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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Jul 01. 2023

인류의 만병통치약(?) 아편

필라델피아 켄싱턴 주 거리에서 기괴한 몸짓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행인들의 모습이 영상에 찍혔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현실판 좀비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강력한 마약 펜타닐(Fentanyl). 아편을 원료 물질로 개발된 강력한 마약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들은, 더이상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수 없을만큼 뇌가 마비되어 말 그대로 힘빠진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마약은 이처럼 무서운 약이지만, 사실 마약의 기원인 아편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의약품 중 하나다. 아편은 양귀비라는 식물에서 추출되는데, 그 꽃이 아름답다 해서 중국 최고 미인으로 알려진 당나라 현종 황후의 이름인 양귀비를 따 그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아편 추출 방법


양귀비과엔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모든 양귀비가 아편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양귀비과에 속하는 30속의 식물 중 하나인 양귀비속에 28종이 있고, 이들 중 2가지에서 아편이 상당량 추출되는데, 재배가 쉬워 사람들이 재배용으로 사용하는 종은 그 중 1가지 뿐이다. 학명 Papaver Somniferum. 뒤에 솜니페룸은 로마신화의 잠의 신 'Somnus'에서 유래한다. 


양귀비는 꽃을 피운 후 곧 꽃잎이 떨어져 덜여문 녹색 씨방을 만드는데, 시간이 지나 이것이 곧 달걀만한 씨방이 된다. 이 씨방이 여물기 전 표면에 칼집을 내고, 여기서 흘러나오는 즙을 채집해 고체인 생아편을 만든다. 





아편의 성분, 효능과 부작용


아편의 주성분은 모르핀, 코데인, 파파베린 등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이 중 주된 효능을 나타내는 성분은 모르핀과 코데인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약' 효과를 내는 성분은 모르핀(morphin)이다. 모르핀은 통증을 없애고 쾌락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내는데, 대신 부작용으로 두통, 복통, 구토, 변비를 일으키며 과다 사용시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morphin


1975년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교와 미국 존스홉킨스 연구소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모르핀의 기전이 밝혀졌다. 사람의 뇌에는 뇌하수체와 시상하부라는 기관이 있어 여기서 통증을 없애고 행복감을 증진시켜주는 호르몬인 엔돌핀(endorphin)이 만들어진다. 이 엔돌핀은 뇌 속 행복 중추에서 열쇠처럼 작용해 엔돌핀 수용체라는 자물쇠를 여는 방식으로 효과를 나타낸다. 조깅을 하거나 산을 오를때 쾌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Runner's High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이 때 몸 속엔 엔돌핀 분비가 활발히 일어나게 된다. 운동에 중독된다는 말도 역시 Runner's High 현상과 관련이 있다. 


아편의 또다른 성분인 코데인(codeine)은 기침을 막는 효과를 낸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알약이나 액상 형태로 기침을 멎게 하는 약으로 쓰이고 있다. 다만 과량 복용시 호흡계가 마비되는 부작용이 있어 2015년 4월 유럽 의약품청은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코데인 처방을 금지한 바 있다. 2017년 4월 미국 FDA도 어린이와 수유부에게 코데인 처방을 금지했는데, 한국 식약처도 현재 12세 미만 어린이에게 코데인 투약을 금지하고 있다.


아편을 먹다 끊으면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편의 성분인 모르핀 투여시 우리 몸이 엔돌핀 양이 충분하다고 착각해 엔돌핀 생성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몸 속 엔돌핀 수용체가 엔돌핀이나 모르핀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져 여기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데, 이 때문에 더 많은 모르핀을 투여해도 전과 같은 쾌감과 진통 효과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에 몸은 점점 더 모르핀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게 된다. 




아편의 역사 - 고대


아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만년 전부터 양귀비 수액이 의약품으로 사용된 기록이 남아있다. 기원전 3400년 전 수메르인은 아편을 기분 좋은 식물이라는 의미의 '훌 길'로 불렀고 스위스 신석기 유적엔 양귀비 재배 흔적이 남아있다.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엔 설형문자로 아편을 '기쁨의 식물'로 불리며 이에 대한 채취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1500년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양귀비를 의약품으로 이용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한 여러 문서에 아편에 대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그리스 신화엔 여신 데메테르(Demeter)가 양귀비를 이용해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의 통증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 코린트 근처엔 메코네(Mekone) 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여기서 메코네는 양귀비 도시라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에는 아편을 두고 "이 약을 섞은 술을 마신 사람은 눈 앞에서 자기 가족이 죽어도 한나절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5세기 경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양귀비를 의약품 성분으로 자주 언급했으며,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군대는 늘 아편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테오프라스토스

아편의 영어이름 opium은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글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어로 '즙'을 opion이라 부르는데, 테오프라스토스가 양귀비 즙을 언급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고, 후에 여기서 opium이란 단어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아편이 중국으로 전래되었을 때 중국인들은 이를 'ya pian'으로 불렀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달되어 '아편'으로 부르게 되었다. 




