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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Jul 11. 2023

행복 강박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사물들과 현상들의 이면을 밝혀냈다. 철학자들의 업적으로 인해 기초 학문이 발전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이 세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면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우울했다. 철학자들이 우울한 이유는 예민해서일수도 있고, 타고난 정신병을 가져서일수도 있고, 어린 시절 결핍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우울함이 철학자들이 철학을 연구하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20세기 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본인도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의 두 형 역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많은 예술가들 역시 우울이나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고흐, 베트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예술적 고뇌가 우울이나 정신 질환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오늘날에도 꼭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예술가들 중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철학자, 예술가들에게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고.. 생각을 줄이고.. 맘편히 행복하게 살아"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행복'이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물론 행복의 정의는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 은 어느 정도 그 프로토타입이 정해져 있다. 마음이 편한 상태, 즐거운 일이나 취미가 있고 가족과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워라밸을 통해 여가도 즐기는 것, 분노나 괴로운 감정에 시달리지 않고 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 등등.


그럼 만약 어떤 철학자에게 "당신은 평생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다만 때때로 우울을 극복하고 지적 쾌락을 즐기기 위해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당신의 운명일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불편한가? 저주를 내리는 것 같은가?


그런데 그 철학자에겐 그렇게 사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철학 공부조차 안하고 생각을 비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다간 마약에 빠지거나 하루하루 공허감에 시달리다 자살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그 철학자의 뇌가 과연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에 걸린 상태인지, 아니면 그냥 그런 인생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인지 현대 과학이나 종교는 아무런 답도 해줄 수 없다. 그냥 그게 타고난 운명일 수 있다. 그 덕에 다른 인류가 철학 지식이라는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고. 이는 다른 우울한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것을 당연한 삶의 목적으로 여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노벨상을 만들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가우디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세계적으로 위대한 건축물들을 만들었다. 그 둘은 인생을 잘못 산 걸까?


어떤 사람에게 행복은 사치일 수 있다. 그는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신을 붙들기 위해, 계속 지적인 성취나 업무적인 성취를 이루며 살아야 할 운명을 갖고 태어났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기업을 이끌고 조직을 이끌고 나라를 이끌지만, 끝내 개인으로서의 소소한 행복은 느낄 수 없는 채로 살다 갈 운명일 수 있다.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였다는 분석들이 많다. 그는 전쟁광이었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종인데다 매우 독선적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관점으로 '행복을 추구한 인물' 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성격이 그가 최고 수준의 전술 장군이 되도록 만드는데 매우 큰 일조를 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장군으로 오르는 과정에서 '에이 내가 뭐하러 이 고생을 하냐' 하고 현타가 왔을 수 있다. 또한 전쟁터에서 그렇게 과감한 전술을 펼칠만큼 독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원시시대때, 지구 위엔 호모 사피엔스 외에도 여러 종류의 인류종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호모 사피엔스 종에 흡수되거나, 호모 사피엔스 종과의 싸움에서 학살 당해 멸종되었다고 한다. 만약 호모 사피엔스 종이 느긋하게 행복을 추구하고 뭘 하지 않아도 스스로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종이었다면, 과연 다른 인류종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일 수 있다. 누군가는 늘 우울하고 공허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며, 단기적인 쾌감을 느낄 거리들을 찾으며 살아야 할 운명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장기간의 괴로움과 고통의 시간을 참으며 진리 탐구나 예술 창작에 몰두해야 할 운명을 가졌을 수도 있다. 행복에 대한 강박은 오히려 자기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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