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당시, 적의 공격에 의한 즉사 보다는 다친 후의 상처 감염, 전염병에 의한 죽음의 숫자가 더 많았을거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항생제였던 설파제와 페니실린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2차세계대전 즈음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인류는 세균 감염에 속수무책이었죠.
항생제의 발견으로 1950년대 이후 의료인들은 비로소 '의료인다운'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의 의료인과 병원들은 때때로 환자들에게 '차라리 없는게 더 나았을지 모를' 수준이었죠. 대표적인 예로 19세기 중순, 산모들이 병원에서 출산하면 집에서 출산했을 때보다 산모열로 사망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후에 오스트리아 의학자 제멜바이스가 병원의 의사들이 감염 관리를 제대로 안한게 원인이라는 것을 밝혔죠. 그런데 그 후에도 제멜바이스의 그런 주장은 한참을 인정 못받았습니다. 당시 무지했던 의료계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했기 때문이죠.
보건 위생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항생제를 비롯한 다양한 약들이 개발되면서,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약 70~80년간, 인간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유사 이래 인류의 수명은 늘 30~40대였습니다. 물론 80~90대를 넘어 산 사람들도 많고 영아, 유야 사망률도 높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40대에 죽는다는 것을 뜻한 것은 아니었죠. 그렇긴 해도 대부분이 60대 이후의 삶을 진지하게 꿈꾸진 않았을 겁니다. 60이 넘어가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냥 편안히 하루하루 쉬다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러다보니 인생의 시간표가 지금보다 훨씬 급했습니다. 무조건 10~20대 중반 이전에 결혼하고 출산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죠. 영아 사망률이 높으니 다산은 당연했구요. 아이가 늘어난다고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 어차피 그 중 생존력이 강한 아이는 살아남아 농사일도 돕고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될테니까요. 약한 아이가 죽는 건 자연의 섭리나 다름 없고, 따라서 그 시절엔 아이들도 일찍부터 자기 몫을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전쟁때 젊은이들이 국가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나가 싸우는 것도, 지금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지 않거나 국가에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시절의 시대상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을 겁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에 죽는 사람도 많았고, 40대에 가까워질수록 죽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는 시대였습니다. 인생이 덧없다는 인식도 자연스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겠죠.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살아있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어려웠구요. 그러니 무엇인가를 위해 자기 몸을 바치는 것에 대해 지금보다 큰 거부감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사고가 나거나 유전적 질병을 앓지 않는 이상 누구나 80대까지 사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죠. 사고나 유전적 질병의 확률도 극히 미미해서 주위에서 찾아보기도 쉽지 않게 되었구요. 자칫하면 100세를 넘어 살수도 있다는 기대(?) 혹은 우려(?)도 품게 된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성인까지 살아있을 거란 생각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하고 있죠. 19세기 영아 사망률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대략 20~30% 였는데, 그 시절엔 통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에 실제로는 50%가 넘었을 거란 추정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로 아이가 죽는 건 그 시절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습니다. 돌잔치를 하는 이유도 무사히 생존했다는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가 있죠.
보건 위생에 대한 인식도 넓게 보아 의료에 포함시킨다면, 결국 20세기 중반 이후 의료의 발전으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고령화가 시작된겁니다. 그 역사가 80년 정도라고 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인지하게 된 시기는 비교적 최근입니다. 몇몇 선진국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국가 통계가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이와 관련한 연구들이 축적된 것이 최근이기 때문이죠.
