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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l 11. 2024

걸었다! _ (D + 997일, D + 372일)

육아일기


 둘째는 돌이 지나도록 걷지 못했다. 한 달 전부터 잘 붙잡고 서있었고 이주 전부턴 붙잡지 않고도 서있길래 돌 전에 걸을 줄 알았는데 첫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옆에서 보면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걷지 않고 조심히 앉은 다음 기어 오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둘째라 그런지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언젠간 걷겠지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 첫째 때는 일부러 걸음마 보조기로 연습도 시키고 그랬는데 확실히 유경험자라 그런지 아내도 나도 차분한 느낌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내가 첫째를 샤워시키러 갔을 때 둘째는 소파를 붙잡고 서있었다. 별생각 없이 이리 와봐!라고 이야기하며 팔을 벌렸는데 둘째가 조심조심 발을 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걸음을 걷고 내게 안겼다. 나는 기쁜 마음에 흥분해서 다시 해보라며 둘째를 소파 쪽에 두고 멀리 떨어져 앉았다. 두 번째 시도는 세 걸음을 걸은 후 주저앉았다. 매트가 깔려있어서 그런지 실패에도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를 반복했는데 결과는 모두 성공. 오늘이 공식적으로 둘째가 걸은 날이 되었다. 


 아내는 첫째를 샤워시키느라 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다 한참 뒤 걷는 걸 찍지 못했다며 또 아쉬워했다. 동영상을 찍지 못한 건 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일기를 적는 지금도 둘째가 활짝 웃으며 걸어서 내게 오는 모습은 또렷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 모습을 온전히 내 눈에 담았다는 것에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행복하다. 


 둘째가 처음 집에 오던 날. 낯선 환경에 집이 떠나가라 울고 두세 시간도 잠을 자지 못해 소파에 누워 보초를 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걷는다니. 참 세월이 빠르다 싶다. 힘들긴 했어도 두 딸이 생긴 후 알록달록한 추억이 많이 생겨 행복하다. 첫째를 키우는 게 힘들어 망설였지만 둘째를 갖기로 한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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