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지 않았던 애완동물 중성화 수술
사실 토리를 처음 데려올 때부터 중성화 수술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뜻 전해 들었던 발정기의 울음소리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토리를 키운 지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지만 그즈음, 일이 바빠지는 바람에 중성화 수술은 어물쩡 넘어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발정기가 왔다. 스트레스를 받는지 벽지와 소파를 발톱으로 긁어놓았고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 갓난아이 소리를 냈다. 보통 새벽 4시와 6시 사이에 울었는데 이 소리에 잠을 설친 다음날은 피로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순한 성격 덕분인지 못 견딜 만큼은 아니었다. 소파와 벽지는 어느 정도 포기를 했고 울음소리는 방문을 닫고 자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주변 이웃이 걱정됐지만 다행히 민원은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않기로.
하지만 다시 반년의 시간이 지난 후 내 결정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변했다.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자연스레 토리 얘기가 나왔고 나는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그거 안 시키면 고양이도 힘들어할걸?"
생각지 못했던 관점이었다. 그동안 나는 발정기가 온 고양이를 내가 어떻게 견디는지에만 무게를 두고 있었다. 비좁은 집 안에서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고양이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중성화에 대한 찬반 의견부터 대략적인 수술비와 여러 후기까지. 한참을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참고했던 중성화 수술 관련 정보
(앞부분은 넘기고 읽으시길)
https://namu.wiki/w/%EC%A4%91%EC%84%B1%ED%99%94%EC%88%98%EC%88%A0
여러 후기를 바탕으로 주변의 동물병원 중 평이 좋은 곳을 선택했다. 수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동물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 불안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수술 날짜는 회식과 야근이 없는 금요일 오후 1시로 정했다. 잠시 외출을 써서 고양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퇴근길에 찾아올 생각이었다.
수술은 금요일이었지만 금식은 전날 밤부터였다. 잠들기 전 사료 접시를 치우자 토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는지 울기 시작했다. 잘 때가 다 되었는데도 울음소리가 잦아들지 않아 토리를 고양이용 화장실과 함께 내 방에 데려왔다. 그렇게 토리는 밤새 울었다.
다음날 잠을 설친 탓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했다. 점심시간 이후에 한 시간 정도 외출한다고 팀장님께 말씀드리려 했지만 이날따라 일이 바빴다. 상사의 재촉에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가도 토리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거의 다 돼서 외출 결재를 맡았다.
서둘러 집에 도착해 토리를 찾았다. 소파 위에서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고양이 케이지에 토리를 담고 겉옷으로 주변을 감쌌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차를 끌고 갈까 고민했지만 가까운 곳이고 주차할 데도 마땅치 않아 걸어가기로 했다.
동물병원에 도착하자 토리는 잔뜩 긴장을 했다. 낯선 냄새와 목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것 같았다. 피검사를 하고 고양이를 맡긴 후 다시 회사로 향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일이 밀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창 일하고 있는데 수의사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다른 건 문제가 없는데 약간의 탈수 증상이 있어 수액을 달고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는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퇴근길의 교통체증을 뚫고 서둘러 동물병원으로 갔다. 토리는 마취약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술에 약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토리가 다른 고양이에 비해 해독작용이 좀 늦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래도 수술이 잘 됐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토리는 한참을 비틀거렸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맘 같지 않아서인지 낮게 울었다. 상처부위가 덧나지 않도록 씌운 목 칼라를 풀어주자 사료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거의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토리가 안쓰러워 간식을 챙겨줬다. 배가 어느 정도 차자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내 무릎 위에 올라왔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행동이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더니 곧 잠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1년 동안 토리를 키우며 내 무릎 위에서 잠이 든 건. 친근했던 사람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혼자 수술을 받아야 했던 토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난 알 수 없었다. 심한 스트레스로 탈수 증상이 온 것 같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에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혼자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두었다. 토리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내 무릎 위에서 잤다.
이틀이 지난 지금 토리는 많이 좋아졌다. 위생을 위한 목 카라가 불편한지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사료도 잘 먹고 배변활동도 괜찮아 보였다. 쓰다듬으면 그르렁 거리는 것을 보니 이제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우리 가족의 편의를 위해 중성화 수술을 견뎠던 토리. 그런 토리를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살아남을 능력이 없는 토리가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마음먹으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이 옳은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에는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토리의 등을 쓰다듬으니 그르렁 거리며 눈을 감는다. 탈수 증상 때문인지 수술 전보다 많이 말랐다. 당분간은 열심히 간식을 챙겨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