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사람들은 삼원색 인지체계를 가진다. 즉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빨간색, 녹색, 파란색으로 나눠서 각각의 색을 인지하는 색소체를 갖는데, 이렇게 색소체를 통해 감지된 신호를 머리 속에서 조합해 종합적인 색을 인지한다. 다양한 색소체를 가질수록 대상의 색을 더 섬세하게 감지하거나 더 넓은 파장의 빛을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갯가재의 경우 16가지의 색소체를 갖고 있어 사람이 볼 수 없는 파장의 빛도 감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도 세가지가 아닌 네가지 종류의 색소체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연구가 나온바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몇몇 사람들의 경우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네가지 파장으로 나누어 인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색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백만가지 색을 구분하는데 비해 이런 사람들은 1억가지 색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하니, 이런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다채롭게 보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네가지 색 인지체계는 색 인지와 관련된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나타나는데, X 염색체의 변이가 여기에 영향을 미치며 그로 인한 영향인지 여자에게서 더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여성 중 12%의 여성들이 이처럼 네 가지 색소체를 가질 수 있단다. 아직은 연구 중이라 구체적인 부분까지 깊게 밝혀지진 않은 듯 하다.
어쩌면 이런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탁월한 색채로 표현된 일러스트나 영상 작업물을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세한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사원색 체계를 타고난 사람들은 일상 사물과 사람을 보는 관점이 보통의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다르지 않을까. 그러한 미세한 차이가 인생 전반에 걸쳐 어떤 차이를 만들어지 아직까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색감각 뿐 아니라 사람들이 알고보면 서로 엄청 다르게 태어난다는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과학의 발전 덕분에 과거에는 무시해왔던 사람 사이의 차이가 알고보면 인생 전반에 걸쳐 간격을 좁힐 수 없는 차이일 수 있다는 가설 역시 확신이 더해지고 있다. 최근 예민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또한 그동안의 심리학적 연구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지레 짐작하느라 핀잔을 들어온 예민한 사람들은 어쩌면 정말로 남들이 캐치하지 못하는 진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탁월한 사업가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이미 자기 건물을 올려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동선과 그들이 원하는 상품들을 상상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본인이 아니고서야 잘 모르지만 분명 그들은 남들보다 사업과 관련된 어떤 재능을 타고났고, 그렇기에 남들이 상상도 못하는 것들을 마치 실제 존재하는 실체처럼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능력은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이 공부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의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를 괴롭혀온 교육 만능주의, 노력 만능설은 알고보면 무지가 만들어낸 심리적 폭력이다. 교육과 노력을 들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견 긍정적인 생각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각자의 타고난 재능을 무시한 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스스로의 노력 부족, 부모의 교육 부족이라는 생각을 낳아 결과적으로 피로 사회를 만들어냈다. 아무리 해도 이를 수 없는 목표에 자신을 갈아 넣어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긍정주의로 포장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한 원흉이 되어왔다. 조물주와 같은 절대자가 나타나 '그건 너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거니까 그만 하고, 어머님~ 당신 자식은 그 쪽으로는 아무리 교육 시켜도 불가능하니까 걍 놔두세요' 라고 말해준다면 애초에 사람들은 자신이 품었던 목표에 대한 욕심 자체를 놓아버릴 수도 있었을 거다. 긍정주의와 무지는 가질 필요가 없는 욕망을 품게 만들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는 공부에 재능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다른 타고난 재능이 있어 그 재능을 갈고 닦을 시간을 공부가 뺏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이는 부모보다 앞으로의 미래에 자신이 어떤 길을 걸을지 직감적으로 더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어차피 미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어떻게 흘러갈지 확신할 수 없다. 10년, 20년 전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진 직업들이 최근 수 년간 갑자기 뜬 현실을 그 옛 시절의 사람들 중 누가 확신을 갖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 뿐 아니라 이미 쇠퇴하는 분야에서도 자기 만의 길을 갈고 닦아 나름 그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잘 찾아온 사람들이 주위에도 너무나 많다.
교육학, 심리학, 뇌과학, 진화학 등의 학문이 밝혀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진실이 아이들의 교육 뿐 아니라 성인들 중 뒤늦게나마 자기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점이 안타깝다. 시간은 흐르고 각자의 인생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릴없이 흘러가고 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