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대에게
잘 지내?
나는 나름 잘 지내고 있어.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과 사원증으로 새겨진 사회적 신분에 기대서. 신문을 뒤적거리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문득 묻고 싶더라. 잘 지내는지.
얼마 전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다고. 갑자기 어려워진 회사 상황을 보고 잘한 선택 같다는 친구의 말에 축하해줬어. 언제 한번 술 한잔하자는 말과 함께.
그러고 보면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이야. 그렇지 않아? 노력에 노력을 더해도 취업은 더 어려워지고, 몇 년 전만 해도 번듯하고 잘나가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고꾸라지는 걸 보면 말이야.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름 있는 회사에 들어가고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직무에 대한 불만족 등등 여러 이유로 이직 혹은 다른 진로를 준비하더라. 그런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을 쪼개 노력하는 모습에 대단하단 생각이 들다가도 문득 서글퍼져. 언제까지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행복은 현재에 있다고 하던데.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하루하루가 쉽진 않아. 권위적이며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와 화부터 내는 고객, 예정 없는 회식에 비생산적인 야근까지. 회의감이 들다가도 이제 나잇값을 해야 하고 그러기엔 경제력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버티는 것 같아.
회사 생활에 치일 때면, 가끔 대학 시절이 생각나. 올려야 할 학점과 가벼운 지갑,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점도 많았던 것 같아. 잔디밭에 앉아 마셨던 맥주 한 잔, 비 오는 날 여자친구와 걸었던 캠퍼스, 마음이 바빠 즐기지 못했던 학교 축제까지. 거기에 그때는 투박하게나마 꿈이 있었거든. 현실에 쫓겨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이건 비밀인데, 사실 얼마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 정치인이 아닌 인간 안철수가 그랬잖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주말과 같이 남는 시간을 투자하라고. 지금 하는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 전문적인 자격증을 따는 게 효율적일 수 있지만, 문득 이러다 회사에 최적화된 사람이 돼서 날 잃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거창하게 말했지만 밝히기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일이야. 아직 성과도 없어. 그래도 순간순간 그 일에 집중하는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구나.'
나는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라는 말을 좋아해. 평소에 내 인생의 전성기는 삶이 성숙하는 50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거든. 그러니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도 묵묵히 해나가려고. 나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든 네 생각에 끄적이다 보니 감성적이 됐나 봐. 말이 길어졌네. 내 얘기도 많이 한 것 같고. 마지막으로 내가 힘들 때마다 꺼내 읽는 시 하나 적어놓고 사라질게. 부끄러우니 얼른 쓰고 도망가야겠다. 나한테 하는 얘기 같기도 하지만, 힘들더라도 푹 자고 내일도 화이팅하길. 다음에 봐.
왜 우리는
그렇게
성공하기 위해 조급히 굴며
또한 그렇게
사업적일까.
만일 어떤 이가
그의 동료들과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박자가 고르거나
또는 늦거나
그로 하여금 그가 듣는 북소리에
발 맞추게 하라.
헨리 데이빗 소로우
발췌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