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진 Jul 10. 2024

둘이 논다 _ (D + 989일, D + 364일)

육아일기


 저녁 8시. 아이 둘을 재우는 시간이다. 육퇴를 위한 마지막 관문을 헤쳐나가기 위해 분유, 손수건, 쪽쪽이 등을 챙겨서 코자방(침실)으로 향한다. 오늘 둘째가 낮잠을 많이 자서 금방 잠들지 않을 것 같단 불안한 마음이 든다. 둘째의 분유수유를 마친 후 손수건으로 입을 닦아주고 쪽쪽이를 물린다. 한 방에 네 가족이 있지만 둘째 침대에 펜스가 있기에 첫째는 아내가, 둘째는 내가 붙어 재운다. 애착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 있길래 칼육퇴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잠시 가졌지만 고개를 번쩍 들고 날 밟고 일어서기 시작한다.


 아내는 첫째와 이야기가 한창이다. 사실 빨리 재우기 위해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는 척하는 게 제일이지만 아내는 잠들기 전에 하는 대화가 정서적 교감이 많이 되는 것 같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첫째는 질문도 하고 자기주장도 한다. 요즘은 자기가 회사에 다닌다며 무슨 말만 나오면 이거 회사에서 가져온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회사가 어떤 곳인지는 아는지, 상상력을 칭찬해줘야 하는지 난감하다.


한창 아내와 이야기하던 첫째가 나와 둘째가 있는 침대 펜스에 다가와 말을 건다.


"둘째야, 강아지랑 배게 가지고와! 던지기 놀이하자!"


 졸려서 눈을 감고 있던 둘째는 벌떡 일어나 까르르 웃으며 언니에게 다가간다. 언니가 하는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놀자는 건 알아챈 것 같았다. 첫째는 계속 강아지랑 베개를 가지고 오라고 하고 둘째는 뭐가 재밌는지 계속 웃으며 돌아다닌다. 침대 펜스를 사이에 두고 계속 논다.


 예전엔 30분이면 둘을 다 재웠는데 어느새부턴가 둘이 노는 통에 육퇴 시간은 더 늦어졌다. 슬그머니 인내심이 바닥이 나기 시작한다.


"첫째야, 자는 시간엔 가만히 누워있는 거야. 일어서서 장난치면 안돼. 첫째가 자야 둘째도 잠드는 거야. 놀자고 하니까 잠들지 못하잖아."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한마디 했지만 곧 미안한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첫째가 가지고 놀고 있는걸 둘째가 계속 방해하기에 둘이 긍정적 교감을 하기가 힘들다. 자는 시간엔 둘 사이에 침대 펜스가 있기에 물리적 방해 없이 어울려 놀 수 있는 건데. 내가 한 말이 전혀 먹히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재밌게 놀아라. 놀다 졸리면 자겠지.


포기하고 누워있는데 아내도 더이상 첫째와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는다. 아내 역시 늦어지는 육퇴에 지친 모양이다. 두 딸만 신나서 소리 지르고 아내와 난 자는 척하며 누워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둘 다 조용해지더니 첫째는 아내 쪽으로 가서 눕고 둘째는 내게 기대 얼굴을 배게에 파묻는다. 곧 잠들 거라는 신호다. 눈이 감기고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바뀐다. 잠들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혹시 모르기에 한번 더 기다린다. 섣불리 일어났다가 잠에서 깨면 다시 재우는데 한참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 5분 정도 기다리다가 슬그머니 젖병과 손수건을 챙겨 일어선다. 아내도 내 기척을 듣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소리가 나지 않게 방문을 닫고 나왔다.


 드디어 퇴근. 기쁨도 잠시 시계를 확인하니 10시가 넘었다. 8시에 들어가 2시간동안 시달리고 나온 것이다. 나오자마자 아내는 거실을 정리하고 난 젖병을 닦는다. 그리고 각자 필요한 공부를 한다. 늦게 나온 탓에 맘이 조급하지만 앞으로도 둘이 노는 걸 제지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의 돌 _ (D + 986일, D + 361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