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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Jul 01. 2023

사람 생명은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한 때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현실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사고나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은 빠른 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해 처치를 받아야 하는데, 한국의 많은 지역에서 그와 관련된 시설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해당 보도의 요지였다. 당시 이국종 교수가 언론에 출연해 정부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의료계에서는 이 모든 것이 정부가 의료 수가, 즉 진료 가격을 너무나 낮게 만들어놔서 그런 거라고 주장해왔다.


언뜻 듣기엔 그럴듯한 말이다. 사람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료인은 최선을 다해 진료해야 하고, 보조 인력은 최대한 환자를 병원으로 실어 날라야 하며, 정부와 같은 공공 기관은 병원이 그런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도록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앗,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전제인 첫 부분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람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람 생명은.. 꼭 살려야 할까? 치명적인 질병이나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이 그냥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그저 싸이코패스적인 생각으로 그저 비난받을 생각일 뿐일까?


인류는 늘 '남의 생명'을 하찮게 여겨왔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만이 소중하고, 그 외 사람들의 생명을 뭐 그렇게까지 중히 여기진 않는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다. 물론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선 남의 생명 역시 소중히 생각할 실리적 이유는 있다. 그렇게 다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자리를 잡아야 관련 법과 제도, 기구들이 생겨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지킬 수 있으니까.


남의 생명이 안타깝게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거나 안타까운 죽음을 막는데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그런 개인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대표하진 않는다. 수많은 침략 전쟁의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행동은 개개인의 양심과 도덕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사람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만한 법과 제도라는 시스템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사고나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지, 구한다면 어느 선까지 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 정부를 비롯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각종 기관들은 여기에 얼마를 지원해야 하는지.. 이것은 누가 무슨 근거로 결정할까? 


실은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는 정치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의료기관에서 때를 놓쳐 사망하는 환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국민들의 극히 일부만이 그런 치명적인 위기 상황을 겪기 때문이다. 또한 정말로 정부의 지원이 낮아서 중증 환자들의 사망률이 올라가는지 여부도 알 수 없다. 누군가 제대로 연구해 그 결과를 발표해서 의료인들의 주장을 사실로 입증했다 한들, 그것이 이슈화되지 않는한 아무도 그 연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의료업의 직업 가치는, 질병이나 사고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질수록 올라간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붕 뜬 이야기처럼 들리는 '생명의 소중함' '의료 윤리' 같은 개념들이, 의료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개념들은 의료인들에게 면허 숫자 제한에서 비롯된 독점 이윤도 보장해주고, 직업적인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는 매우 실체 있는 개념이다. 


반면 정부 기관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 기관들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일하는 방식으로 짜여진 조직이다. 누구 하나 정부 기관 전체를 정확히 대표할 수 없다. 각 기관은 그 내부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해당 기관의 정치적 영향력과 여론으로부터 받는 피드백 등으로 굴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의료인들은 정부가 생명의 가치를 도외시한다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국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긴다고 비난한다. 여기에 대해 정부 기관의 대표로 나선 사람은, 자기 생각이 아닌 조직의 논리를 여론을 의식하며 기계적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의료인들은 바로 그 사람이 마치 정부라는 존재의 인격체 그 자체인 것처럼 여기며 정부를 향한 맹비난을 계속해서 퍼붓는다. 


결국은 큰 그림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이해관계의 싸움일 뿐이다. 다만 각자의 이익을 이루기 위한 핵심 근거가 다를 뿐이다. 의료인은 사람 생명에 대한 중요성이라는 가치관이, 정부 기관은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라는 가치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각 가치관이 각자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니까. 


모든 인간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그저 철학적 이상론에 불과하다. 실제 현실은 그런 이상론이 전혀 통하지 않은 상태로도 별다른 문제 없이 지금과 같이 잘 돌아가고 있다. 만약 이 세상 모든 인류가 모든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였다면, 인류는 원시시대에 이미 멸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대신 다른 인류종에 공격성을 보이는 인류종이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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