아편의 역사 - 근대 이전


근대 이전 아편은 유럽과 중동, 이집트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기원전 1~2세기 로마시대 아편은 대중들에게 그저 일반 상비약처럼 쓰였다. 1세기 네로 황제시절 그리스 출신 군의관 디오스코리데스는 양귀비에 대한 기록을 남긴바 있다. 그의 기록엔 양귀비가 통증과 기침, 배탈에 효능이 있으나 너무 많이 복용시 생명을 위협한다고 쓰여 있다. 이후 아편은 중동, 수메르, 이집트, 유럽과 중국에까지 널리 전파된다.


중국은 기원전 139년 중국 한나라 장건에 의해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3세기 아랍 무역상을 통해 아편을 들여오게 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 화타가 '마비산' 이라는 마취약을 사용한 기록이 있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마비산을 아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동안 아편은 중국에서 상류층과 부자들이 조금씩 사용하였지만 그 후 약 1000여년간은 별로 보급되진 않았다. 


4~5세기경 로마제국이 몰락한 후 아편은 인도와 북아메리카에 널리 보급되었다. 11세기~13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병사들이 유럽에 널리 아편을 보급했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아편은 유럽 전역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었다. 항생제나 항우울제 등이 없던 그 시절 아편은 당연히 치료제로 쓰이기 보다는 통증을 완화시키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는데, 콜레라, 히스테리, 통풍, 치통에까지 아편이 사용되곤 했다. 


오랫동안 광범위한 지역에서 아편이 사용되었지만, 그 시절 아편 사용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표준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즉 아편을 얼만큼 복용해야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사용하는 사람마다 사용량이 들쑥날쑥 했는데, 이 때문에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다. 몇몇 학자들이 이에 아편의 표준화를 위한 기술 개발을 시도하게 되었다.


파라셀수스


16세기 스위스의 식물학자이자 의사인 파라셀수스는 laundanum이라는 아편틴크제를 개발했다. 이는 물에 녹지 않는 아편을 알코올에 녹이는 방식이다. 물에 녹지 않는 아편을 녹여 액상 약으로 만들 수 있었던, 그 당시엔 획기적인 제조법이었다. 그가 제조한 아편틴크제엔 생아편이 1/4이 들어있고 그 외에 진주 가루, 각종 기름, 수사슴 뼈 간 것 등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갔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효능은 아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토머스 시드넘


17세기 영국 의사 토머스 시드넘은 아편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편의 표준화를 위해 파라셀수스의 아편틴크를 개량해 정확한 정량으로 복용이 가능한 액상 제제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액상 아편으로 그는 큰 돈을 벌게 되었다. 


한편 그 시절 중국에선 잎담배를 말린 후 갈아서 피울 수 있는 '파이프'가 개발되었다. 중국인들은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기분 좋아지는 약초' 인 담배를 많이 수입했는데, 17세기 중국 엘리트들 사이에선 파이프를 이용한 담배 흡연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국 황제는 곧 모든 형태의 흡연을 금지시켰지만, 이 때 개발된 파이프는 나중에 중국인들이 아편을 피우는데 사용되었다. 



이 시기 중국에선 '차(tea)'가 크게 유행했고 이것이 영국에까지 도입되었는데, 영국 국민들은 중국의 차에 열광했고, 이로 인해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 수입을 대폭 늘리게 되었다. 여기서 발생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영국 정부는 중국에다 내다 팔 수출품을 찾기에 골몰하게 되었다. 당시 영국의 무역적자로 인해 전세계 은의 최대 보유량을 지니고 있던 스페인 광산으로부터 수많은 은이 중국으로 유출되었는데, 중국에 흘려보낸 은화를 되찾기 위해 영국은 중국에 아편 수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영국 정부는 인도를 식민지화한 후 인도에서 아편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생산된 인도산 아편의 대중국 수출액은 1729년 광저우 항구를 기준으로 200궤짝 수준이었다. 아편 수출액은 이후로 점점 증가해 1790년이 되면 4000궤짝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으로 들어간 아편은 중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이 때 중국인들이 파이프 담배를 좋아한다는 특성을 이용, 영국은 아편에 불을 붙여 파이프로 연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그야말로 중국인 맞춤 제품을 생산해 큰 이익을 보게 되었다. 청나라 황제는 1799년 아편 수입을 금지했지만, 이후에도 영국 정부를 등에 업은 동인도회사가 밀반입의 형태로 오히려 대중국 아편 수출액을 크게 늘리게 되었다.


