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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n 06. 2016

즐거운 회식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과장님이 조용히 내게 묻는다.


 "오늘 특별한 약속 없지?"

 "네? 아.... 네."


 당했다. 없는 약속이라도 만들어 냈어야 하는데. 퇴근할 생각에 마음이 해이해졌나 보다. 사무실을 쓱 둘러보던 과장님은 다음 타깃을 향해 나아간다. 엑셀 작업을 하느라 바빠 보이는 선배. 역시 방심하다 당했다. 선배가 힘없이 웃으며 물었다.

 "저녁만 드시는 거죠?"

 "그럼~ 당연하지!"

 물론 거짓말이라는 걸 우린 잘 안다.


 삼겹살집으로 향하면서 선배는 술이 지겹다고 이야기했다. 저번 주에 있었던 거나한 회식 덕에 선배는 장염에 걸렸다. 살이 5kg 나 빠지고 한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이번 주는 조용히 넘어갔으면 했는데. 차라리 야근하는 게 나을 것 같단다. 그러면 밀린 일이라도 하니까.


 축 처진 우리와 달리 과장님은 술 마실 생각에 신이 나셨다. 일주일에 많게는 두세 번, 밥으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자리. 이 자리는 직장 동료와 친목을 다지는 자리다. 적어도 그들이 생각하기엔 그렇다.


 막내인 내가 삼겹살을 구웠다. 태웠다고 한 소리 들은 게 몇 번. 이제 제법 잘 굽는다.


 "자 한 잔씩 해야지."

 

 보수적인 분위기에 남자가 대다수인 업계 특성상 술을 많이 마신다. 어느새 소주 5병, 4명이 마신 거니 꽤 많이 먹었다. 그러다 보면 투박한 속 얘기가 나오곤 한다.


 "우리 회사는 인마,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가 중요해. 너처럼 술 한잔하자고 해도 빼고 그러면 인마, 아무것도 못해. 일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아?"


 일만 잘하면 왜 안 되는지 묻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긴 적은 없다. 그저 하는 말이 다 맞다고, 차장님 과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겠다고. 그렇게 웃으면서 대답하고 지나가는 게 편하다. 어디에선가 읽은 것 같다. 이기지 못할 상대에겐 덤비는 게 아니라고.


 어차피 운전해서 가기엔 글렀기에 술잔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뭐 마실 만하다. 술이 술을 먹는다.


 선배도 나도 발음이 꼬이기 시작한다. 하긴 꽤 먹었다. 2차 얘기가 나온다. 적당히 좀 먹지. 차장님이 오늘은 여기까지 먹자고 한다. 다행이다.

 집으로 가는 길. 선배는 속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남 일 같지 않다.


 다음날 사무실. 어제 잘 들어가셨냐는 아침 인사에 과장님이 이야기하신다.

 "어제 경준이 아주 신나서 마시더라! 좀 맞춰주니까 말이야 기분이 좋아가지고! 그냥 하하."
 과장님의 말에 불만이 삐죽 솟아오른다.

 "아 경준 선배가요? 장염이 심해져서 병원 간다고 하던데요?"

 이렇게 말하면 양심의 가책을 좀 느끼려나.

 "젊은 놈이 말이야 허약해가지고, 나는 전날 술을 세 병이고 네 병이고 먹어도 회사 와서 티 낸 적이 없어!"

 

 헛된 기대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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