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한계

나성미(40)는 남들 보기에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다. 그녀는 명문대를 나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통의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직업적 성취를 이뤄냈다. 결혼도 잘했다.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유한 법조인을 만나 아들 딸 둘을 잘 키우고 있다. 자식들은 모두 건강하고, 똑똑하다. 한강이 보이는 강남의 아파트에 자가로 살고 있다.

그런데 성미씨는, 뭔가 공허하고 외롭다는 감정에 자주 휩싸인다. 모든 것을 다 이뤘음에도, 이따금씩 과연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고민하곤 한다. 상담을 받아봤더니, 어린 시절의 결핍이 떠올랐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어릴때 이혼한 후 홀로 외동딸인 성미씨를 키워냈다. 성미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성미씨는 어린 시절의 결핍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끝내 해결하지 못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사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현대 과학과 의학, 그 외 어떤 치료 기술도 성미씨의 이같은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주진 못한다. 성미씨가 모든 것을 이뤘음에도 별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설명한 대로 성미씨 과거의 결핍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실은 그냥 대대로 내려오는 성미씨의 유전적 문제일 수도 있다. 정신적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는 유전인자가 조상으로부터 내려왔을 수 있다는 의미다. 원인도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무엇보다 치료 기술이 없다.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등등의 호르몬을 분비시키는 약을 먹으면 될까? 전자파 치료가 효과를 낼까? 운동과 식습관이 도움이 될까? 일시적으로는 도움될 수 있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성미씨는 잘 해왔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더이상 그녀가 노력할 필요는 없다. 더 완벽해질 수도 없다. 그냥,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세상에 많고, 그녀의 정신 문제 역시 그에 속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명상과 요가가 도움이 될까? 그럴수도 있지만 잘 모른다. 이미 결핍과 유전인자에 의한 뇌의 영구적 손상 때문일 수 있다. 아직까지 원인도 밝혀내지 못할만큼 과학과 의학은 발달하지 못했다. 어쩌면 치료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녀가 그런 정신적 문제를 가지도록 만든 유전자는, 그녀와 그녀 조상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진화적 산물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 유전자를 복구했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로 그녀는 일찍 죽음을 맞이했을지 모른다.

노력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삶에 있어 매우 현명한 태도다. 이는 정신적인 문제 또한 해당된다. 나이 들어 모든 것을 이룬 사람들 중 마약 등 여러가지 것들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유 없는 괴로움을 낫게 할 다른 처치들이 효과를 못본 거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같은 것이다.

막연히 돈을 많이 벌면, 원하는 직업을 가지면, 원하는 사랑, 그 무엇...을 얻으면 자기 삶이 불행으로부터 구원받게 될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냥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적 문제일 수 있다. 해답이 없는 문제다. 하지만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란 막연한 생각은, 그것을 얻기 전까지는 옳은지 그른지 증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평생을 다바쳐 돈이나 명예 등을 얻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나이 들어 원하는 만큼의 그 무엇을 얻은 후에야 '아 이게 아닌가벼' 하고 깨닫곤 한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 것,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는 아닐 거다. 그냥 정신적 문제일 뿐이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한 상태일 수 있다. 더이상 노력으로 더 개선할 수 없는 상황일 수 있다. 자기만 피곤하게 만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