산업혁명기에 들어와 유럽에선 아편이 더욱 대중화되었다.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괴로운 일상을 아편으로 달래곤 했다. 또한 아편은 여전히 중한 질병에 의약품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당시 산업혁명 초기 영국 런던은 거리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콜레라와 결핵이 범람했는데, 항생제가 없던 그 시절 콜레라와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었다. 다만 결핵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아편이 사용되었고, 콜레라로 인한 과다한 설사를 막기 위해 아편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아편의 부작용 중 하나인 변비 유발을 이용한 치료방법이었다. 당연히 세균 감염이 원인인 결핵과 콜레라를 아편으로 치유할 수는 없었기에, 당시 해당 환자들은 통증과 설사의 고통을 줄이며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편의 역사 - 근대


미국 독립선언서를 만든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은 1700년대 말 파리 여행을 하다 La Brune(라 브륀느) 라는 약을 구하게 되는데, 이 약의 활성 성분은 역시나 아편이었다. 귀국후 토머스 제퍼슨은 이 약을 친구들에게 진통제로 소개했다. 이후 미국에선 영국 의사 시드넘이 개발했던 표준화된 아편틴크가 복용하기 쉬운 여러가지 형태로 널리 퍼지게 된다. 


제르튀르너

한편 1806년 독일 약사 견습생 제르튀르너 (Serturner)는 여러 용매와 증류를 사용하여 아편의 활성 성분을 분리해낸다. 이것을 morphium이라 불렀는데, 이 이름은 꿈의 신 모르페우스에서 기원한다. morphium은 후에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morphin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다만 제르튀르너는 무명의 약사인지라 과학자들에게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했고, 모르피움으로 재산도 모으지 못했다. 대신 독일 다름슈타트 지방에서 '천사 약국'을 운영하던 엠마뉴엘 머크라는 사람이 제르튀르너의 모르피움을 알아보고 1827년부터 이를 상업적으로 생산해 자신의 약국에서 판매하게 된다. 머크는 이 때 모르피움으로 큰 돈을 벌어 제약회사 Merck를 세우고, 이 때 만들어진 Merck는 후에 세계적인 제약회사가 된다. 2021년 기준으로 Merck사는 매출 기준 세계 7위 제약회사에 랭크되어 있다. 



1841년 프랑스 외과의사 프라바즈는 피부 밑에 약을 넣을 수 있는 바늘 주사기를 개발했다. 그는 이 주사기를 이용해 혈관에 모르핀을 직접 주입할 수 있는 모르핀 혈관 주사를 개발했다. 이 때 개발한 모르핀 주사는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시기 병사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남북전쟁 병사들이 아편에 중독되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군대병(the army disease)' 이라 불렀다. 




미국에선 약국에서 수많은 모르핀 제제가 팔리고 의사들 역시 다양한 질병에 모르핀을 처방했는데, 이로 인해 아편 수입량은 1840년 1만 6천kg에서 1870년 25만kg으로 치솟게 되었다. 미국의 수많은 여성들도 히스테리, 월경통, 임신시 무통 분만에 모르핀을 사용했다. 추리소설의 대부였던 에드거 앨런 포의 부인 역시 결핵으로 죽어갈 때 아편 중독으로 통증을 달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25년에서 1850년 사이 영국의 아편 판매량은 매년 4~8%씩 증가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린 아기에게도 아편이 함유된 진정시럽을 먹이곤 했다. 영국 정부는 증가하는 아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인도에서 양귀비 플랜테이션을 장려했고, 이에 동인도회사는 아편을 전세계에 내다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동인도회사는 제일먼저 가장 시장이 넓은 중국 공략을 시작했다. 


