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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l 27. 2024

계란빵_육아일기(D + 1112일, D + 487일)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면 바로 집에 가는 경우가 없다. 보통 어린이집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한참을 논다. 첫째는 미끄럼틀을 타고 주변을 헤집고 다니고 둘째는 놀이용 삽을 가져와서 계속 모래장난을 친다. 보통 놀게 두다가 설득, 알람 맞추기, 협박(?)의 과정을 거쳐 집에 가는데 오늘은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하원이 늦어져 점점 지치는 상황. 마침 오늘은 아파트 단지 내 장이 서는 날이라 둘째도 먹을 수 있는 계란빵으로 꼬셔서 아이들을 웨건에 태워 집으로 향했다. 


 노점에 도착해 가격표를 보니 계란빵은 세 개 오천 원이었다. 비싸졌구나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약속을 한지라 주문을 안 할 순 없는 상황. 아내는 어차피 늦으니 나와 아이들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도록 세 개만 포장하기로 했다. 뜨거운 계란빵을 받아 들었는데 첫째가 자기가 들겠다고 난리다. 할 수 없이 뜨거우니 열어보지 말고 손잡이만 잡으라고 반복해 얘기하고 손에 쥐어줬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앞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첫째만 곁눈질로 보며 걸어갔다.  


 무사히 집에 도착. 아이들의 겉옷과 양말을 벗기고 식탁에 앉혔다. 식기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첫째와 둘째 앞에 플라스틱 접시를 놔주고 계란빵을 뜯었다. 첫째에게 먹기 편하게 포크와 나이프로 잘게 잘라주려고 했더니 통째로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뜨거워서 잘라야 금방 식는다고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럼 통째로 먹으라고 이야기하고 대신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니 첫째가 손가락을 계란빵에 대본다. 뜨거워서 금방 움츠러드는 손가락. 첫째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기 위해 기다리기 시작한다. 


 한참 둘째의 계란빵을 잘라주고 있는데 갑자기 첫째가 물어본다. 


 "아빠. 엄마건 어딨어?" 


 엄마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말하며 엄마가 퇴근하면 다 식은 계란빵일 테고 포장 개수도 맞지 않아 사지 않았다고 이야기해 줘도 첫째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엄마 것도 샀어야지! 다음부턴 엄마 것도 사도록 해!" 


 첫째가 야무지게 이야기하는 통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나는 아내 생각도 하지 않는 나쁜 남편이 되었다. 


 둘째의 계란빵을 다 자르고 휴대용 선풍기로 한참 식혀주고 나니 아이들이 계란빵을 먹기 시작한다. 첫째는 아직 뜨거워서 조금씩 뜯어먹었고 둘째는 허겁지겁 손으로 집어먹기 시작한다. 목이 막힐까 봐 우유를 빨대컵에 따라주고 나서 나도 한입 먹었다. 출출해서 그런지 계란빵이 더 맛있었다. 맛있게 먹는데 맛소금 알갱이가 씹힌다. 그러고 보니 짭짤하니 감칠맛이 좋다. 내게는 맛있는 계란빵이지만 아직 둘째는 간을 약하게 해서 음식을 주기에 양심에 가책이 느껴진다. 더구나 조미료도 들어있다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다. 


  첫째와 둘째는 한창 계란빵을 먹고 있는데 내 몫은 세입정도 먹으니 사라져 버렸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느낌. 이럴 거면 아내 줄 것도 생각해서 여섯 개는 살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둘째가 맛소금이 들어간 계란빵이 맛있는지 양손으로 집어먹기 시작한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침이 꼴깍 넘어간다. 나도 모르게 둘째의 접시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결국 노른자가 탐스럽게 잘 익은 조각을 얼른 내 입에 넣어버렸다. 자기 것을 뺏어먹어 울진 않을까 둘째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둘째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내가 계란빵을 먹는 모습이 좋았던지 자기가 먹으려고 손에 쥐고 있던 계란빵을 내게 먹여주려 한다.  


 하... 난 쓰레기다. 


 아내의 계란빵을 생각한 첫째와 자기 계란빵을 나눠먹을 줄 아는 둘째. 


 그에 비해 나는 아내의 계란빵을 사지 않았고 돌이 갓 지난 아기의 계란빵을 뺏어먹었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둘째가 주는 계란빵을 한사코 거절하니 이내 둘째는 다시 계란빵에 집중하며 양손으로 우걱우걱 먹기 시작한다. 이것까지 받아먹었으면 난 식욕에 굴복한 한 마리의 동물이 될 뻔했다. 


 아이들은 본능에 충실하다.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을 쟁취하기 위해 떼를 쓰고 운다. 하지만 이렇게 어른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못난 아빠는 오늘도 이렇게 아이들을 보며 반성한다. 둘째 계란빵을 뺏어먹는 건 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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