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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Jul 01. 2023

책임 관련 의료 서비스의 독특한 특성

가지고 있는 노트북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고 하자. 컴퓨터를 들고 수리센터에 간다. 수리를 하기 전, 미리 물어본다. 


"고칠 수 있죠?"

수리기사는 "아 그럼은요" 하고 확신을 갖고 말한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수리기사는 슬며시 노트북을 도로 내밀면서 도저히 자기 능력으로는 고칠 수 없다고 실토한다. 게다가 미안한데 수리 과정에서 액정 화면이 추가로 깨졌다고 추가 고백..

그 말에 화를 내고 고소하겠다고 하니 수리기사는 안절부절 못하며 액정 수리비를 내밀었다...


내용상 딱히 이상할 부분은 없어 보인다. 물론 수리기사에게 따로 액정 손상비를 청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청구한다 해도 뭐 꼭 진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수리기사 잘못은 맞으니까. 


그런데 의료로 가면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팔이 크게 다쳐 의사를 찾는다.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하며, 수술하면 좋아질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수술을 마친 후 의사가 고백한다. 다친 부위가 너무 넓고.. 면역력이 낮은건지 예상 못한 감염이 생겨 문제가 있는 부분을 잘라낼 수밖에 없다고.. 팔은 그냥 못쓰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항의를 할 수는 없다. 진료비를 깎아주거나 돌려주기는 커녕 병원 방문과 진단, 수술을 위한 비용은 전부 내야 했다.. 


일반적인 제품/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는 '뭔가 다르다'.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사람들은 그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적 완결성을 원하지 않는다. 위의 예에서 컴퓨터를 고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동시에 자기 컴퓨터를 스스로 수리하는 AI 컴퓨터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능한지 이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진료가 확률의 차이만 있을뿐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현대 의학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남들이 하기 어려운 고난이도 수술을 하는 의사라 해도 할 때마다 자신의 수술이 성공할지 아닐지 확신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의 몸이 사람마다 다르고, 아직까지 현대 의학 기술은 한 사람의 예측 불가능한 반응을 모두 알아낼만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서비스에 치료비를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가? 또한 치료비 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마지막으로 의료인은 자신의 의료 행위 결과에 대해 어느 수준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설득력있는 답을 제시할 수 없다. 


의료가 그런 불확실한 점들을 갖고 있는 만큼, 실제 병의원과 각종 정부측 의료 관리 기구들(심평원, 공단 등)도 그 때 그 때 터지는 문제들만 잘 땜빵해가며 의료 산업을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간혹 의료와 관련한 이익단체 혹은 정부들 사이의 갈등이 빚어진다 한들, 어느 쪽이 옳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의료의 이같은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원래 가격은 해당 제품과 서비스의 공급자 책임 문제와 관련이 깊다. 즉 비싼 제품이나 서비스는 그만큼 제품과 서비스의 하자에 대해 공급자가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 헌데 의료는 반대다. 고가의 치료일수록 성공률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책임이 약해진다. 사람 몸에 대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퉁치자니 환자 입장에선 기가 막힐 수밖에. 그렇다고 '의료는 원래 이러이러한 특성을 가지니 이해해주시길...' 하고 일일이 다 설명할 수도 없다. 부작용 동의서에 서명을 하게 만들지만 환자 입장에서 과연 그 동의서를 거부할 자유 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등등의 논란을 풀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의료인 입장에서 치료비를 적게 받고 책임을 낮추면 되지 않을까 하는데 그것 역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책임을 낮춘다는 것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치료비 적게 받았으니 진료가 실패해도 쌩까는 경우가 늘어나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 충분한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의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병의원 입장에서는 일단 치료비 가격을 높이고 싶어한다. 


자연스레 의료에 대해 막연한 의심( 실은 합리적인 의심 )을 갖고 있는 환자 - 불확실한 책임을 안고 진료하는 의료인 - 의료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경제적 제재를 가하려는 정부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태로 내쉬 균형을 이루게 된다. 내쉬 균형의 균형점은 서로 최대한 책임을 떠넘기고 미루기 위한 어딘가로 모아지는데, 그로 인해 결국 피해는 환자가 다 보는게 아니냐고 의문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실은 딱히 그렇게 말하기도 '불확실'하다.


정부 - 의료인 간에 갈등과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면.. 어느 한 쪽이 맞거나 틀리다고 할 수 없으며.. 이 모든 것은 결국 의료 여기저기 널려있는 '불확실성'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면 대략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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