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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May 25. 2016

너를 위한 소원

인도여행기

 여행 메모 1

 밤새 추웠다. 기차가 빠르게 달린 탓인지 창문 사이로 스며든 바람이 꽤 드셌다. 덜덜 떨면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땐 개운했다. 8시간이나 잤으니 푹 쉰 셈이다.

 어제 바라나시로 오는 기차역에서 인도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한 달에 25,000루피(약 43만 원)를 번다고 했다. 그러니 어떻게 외국에 나갈 수 있겠냐고. 평범한 인도인의 꿈 중 하나는 외국에 나가보는 것이란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무심히 잊곤 하지만,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것이 누군가에겐 꿈일 수 있다. 남은 기간 동안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라나시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된다.

 바라나시는 인도의 여느 다른 도시처럼 활기찼다. 규칙이 없는 것이 법이라는 복잡한 도로와 작은 공예품을 팔려는 사람들. 한국인이 많은 곳에 어김없이 있는 한식당과 돈을 뜯어먹기 위해 관광객에게 달려드는 영리한 사기꾼들. 어느새 이런 풍경에 익숙해진 내 자신을 보며 헛웃음이 났다. 아침으로 오믈렛과 짜이 한 잔을 먹었다. 달달한 짜이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속을 든든히 한 후 화장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라나시의 새벽


 여행 메모 2

 망자의 몸을 옮겨온다. 불을 붙인 후 태운다. 장작더미에서 삐져나온 몸의 일부를 대나무로 아무렇지 않게 불속으로 밀어넣는다. 비정상적으로 뒤틀어진 다리는 이질감을 낳는다. 지금 숨 쉬는 공기 속에 죽은 사람의 아주 작은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섬뜩하다. 바람을 타고 온 재가 머리와 어깨 위로 눈처럼 내린다. 타고 남은 재는 강가에 뿌려진다. 근처에선 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강물을 이용해 재를 걸러낸다. 재와 함께 섞인 값나가는 물건을 찾는다. 익숙해지기 힘든 광경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생전에 가진 부富의 정도에 따라 장작을 산다. 돈이 많았던 사람은 자신의 몸을 화장하기 위해 충분한 장작을,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장례를 치르기에 턱없이 부족한 장작을 사기도 한다. 다 타지 못한 시체가 덩어리째 강물에 던져지는 모습을 보며 사후에도 나뉘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구분에 씁쓸했다. 

 바라나시에 머무는 며칠간 삶과 죽음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전에는 죽음에 대해 딱히 고민해보지 않았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았기에. 하지만 장작 속에서 타는 시체를 보며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죽음으로써 삶이 끝난다면 굳이 힘들게 삶을 이어갈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제자가 죽음에 관해 묻자 공자는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에 관해 알겠느냐.”고 대답했다.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는  천재적인 과학자, 철학자들도 풀지 못한 인류의 영원한 난제이다. 그러니 내가 고민해봐야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잠시 고민을 내려놓고 휘적휘적 갠지스 강가를 걷는데 꼬마 여자아이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목적이 있어 보였지만, 혼자 걷느라 적적했던 탓에 계속 얘기를 했다. 한참을 대화하다 드디어 본심을 이야기한다. 꽃을 사란다. 싫다고 했다가 계속 사라는 말에 하나 사기로 했다. 얼마냐니까 얼마를 원하느냐고 물어본다. 고놈 건방지다. 10루피에 사겠다고 하니 20루피를 달란다. 안 산다고 하고 휙 걸음을 옮기니 붙잡는다. 10루피로 하잔다. 알았다고 하니 이제 두 개를 사라고 한다.

 '허 참, 얼굴에 철판이 깔렸나, 나 혼잔데 무슨 두 개씩이나?'

 됐다고 하려다가 마음이 바뀌었다. 내가 두 개를 살 테니 너도 소원을 빌자고 했다. 불을 붙이고 꽃을 강에 띄웠다. 무슨 소원을 빌까 하다가 옆을 바라봤다.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 꼬마애가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소원을 빌며


 강물에 떠 있는 꽃을 바라보다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어봤다. 아빠 엄마가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단다. 

 "그럼 너는?" 

 꼬마가 당황하기 시작한다. 귀여워 죽겠다. 한참을 놀려먹다 말했다. 나는 네가 행복해지기를 빌었다고. 배시시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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