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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n 01. 2016

어머니도 여자다

 어제는 차장님 대신 당직을 섰다. "다음에 대신 서줄게!" 라는 말은 인사치레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평소에 차장님을 좋게 생각해서인지 그다지 감정이 상하진 않았다. 상황근무휴무로 오후 2시에 퇴근한 게 크긴 했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갑작스레 대근을 한 탓에 세면도구가 없어 제대로 씻지도 못했지만 잠이 먼저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핸드폰 알림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오늘 일찍 들어오면 식당에서 삼겹살 사 먹을까?"

 어머니의 메세지였다. 잠이 덜 깬 탓에 메세지만 읽고 다시 잠들었다.


  5시쯤 어머니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한 손엔 삼겹살을 들고 계셨다. 내가 답장을 하지 않아 집에서라도 같이 먹으려고 사오셨단다.


 "나가서 먹어요."


 식당에 가는 내내 어머니는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가 일하는 곳에서 있었던 일, 부쩍 더워진 날씨에 퇴근할 적 그늘이 지는 곳으로 걸어온다는 이야기. 그다지 재밌진 않았지만, 열심히 맞장구를 쳐 드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들과 대화하고 있는 이 시간 자체를 좋아하시는 거니까.


 삼겹살집에 들어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전에는 내가 다 했는데 아들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어본다는 둥, 이 집에서는 해초를 줘서 좋다는 둥, 쉴 새 없이 이야기하신다. 여자는 말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데, 어머니도 여자구나.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다.


 어머니가 계산한다는 걸 한사코 거절한 후 내가 결제한 후에야 맘이 좀 편해졌다. 요즘 헤어진 여자친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어머니께 퉁명스럽게 대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 뭔가 아쉽다. 날도 더운데 아이스커피 한 잔 사서 벤치에 앉았다 가자니까 좋아서 반색하신다. 하긴 같이 살아도 이렇게 나란히 앉아 이야기할 일은 별로 없었다. 평소엔 방에 틀어박혀 내 할 일만 하느라 바쁘니 말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빽다방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사고 빨대를 두 개 꽂았다. 왜 하냐만 사냐니까 아들 것 좀 뺏어 먹으면 된단다. 뭔가 데이트하는 느낌이 든다. 나무 그늘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차장님 대신 당직 선 이야기를 했다. 아니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해야지 무슨 그런 놈이 다 있냐고 화를 내신다. 나쁜 놈이란다. 웃음이 나온다. 하긴 뭐 차장님이 잘한 일도 아니고 어머니가 나이가 많으니 나쁜 놈이라고 할 만하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러려니 하란다. 역시 어머니는 내 편이다. 어차피 헤어질 거였으면 여자친구랑 데이트할 시간에 어머니랑 커피나 한 잔 마실걸. 괜히 미안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가 새삼 작게 느껴진다. 다음에 만나는 여자는 어른에게 잘하는 싹싹한 성격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 잘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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