건 월권이다.
더군다나 나는 오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까지 불러서 육아를 도와달라고 했는데. 일주일에 몇 번씩 저녁 시간을 만들면 나보다 내 가족이 더 힘들다. 그런 상황에 대한 고려는 하나도 없이 그저 개인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지적질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옆에서 뭐라고 계속 얘기 중인데 '들이받을까?'라는 생각만 머리에 맴돈다. 싸해진 분위기에 옆자리 후배가 화제를 돌려보려 하지만 과장님은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한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화장실에 갔다 오며 머리를 식혔다. 마음속에 반박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다. 겉으론 말하지 못하지만 다른 직원들이 이러는 과장님을 싫어하는 건 알고 있는 건지. 그렇게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왜 이번 인사이동에 실패한 건지. 자리로 돌아갔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회식자리가 끝날 때까지 가슴은 터질 듯이 답답했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했는데 회식시간에 고생한 내가 불쌍해서 집까지 택시를 탔다. 편하게 집까지 왔지만 3만 원이라는 택시비가 날 울적하게 했다. 아까 그 과장님께 하지 못한 말이 입에서 계속 맴돈다. 그지 같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