1830년대 중국은 아편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시 전국민의 1%인 400만명이 아편 중독자였고, 이에 중국 황제는 1839년 임칙서에게 명령해 영국 상인의 1400톤 아편을 모두 압수한 후 석탄과 소금물로 분해하도록 시킨다. 이에 대한 영국 정부의 반발로 양국 사이에 총 2차에 걸친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 이후 중국은 영국에 완전히 굴복해 난징조약 / 텐진조약 /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영국에 넘어간 홍콩은 세계적인 아편의 중심지로 변했고, 홍콩을 통해 들여온 아편은 점점 더 중국 전역으로 퍼져갔다. 1864년 태평천국의 난이 끝난 후 수많은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전세계로 이민을 갔는데, 이 때 수 만명의 중국의 계약 노동자들이 대량의 아편을 소지한 채 미국으로 떠났다. 이들은 낮은 보수를 받고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이들로 인해 1880년대 샌프란시스코엔 아편굴이 늘어나 이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했다. 이는 후에 미국 슬럼가 마약 문화의 원조가 된다. 


1874년 영국인 화학자 라이트는 모르핀에 아세틸기 원자단을 결합시켰고, 1897년 독일 바이엘 제약회사는 그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헤로인 (heroin) 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는 질병을 치료하는 영웅적인 효과를 내라는 의미에서 'hero'를 붙인 것으로, 바이엘은 헤로인을 기침 억제제와 모르핀 중독을 치료하는 중독성 없는 약으로 판매했다. 그런데 헤로인은 실은 체내에서 모르핀으로 분해될 뿐 아니라 모르핀보다 약효와 중독성이 훨씬 강한 약으로, 바이엘은 곧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영국과 미국에서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모르핀 부작용으로 인한 중독 자살, 살인등의 사회 문제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이에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미국에선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되어 1914년 마약 방지법인 해리슨 법이 통과되어 일반인에 대한 마약 판매가 금지되었고, 영국은 1926년에 이르러서야 일반인 판매가 금지되었다. 


중국 역시 1930년대에 장제스 정부가 아편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고, 마오쩌둥도 자신이 점령한 지역내에서의 아편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일본과 국민당이 점령한 지역에선 아편 밀매가 꾸준히 이루어졌다. 장제스와 마오쩌둥 역시 비밀리에 아편 밀매를 정치자금 확보에 이용했다고 한다. 


푸이와 위안룽


중국 마지막 황제 푸이의 부인 위안룽은 16세의 젊은 나이에 시집 와 식물 정부가 된 중국 황실에서 남은 평생을 아편에 중독된 채로 보내게 되었다. 1946년 위안룽은 중국 공산당에게 잡혀 능멸 당하고 아편을 박탈당하고 만다. 금단증상으로 구토와 대변으로 범벅된 누더기 옷을 걸친채 가상의 시종들을 향해 중얼거리며 미친 여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영양실조로 그 해에 사망하게 된다. 1950년 중국 공산당 정부는 모든 마약을 불법화하고 양귀비 밭을 불태우며 중독자를 사형시키는 정책을 단행하게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아편과 관련된 사건은 김홍륙의 독차 사건이 유명하다. 김홍륙은 19세기 말 조선 조정에서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던 사람으로, 고종의 신임을 얻었으나 후에 부정축재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 조치를 받게 된다. 이에 앙심을 품은 김홍륙이 고종과 그의 아들인 황태자 순종에게 아편을 탄 커피를 올렸다. 커피맛을 알고 있던 고종은 재빨리 뱉어 화를 모면했으나, 커피맛을 모르던 순종은 꽤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구토와 혈변으로 고생하며 이가 모두 빠져 남은 생을 틀니로 보내게 된다. 김홍륙은 후에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아편의 현재


UN 약물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도 매년 전세계에서 1천톤의 아편이 생산된다고 한다.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의 주요 생산지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전세계 공급량의 82%가 여기서 생산되고 있다. 2021년 8월 미군이 물러난 이후 탈레반이 이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이 급증할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편 자체는 오랫동안 인류의 진통제로 사용해온 약물로, 소량 사용시 큰 문제가 발생하진 않으나, 문제는 아편의 활성성분인 모르핀과 모르핀을 원료로 만든 헤로인, 펜타닐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중량대비 엄청난 약효 및 중독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헤로인은 마약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된 약물이지만, 모르핀과 펜타닐은 의약품의 용도로 아직까지도 사용된다. 다만 말기암 환자나 과도한 통증이 나타나는 환자에게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최후의 진통제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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