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학부모들은 과거 학창시절 교사 같지도 않은 교사들에게 엄청난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당하며 자란 사람들이다. 그 사이에 시대가 바뀌었지만 아이를 둔 학부모들로서는 과거 자신들이 당했던 그 상처와 트라우마가 쉽게 지워질리 없다. 그래서 과거 학부모들을 괴롭혔던 그 교사들과 아무런 상관 없는 이 시대의 젊은 교사들에게 학부모들의 엉뚱한 화살이 향하고 있다.
지금의 학부모들에게 상처를 남겼던 그 시절의 교사들은 모두 은퇴하고 없다.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시절의 교사들도, 사실은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냥 시대가 그렇게 뭐같았던 것 뿐이니까.
교사에 대한 학부모 갑질 논란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교사들의 주업무 중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극히 일부의 업무에 속한다고 하죠. 정말 힘든 업무는 학생 관리와 학부모 상대, 그 외 이것저것 행정업무들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달리고 난 교사가 무슨 더 좋은 교육 같은 거에 힘쓸 에너지나 남아 있을까? 내가 교사라도 퇴근하고 나서나 방학 기간엔 그냥 퍼질러 쉬고 싶을 것 같다.
중요한 건, 지금 교사 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이런 인간관계 관련된 문제들이 모양만 달랐지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 직장에서 요즘 MZ 세대들이 그 윗 기수 세대들이랑 너무 달라서 갈등이 많다는 이야기들이 돌고 있고 이런 이야기가 SNL 같은 방송 프로에도 나와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것 역시 시대가 변하면서 예전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싸질러 놓은 똥을 그 다음 세대들이 치우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과거에도 업무 현장에서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근로자를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였다. 예전부터 직장을 그만두는 대부분의 이유는 인간관계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한 비용을 모두 '0원'으로 계상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우리나라 경제는 구조적으로 생산품의 가격을 낮추는 것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온 국가였기 때문이다. 몇몇 고부가가치 분야를 제외하면 가격 외에 딱히 내세울만한 원천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가 10대 수출 품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나라는 중간재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 비용을 최소화 할 수 밖에 없었다. 관계 스트레스의 경우에도, 그냥 각 분야에 일하는 근로자들이 알아서 속으로 '삭혀' 온 거다. 유교식 위계질서가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 이게 잘 통하긴 했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인간관계 비용을 '0원'으로 만들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과정에서 생기는 관계 비용은 결국 아래로 누적되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아래로 갈수록 그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동안은 나름 한국 특유의 인간관계 문화를 이용해 이런 관계 스트레스를 완화 시킬 수 있었다. 회식을 비롯한 각종 술자리 문화가 발달한 것도 이와 같은 견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인생 경로를 거쳤고 지역별로 재산 수준이나 사회 경제적 지위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 사이의 신뢰같은 사회적 자본은 무너진지 오래고, 같은 지역과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도 크게 차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외국인들과의 관계처럼 멀어지고 있다. 사회가 파편화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앞으로 인간관계 갈등을 해소할 비용이나 그런걸 해결할 기구에 대한 필요성이 무척 커지게 되었다. 이때까지 '0원' 으로 계상되었던 관계 스트레스 비용을 생산품의 가격에 얹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관계 스트레스 비용을 따로 책정해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풀어나가는데 써야 한다는 소리다.
당장 학교만 보면, 비용에 대한 인식만 있으면 다양한 해결책을 상상할 수 있다. 현실적인 해결책은 현직에 있는 교사분들이 훨씬 더 잘 알거다. 다만 어떤 해결책이든, 지금과는 훨씬 더 많은 비용과 추가적인 인력이 들 수밖에 없다. 이같은 인간관계 비용에 대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공감대가 만들어질 것인가가 문제다. 기업의 경우도 결국 예전과 다르게 인간관계 비용이 커지고 있다는 걸 인식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안구해져서 임금을 올려야 한다거나, 능력에 비해 임금을 더 많이 줘야 하는 현상 역시, 그 차액만큼 인간관계 비용이 발생한 것과 다름 없다고 볼 수 있다. 과거보다 사람 쓰는 비용이 비싸진거다.
어차피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중세시대에서 근대사회로 오면서 유럽이 결국 세계를 제패하게 된 것도, 그 깊은 근원적인 이유 중엔 아시아인들의 인건비가 낮고, 유럽인들의 인건비가 높다는데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결국 유럽은 일찍부터 높은 인건비를 희석하기 위해 기술 개발과 무역에 앞섰고, 그 결과로 아시아보다 먼저 산업 혁명과 세계 진출을 이룰 수 있었다는 소리다. 반면 아시아는 워낙 농업 생산량이 높아서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았고, 그로 인해 개개인의 인건비가 낮았으니 기술 개발이든 무역이든 필요성을 못느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중국이었고.
이제는 개인간의 인격 모독이나 가벼운 폭력도 바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수다. 단순히 개개인의 속풀이를 위해서가 아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관계 리스크를 따로 관리하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개개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 중 가장 큰 부분이 관계 스트레스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를 따로 비용을 책정해서 관리하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다만 그런 마인드를 갖기 어려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