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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Jul 01. 2023

치과 신경치료에 대한 생각

충치가 깊어 신경까지 전이된 경우나, 오래 지속된 충격 혹은 일시적인 큰 충격에 의해 치아 신경이 죽은 경우 신경 치료를 시행한다. 신경 치료는 단어의 뜻을 보면 언뜻 신경을 되살리는 치료로 보이지만, 실은 치아 내부의 신경을 죽여 깨끗이 긁어내는 치료다. 영어 단어로는 pulpectomy, endodontic treatment인데, 이 단어 자체에 신경을 살린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 특히 치아 신경을 제거하는 술식인 pulepectomy의 -ectomy는 절개해서 제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직까지 치과 기술 중 치아 내부의 신경을 외부에서 분자수준으로 탐지해서 신경 세포가 어떤 상태인지, 감염된 세균과의 싸움에서 결국 이길 수 있을 것인지 등등을 예측하는 기술은 개발되어 있지 않다. 보통 긴 시간을 두고 관찰해보면서 환자의 통증 반응을 관찰하거나 전기적 반응, 치아 변색 여부 등등을 관찰하며 판단하게 된다. 물론 명백히 치아 신경이 반응성이 없는 경우나 충치가 깊어 이미 신경이 노출된 상태로 출혈이 없는 경우 등은 즉각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그런데 의외로 충치가 깊거나 치아에 통증이 있어도 신경 치료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경우는 꽤 많다. 환자를 설득해 충치를 제거하고 방어용 약제를 넣고 긴 시간 기다린 후 신경이 회복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치아 내부의 신경 (엄밀히는 치아를 관리하는 세포 조직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 자기 스스로 염증이나 감염을 극복해 다시 생활력을 갖추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는 사람에 따라, 치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필요한 건 시간이다. 


다만 충분히 기다렸음에도 신경이 회복되지 않아 신경치료를 해야 할 경우, 치과의사 입장에선 난감하다. 그동안 환자는 아플대로 아프고, 치과적으로 신경이 회복하기 위한 특별히 도움이 될 치료를 적용할 게 없기 때문이다. 복용약을 통해 신경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영양분을 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직은 연구 단계일 뿐 임상에서 사용되는 것은 없다. 환자가 의심의 눈초리로 ‘왜 진작 신경치료를 안했냐’ 라고 눈치를 주면, 다소 미안한 마음으로 신경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과거에 로컬 치과에선 그래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전부 신경치료를 해버렸다. 치아 내부 신경은 치아를 관리하는 가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경 치료를 해버리면 아무래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아의 수명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신경 치료 자체의 불완전함 때문에 신경치료한 치아가 나중에 감염이 되어 조기에 뽑아야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환자가 기다려주지 않고 의심을 하면 환자가 다른 치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가서 신경치료를 받을 테니) 그냥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해버리는 거다. 물론 대학병원처럼 권위가 있는 곳에선 충분히 기다려 최대한 치아 신경을 살리는데 집중한다. 대학병원은 아무래도 돈보다는 치료 자체의 완결성에 집중하기에 더 최적화된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치과의사라도 대학병원에 있을 때보다 로컬 치과를 개원했을 때 치료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헌데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환자들도 적극적으로 기다려준다. 통증이 있거나 불편해도 기다린다. 교과서적으로는 2주 정도면 결론이 나지만, 아주 가끔 간헐적인 통증이 한 달에서 수개월간 지속되다가 결국 적응되서 살아나는 경우도 꽤 있다. 이건 너무나 특이한 케이스라 보통은 그렇게까지 기다리진 않는다. 대개는 환자가 치과에 오는 것을 깜빡해서 몇 개월 후에 찾아온 경우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보니, 나 역시 시간이 갈수록 신경치료를 가급적 피하게 된다. 과거 치과계에선 앞니 같은 경우 치아를 삭제 후 크라운을 씌워놓고 나면 언젠가 신경이 견디지 못할테니 미리 신경치료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경험상 신경치료를 미리 하지 않아도, 생각보다 많이 치아를 삭제한 경우도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결국 통증이 낫고 신경도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케이스가 꽤 있었다.


업계에서는 치과 치료에 대한 지식 향상을 환자들의 dental IQ가 올라갔다고 표현한다. 그랬거나 아니면 치과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거나 여러 이유로 요즘은 많은 치과에서 충분히 시간을 들여 최대한 치아를 살리는 치료를 시도한다. 모든 것은 결국 환자 마음에 달렸지만, 확실히 과거보다 환자들의 인내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치료든 환자 몸 스스로가 자가 치유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조성해주는게 좀 더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몸의 회복 기능은 결국 우리 몸을 외부 상황에 더 장기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결국 의료 기술은 사람 세포가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 이상의 효과적인 능력을 갖추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은 수많은 치료가 사람의 자체 회복 능력에 기대는 바가 크다. 한창 연구했던 줄기 세포 치료도 결국은 사람 몸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재생 능력을 북돋워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론 과학기술은 늘 사람의 예측을 뛰어넘는 수준까지 발달해왔긴 했지만..과연 현재 수준의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을 의학 기술이 임상에 실제로 적용되는 그 날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찾아올까. 잘 모르겠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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