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명절이 되면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꼭 큰집에서 다같이 모였다. 친척들 중 서로 사이가 안좋은 분들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명절엔 의무감을 갖고 모였다. 일단 모이면 서로 간에 쌓인 앙금이야 어떻든 다같이 공동체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예의처럼 시작한 말이래도 서로 사는 이야기 주고 받고 하다보면 또 금새 사이가 좋아지기도 했고. 떠날 때가 되면 다들 그래도 아쉬워하며 다시 모일 다음 명절을 기약하곤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더이상 명절에 모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집안이 좀 특이하구나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우리집 뿐 아니라 주변 친구와 지인들 중에도 명절에 전혀 모이지 않는 집들이 늘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명절 모임 뿐만이 아니었다. 각 직장들의 연례 모임, 초중고 대학 동창 모임, 종교 단체 모임 등등 여러가지 모임들의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그럴까? 실은 그동안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작된 모바일 네트워크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동체는 현실에서의 강제성을 띤 모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선 일정한 물리적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서로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임이 없으면 별로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 소통할 기회조차 없다. 어떻게든 모여야 소통이 시작된다. 이 때의 소통은 다소 '사회적인' 속성을 띤다. 아무도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개인적인 푸념을 털어놓진 않는다. 서로 듣기 좋은 이야기, 격려나 칭찬해주는 이야기를 한다. 모임의 핵이 되거나 중심이 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좋은 이야기가 올라간다. 직장 모임이나 학교 모임 등 모든 사회 모임이 그렇게 진행되고, 그런 모임들이 잦아지면 자연히 해당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공동체 모임이 강제성을 띄는 또 한가지 이유는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역시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기 때문에 자기 사정을 더 중시하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힘들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양보해서라도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강제력을 가하는 규칙이 존재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음을 아는 거다. 공동체가 영리 목적이든 비영리 목적이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모바일 혁명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일단 모임은 한 두 번만 나가면 된다. 그 모임 안에서 따로 대화하고 싶은 사람의 연락처만 알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임 안에서 모두가 서로 대화하고 싶은, 말이 통하는 사람과만 연락을 주고 받는다. 그러다보면 굳이 강제성 있는 모임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리고 공동체는 자연히 쓸데없는 비용이 드는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공동체라는 실체가 만들어지기 전 이미 모임은 금새 사라진다.
이는 가족이나 친척 모임,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적 모임, 친구나 지인, 동호회 모임 등등 모든 모임에 적용되었다. 그래서 점점 모임의 숫자는 줄어들고, 개개인이 '공동체'라고 느낄만한 무형의 실체는 점점 희미해져 버렸다. 조금이라도 강제성을 부여하는 공동체가 생기려고 치면 사람들이 개개인의 사정을 이유로 거부하기 시작한다. 과거에 강제성을 띠었던 공동체들은 모두 자잘한 모임들로 분해되었다.
요즘은 개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수많은 모임들이 있다. 각 테마와 주제별로, 나이와 성별, 직업 등등 여러가지 속성을 중심으로 앱이나 인터넷 카페, 모바일 밴드 등등을 통해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임들은 대개 단기간 존재했다 금새 해체된다. 꾸준히 모임이 지속되어 개개인이 소속감을 느낄 만큼 지속되는 공동체로 발전하기 쉽지 않다.
이쯤에서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인간에게 공동체는 필수재일까? 옛 가족 모임이나 친척모임, 동창 모임이나 직장, 학교 모임 등등 일정한 강제성을 띠는 공동체의 존재는 행복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인류의 조상이 수백만년간 공동체로 지내온 것을 생각해보면 공동체와 관련된 자극점이 우리 뇌에 있지 않을까 싶다. 즉 공동체가 있어야만 눌러지는 행복 호르몬 버튼이 있을 거란 의미다. 물론 이는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어서, 평생을 소속감 없이 개인주의로 홀로 지내는 것이 더 좋은 사람들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지금과 같은 세상이 오히려 더 만족스럽겠지만, 공동체가 필요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외로움과 고독감에 빠질 우려가 있다.
영국은 '외로움 문제 장관' 이 있고 관련 부서가 따로 있다고 한다. 모바일 시대에 분명 사람들이 서로 연락은 많이 하지만 점점 더 심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기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부서란다. 그런데 이게 과연 정부 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자살율 1위의 국가다. 그 자살율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노인 자살율이다. 특히 최근 혼자 살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지금의 노인 자살은 개발도상국 시기를 거치며 형성된 한국의 독특한 사회 경제적 문화의 부작용으로 보이지만, 앞으로의 사회에선 물질적 풍요로움과 상관 없이 노인의 외로움과 고독감의 문제가 커지지 않을까 싶다. 최근 행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는 연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와 관련된 위기감이 높아져서가 아닐까 싶다. 과연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좋은 아이디어가 언젠가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