태어난 사람은 모두 노인이 될 때까지 생존해 있을 거란 믿음, 그리고 고령화는 유사 이래 인류가 처음 인지하는 생소한 개념입니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개념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수백만년간 이어져온 인간종의 역사에서 지금과 같은 현상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쥐들은 한정된 공간 안에 가둬두면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물어 죽이든 암수가 서로 싸워 번식을 줄이든 낳은 새끼를 죽이든 해서 개체수를 줄인다고 합니다. 그것처럼 인간 역시 한정된 공간 안에 사람들이 많아지면,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고령화가 진행되어 생존한 사람들의 절대적 숫자가 늘어나면, 공간이 커지지 않는 이상 출산을 줄여서 숫자를 맞춰야 한다고 다들 압박을 갖게된 것일 수 있죠.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 전쟁 이후 (즉, 의료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사실상 남한이라는 섬나라로 존재해왔고, 최근 들어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몰리기 시작했죠. 이런 상황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출산율을 급격히 떨어뜨리는데 기여하게 되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세가지 현상 - 섬나라, 수도권 집중화, 고령화 - 은 더이상 변화시킬 수 없는 요인입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저출산 대책에 돈을 쓰는 것은 낭비와 다름 없다는 말이죠. 세가지 현상 중 무엇인가를 바꿔야 출산을 늘릴 수 있다고 할 때,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남한이 섬나라라는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혹 북한과 전쟁해서 (핵전쟁을 감수하고) 통일을 한다면 또 모르죠.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기 힘든 것이 사실 남북한의 전쟁은 남북한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 간의 대리전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4개의 강대국들이 동의해야 전쟁이 일어나도 난다는 뜻이죠.
수도권 집중화 문제도 풀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지역 균형 발전이 필요한 국가가 아닙니다. 균형 발전은 가능하지도 않죠. 부산이나 대전 등등 특졍 도시 하나에 몰아주기 식으로 쏟아 부어 그 도시를 서울 절반만이라도 발전시키는 것도 힘든데, 이 도시 저 도시에 골고루 자원을 나누는 것은 그냥 골고루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데 한 도시만을 집중 개발하는 것은 국민적 공분을 살 위험이 있고 정치적 분열을 초래할 수 있죠.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남아있는 한 이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고령화 문제는 어떨까요? 고령자들에 대한 의료 혜택을 끊으면 될까요? 나이가 들어 각종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라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그것이 받아들여질까요?
이것은 누구도 나서서 주장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국가 입장에서 장기적인 국가 발전을 위해 무엇이 더 중요한가, 그리고 어디에 자원을 더 많이 할당해야 하는가를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일입니다. 한정된 의료 자원을 앞으로 시장이 커질 고령자에 대해 쏟을 것인가, 아니면 아이와 젊은이들에게 쏟을 것인가, 이것은 냉정하게 생각하면 당연히 누구나 후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 누구도 나서서 주장하기는 꺼릴 것이고, 마음 속으로 다들 누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요.
그런데 향후 10~20년 후, 이것이 현실이 될수도 있습니다. 일단 한국이 지금 수준의 건강보험체계를 더이상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큽니다. 저출산이 지속되고 젊은이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초고령화와 그 이후의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면, 생산 인구가 감소하고 국가재정도 줄어들기 때문에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어쨌거나 정부와 국민은 결정을 내려야 할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부유한 노인들은 계속해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을테니, 형평성 논란이 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재정에 위기가 찾아오면, 그런 논란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할테니까요.
더이상 국가가 의료 전체를 관리하기 힘든 상황이 오면, 고령자에 대한 의료는 상당부분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약국 등에서 지금은 처방이 불가능한 전문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한다든지, 간호사들에게 간단한 진단과 처치를 가능하도록 만들 수도 있구요. 의사와 간호사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는 또다른 직군을 만들어 고령자 관리를 위한 인력들을 배출할 수도 있습니다. 국민 세금이 아닌 자체적인 경쟁 시장을 만들어 그 안에서 가격 관리를 하는 방식으로 만들면, 국민 개개인의 비용도 줄일 수 있겠죠.
의료 발전은 한편으로는 인류에게 득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고령화의 주범(?)이나 다름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고령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개개인의 입장에선 축복이나 다름 없으니 그걸 문제라고 말하기도 어렵죠. 그런데 그로 인해 새로 태어나야 할 아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가정하면, 이 때부터는 참 혼란스러워 집니다.
의료의 문제가 복잡한 이유엔 이처럼 의료와 관련된 다양한 시각과 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의료에 관해서 누구도 이것이 문제다, 저것이 문제다 라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없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고 해답을 제시할 수도 없습니다. 의료 관련 직군이 아닌 분들은 의료 관련된 글을 읽다보면 늘 '그래서 뭐라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라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그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글 역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 마무리하게 될텐데요, 정말 의료에 대해선 뭐가 맞다 그르다 어떻게 해야 한다 제시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쓰면서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네요.